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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열흘에서 우리 자산 느끼다”

-추석연휴 동안 프라하·비엔나·알프스에서 “감명”
Relay Essay 제2259~2561번째


10월 2일 ‘프라하의 연인’과 별이 박힌 밤을 보다

민족의 명절 추석과 함께 전 국민이 처음으로 맛본 최장 열흘의 황금 같은 연휴를 맞아 우리 가족 5명은 9박10일의 동유럽 여행을 가기로 했다. 새벽부터 서둘러 출발해 공항에 5시간 전에 도착하니 마침 인천공항에서 국악 공연을 열어서 진도아리랑이나 경기민요 등을 듣고 프랑크푸르트까지 10시간 40분 비행을 했다.

좁은 자리에서 아내는 잘 자는데 나는 영화 보는 것이 편해서 4편의 영화를 보고 나니 도착했다. 곧바로 3시간을 차로 이동해 잘레에 도착해 쉬고 난 뒤 아침 일찍 호텔에서 나와 딸과 동네를 보니 시골인데도 너무 아기자기하고 잘 꾸며진 선진국 독일의 아침 풍경이 인상 깊었다.

아침 식사 후 3시간 정도 움직여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으로 유명해진 체코의 수도 프라하로 향했다. 가는 길에 있는 보헤미안 지방은 인도 북서부에서 300년 전에 옮겨와 사는 집시가 산다. 남자들은 일을 안 하고 학교를 보내지 않고 일부다처제가 허용된다고 한다. 집시들은 손재주가 좋고 말을 잘 탔지만 유럽에서는 이들이 죄의식이 없이 소매치기를 많이 한다고 가이드가 주의를 준다.

프라하에 도착해 구시가지로 먼저 갔다. 그곳에서 루터의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된 얀후스 신부님의 동상과 1410년에 제작된 쌍둥이 틴성당을 보았고, 죽음과 허영, 욕심을 20초에 끝나는 인생으로 표시한 천문시계를 보니 중세 시대 암흑기를 보는 것 같았다.

볼타바 강에는 프라하의 상징인 카르4세가 14세기에 만든 카를교가 있다. 천년의 다리, 지금도 너무나 튼튼해 보이는 다리와 화약탑을 보니 좀 부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현지 가이드의 아들도 고등학교 1학년인데 과거에는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심하게 느꼈지만 싸이의 ‘강남스타일’ 발표 이후에 너무 많이 달라져서 아들이 학교를 즐겁게 잘 다니고 있다고 해서 달라진 대한민국의 위상을 새롭게 느꼈다.

바츨라프 기마상이 있는 바츨라프 거리에 서자 우리의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금남로 거리가 생각난다. 볼타바강을 건너 트렘을 타고 프라하 궁전에 가니 1500년에 왕이 왕비의 이름을 따서 만든 아름다운 ‘안나의 정원’이 있었다. 또 925년부터 20세기까지 천년동안 만든 성비투스 대성당에 과거의 고딕과 로코코, 바로코 등 모든 건축양식이 섞여있는 것을 보고 과거 위에 현재를 덧붙이는 체코인들의 온고이지신 정신을 볼 수 있었다. 볼타바강에서 보는 가을 프라하의 야경은 내 뇌리에 깊은 추억을 주었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프라하의 밤이 깊어 간다.



10월 3일 음악에 취한 비엔나의 밤

체코의 대표적 유적지인 유네스코 지정 세계 300대 건물 체스키크롬노프 성에 도착했다. 13세기경부터 300년 동안 건축한 성인데 중세 암흑기를 지나 로마시대로 돌아가려는 르네상스 건축양식의 지그라비토로서 외벽 장식의 평면을 그림으로 입체적으로 만들어 로마네스크양식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이곳이 버드와이저 맥주를 처음 시작한 곳이고, 웨이퍼라는 와플과 웨하스의 원조를 처음 생산한 곳이라고 한다.

웅장한 성벽과 망토다리 성 주변의 수로, 붉은 색 지붕의 동네 집들과 단풍과의 완벽한 조화, 너무 아름다운 시골 풍광이다. 이곳 7천 명 정도의 주민들이 1580년부터 운영하는 투메리 식당을 비롯해 물레방아 집, 당시 이발사의 집 등이 지금도 똑 같이 유지되면서 영업도 하는 것을 보고 얼마 전 써프라이즈 TV 프로에 나올 만 하였구나, 하고 생각했다.

투메리 식당에서 전통식으로 점심 식사를 한 후에 음악도시이자 삶의 만족도 1위인 빈, 즉 비엔나를 향해 4시간을 달려갔다. 중간에 발렌타인데이가 처음 만들어진 지역인 성 발렌타인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비엔나로 향했다.

보헤미아 시골 길을 지나서 아름다운 알프스의 풍광을 보면서 내일 비엔나에서 볼 크림트의 작품을 주제로 한 조카의 ‘미국으로부터의 크림트 작품 반환 소송’에 관한 영화를 감명깊게 보고나니 벌써 비엔나에 도착했다.

