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1 (일)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판도라의 후예 비극 여주인공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고대 그리스에서 의학과 철학

이번 칼럼은 “그리스 비극 무대 위 여주인공들”이란 주제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이를 통해서 신화 속 여성 인물이 비극 작품에서 어떤 비극 주인공으로 형상화되는지, 그리고 남녀의 갈등으로 일어나는 비극적 사건이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는 디오니소스신을 찬양하는 축제가 열렸는데, 이 축제에서 비극은 단 한 번 공연할 목적으로 무대에 올랐던 공연예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 비극은 오늘날까지도 고전으로 두루 읽혀지는 문학이 되었죠.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은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과 함께 고전의 목록에 빠지지 않는 작품입니다.

오이디푸스가 과거에 저지른 잘못, 아니 범죄를 발견하는 과정과, 고의로 한 행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두 눈을 찔러 스스로를 징벌하는 행위에서, 운명과 자유의지의 극적인 긴장과 합일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운명과 자유의지와 같은 보편적인 주제가 형상화되어 있기에 그리스 비극이 고전으로 인정받는 것이죠. 또 다른 보편적인 주제들로는 신과 인간의 관계, 복수의 정의, 인륜과 법률의 대립, 남성과 여성의 갈등, 애욕이나 분노라는 감정의 문제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리스 비극하면 주로 오이디푸스와 같은 남성 영웅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남성 영웅 못지않게 여성 인물도 비극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한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습니다. 우리에게 전해지는 33편 비극을 살펴보면 여주인공들이 꽤나 많습니다. 클뤼타이메스트라, 안티고네, 데이아네이라, 엘렉트라, 메데이아, 알케스티스, 파이드라, 안드로마케, 이피게네이아 등을 대표적인 여주인공으로 꼽을 수 있죠. 그런데 이들 여주인공은 대체로 계략을 사용하여 복수하거나 남편, 형제, 조국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인물입니다. 따라서 이들 여주인공은 남성 영웅들에 못지않거나 그들을 능가하는 담력과 능력을 가진 인물로서 어떤 중요한 가치를 구현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여성의 모습은 기원전 7세기 헤시오도스의 서사시 <일과 나날>에 이미 예견되어 있었습니다. 티탄 프로메테우스가 천상에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선물하여 인간의 세력이 커지게 되자, 이에 분노한 제우스는 인간에게 재앙이 될 존재, 즉 여자를 만들게 합니다. 바로 이 최초의 여성이 바로 신들에게 온갖 능력을 선물로 받은 판도라인 겁니다. 이 판도라는 남성에게 공포와 놀람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로서 비극 여주인공의 전범(典範)임이 틀림없습니다. 

다음 주부터 3회에 걸쳐서 소개할 판도라의 후예는 남성과 대립하며 남성을 파멸로 몰아가는 여주인공입니다. 아이스퀼로스의 <아가멤논>에서 클뤼타이메스트라는 트로이아 원정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남편 아가멤논 왕을 살해하고, 소포클레스의 <트라키 스의 여인들>에서 데이아네이라는 사랑의 미약이 발린 옷을 남편 헤라클레스에게 보내서 남편을 살해하고,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에서는 남편 이아손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메데이아가 남편의 배신에 대해 자식들을 살해하여 남편을 파멸시킵니다.

이러한 사건들이 막장 드라마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들 비극 여주인공은 자신들의 합당한 동기에 따라서 행위하며 어떤 고귀한 가치를 구현하려 합니다. 그리스 비극 무대 위 여주인공들, 클뤼타이메스트라, 데이아네이라, 메데이아의 비극적 삶이라는 거울에 우리의 삶을 비추어 봄으로써, 남성과 여성 사이 영원한 갈등의 기원과 해결은 무엇일까, 함께 상상해봅시다. (참고문헌: 김기영, 『그리스 비극의 영웅 세계』, 도서출판 길, 2015)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기영
서양고전학자, 현재 정암학당 연구원 및 서울대 객원연구원.
저서로는 <그리스 비극의 영웅세계>, <신화에서 비극으로: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 삼부작>, <신화의 숲에서 리더의 길을 묻다>(공저) 등, 역서로는 <오레스테이아 3부작>, <오이디푸스왕 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