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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세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를 얘기하던 그 시

이창호 원장, 시해설서 ‘목마와 숙녀, 그리고 박인환’ 펴내
위스키 한잔과 함께 하기 좋았던 시, 7년에 걸친 자료수집 바탕 분석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박인환 시인의 대표 시 ‘목마와 숙녀’. 한잔 술을 걸치고 읽으면 낭만이, 예민한 이성을 세우고 읽으면 버지니아 울프, 페시미즘(염세주의) 등과 같은 외국어가 시인의 지적 허영으로 읽혀질 수도 있는 작품이다.

이창호 원장(이&김치과의원)이 ‘목마와 숙녀’가 주는 이 복잡 미묘한 감정에서 헤매이다 7년의 시간을 들여 최근 ‘김다언’이라는 필명으로 ‘목마와 숙녀, 그리고 박인환(출판 보고사)’을 펴냈다.

이 원장은 “기분이 울적한 날 한 잔의 위스키와 함께 빠져들곤 하던 시다. 막연하게 먹먹하고 슬픈 분위기가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시 해석 요구에 장황하기만 할 뿐 제대로 답을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약간의 민망함과 함께 다시 시를 붙잡고 박인환 시인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고 밝혔다.

‘목마와 숙녀’는 1955년 10월 15일 출간된 ‘박인환 선시집’에 실린 작품으로 시인으로서 쫓고 싶었던 서정적인 삶과 전후 혼란한 현실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를 뒷받침 하듯 시인은 작품에서 인생을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이라고 얘기한다.

이창호 원장은 목마, 숙녀, 등대, 뱀, 술병 등과 같은 주요시어에 주목하며, 버지니아 울프, 페시미즘 등 당시 작가가 탐독했던 문학작품이나 작가, 사상 등을 바탕으로 작품을 해석해 갔다.

이 원장에 따르면 ‘목마와 숙녀’의 기저에는 전후 시인이 느꼈던 충격과 암담함, 그리고 “기분 좋은 일은 ‘조니워커’를 마시는 일”이라 할 정도로 술을 통해 위안을 얻었던 시인의 정서가 깔려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시인은 낭만적인 감성을 잃지 않으려 애썼으며, 어려운 시대상의 극복에 대한 현실참여 의지도 드러낸다. 이를 뒷받침 하는 것이 바로 박인환 시인이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를 동경하고 자신의 시에도 차용한 부분이라고 해석한다. 평생을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살며, 한편으로는 페미니스트이자 반전주의자로 혼란의 시대에 저항했던 버지니아 울프의 삶과 철학은 시인에게 곧 자기 자신으로 느껴졌을 것이라는 것이다. 특히,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버지니아 울프를 어린 시절로 상징되는 목마와 이를 벗어나려는 숙녀의 고통에 비유한 것이 흥미롭다.



이창호 원장은 “박인환의 시를 공부하다 보면 당시 전후 국내에 국한된 상황에서 벗어나 글로벌한 관점에서 전개해 가는 세계관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다소 낯선 외국어 시어들을 사용한 이유를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한 때 신춘문예 기간이 되면 설레는 마음에 공고를 오려 책상 유리 밑에 깔아두고 작품을 내지 못해 초조해 하던 문학도였던 기억이 있다. 40대 중반이 넘어 내가 추구했던 사회적 가치나 가족에 대한 노력이 생각처럼만 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허무감이 밀려왔다. 그러던 중 내 자아가 원하는 것을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에 시작한 것이 이번 시 해설집 집필이었다”며 “시를 해석할수록 시인에 대한 애정이 증오로 바뀌기도 했다. 그만큼 어려운 작업이었고 애증이 생기는 작업이었다. 그러다 보니 말이 많아져 필명을 ‘김다언’으로 지어봤다. 한번쯤 내 해설서를 읽어보길 바란다. 쓸데없는 말이 많았다고 느껴진다면 ‘망언다사’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