비엔나는 5만 달러라는 국민소득의 60%가 관광수입이다. 1200년대에 시작해 세계대전 전까지 645년 동안 지배한 합스부르크 왕조의 음악에 대한 후원으로 모차르트나 요한스트라우스 등 무수히 많은 음악가들이 배출됐고, 이것이 지금 비엔나로 매년 1억 명 가까이 오는 관광 수입의 원동력인 것 같다.

저녁에는 1800년대 중반부터 시작한 쿠어 살롱에서 요한스트라우스 2세, 왈츠의 황제 음악을 비롯해 13인조의 관현악단과 왈츠, 성악 듀엣 공연과 마지막에 연주되는 푸른 아름다운 다뉴브강과 라데츠키 행진곡의 감동은 다시 한 번 비엔나에 오게 만들 것 같은 감동을 주었다.

음악에 취해 비엔나의 밤을 청한다.



10월 4일 쉘브른·벨베데레 궁전을 품은 비엔나

오늘은 쉔부른 궁전과 벨베데레 궁전, 슈테판 성당을 비엔나에서 본 후에 부다페스트의 다뉴브강 야경을 보는 좀 빡빡한 일정이다. 쉔부른 궁전은 파리의 베르사유 궁전에 버금가게 1740년 마리아 테레제 여제가 1441개의 방을 만들고 50만 평의 정원을 꾸민 비엔나의 대표적 궁전이다.

마리아 테레제 여제는 초등의무교육, 군사력 강화, 문예 진흥정책, 정치 경제 문화에서 근현대적 국가로 만드는 시발점을 연 여자 황제로 합스부르크 왕조에서 제일 존경 받는 인물이다. 소갤러리, 대갤러리, 장남 요셉1세 결혼식, 모차르트 4살 때 모습 등 역사를 그림으로 말하고, 황제의 침대, 방 등 너무나 화려한 300년 전의 모습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중국스타일의 방이나 자개 등을 많이 사용한 것을 보면서 중국을 많이 동경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합스부르크 왕조의 645년 동안의 종지부를 1918년에 찍은 장소이기도 해서 교차하는 역사의 희비에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다음은 5조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추정되는 세계에서 제일 귀한 그림이 있는 벨베데레 궁전으로 향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 보물 1호 ‘키스’를 보기 위해 그 많은 사람들이 비엔나에 온다고 한다. 표현주의화가 에곤 슐레의 ‘죽음과 소녀’ ‘이별의 메시지’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한스 마카르트의 ’오감도’ 등을 보니 음악과 미술의 중심에 비엔나가 있다는 말에 공감이 갔다.

점심식사는 1415년부터 영업을 해왔던 ‘린데켈러’라는 식당에서 비엔나 소시지, 닭, 돼지고기, 감자로 만든 전통식을 하였다. 식사 후에 구시가지에 있는 성 슈테판 성당으로 갔다. 1360년에 만들어져서 137m의 남탑과 68m의 북탑으로 구성된 성 슈테판 성당은 비엔나 사람들의 마음의 등대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 성당에서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치러졌다고 하니 그의 시종이 이곳에서 이뤄졌다.

가족들과 비엔나커피의 원조인 멜랑쥐커피와 아인슈페너커피 맛을 보니 색다른 느낌이 난다. 커피와 함께 오스트리아는 독일, 스위스와 같이 제일 잘 사는 나라이고, 음악이나 미술 등 문화의 도시라는 생각, 프라하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반면에 비엔나는 과거 위에 현재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었다고 생각들을 뒤섞어 마셨다.

서둘러 부다페스트를 향해 3시간을 달리며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니 모차르트의 천재성과 살리에리와의 인간적 갈등이 새삼스러웠다.

부다페스트에 도착해 전통식인 구야시스프와 칠면조고기, 빨라찌따 디저트로 식사 후 다뉴브강의 야경을 만났다. 파리, 프라하와 더불어 유럽 3대 야경의 하나인 다뉴브강의 야경은 과거와 현재가 합치된 장관이었다. 국회의사당, 엘리자베스다리, 사자상 등 9개의 다리를 보며 여수 밤바다의 풍광과는 다른 또 다른 맛을 느꼈다.

오늘은 부다페스트에 야경에 취해 잠을 청해 본다.



10월 5일 부다페스트에서 크로아티아까지 전통에 잠기다

부다페스트 시내를 관광한 뒤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로 가는 날이다. 1849년 완공된 세치니다리 오른쪽의 페스트 지역과 왼쪽에 있는 부다 지역을 합쳐 부다페스트라고 한다. 우선 페스트 지역에 건국 천년을 기념해 1896년 건설된 영웅광장에는 14분의 영웅들이 마자르족, 가브리엘 천사들과 위령비가 장엄하게 서있다.

이어서 1904년에 세워진 이스트반대성당에 도착했다. 중앙 96m의 탑과 앞쪽은 86m로 구성된 대성당이다. 계속해서 세치니 다리를 건너 부다 지역의 길게르트 언덕에 도착했다. 길게르트는 이탈리아 신부님으로 ‘투를’이라는 새를 믿던 헝가리를 카톨릭을 믿도록 바꾼 순교자이다.

치타멜라 요새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총알 자국이 그대로 보존됐고, 당시 사진도 벽면에 보관해 전쟁의 상처를 후손들이 보게 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마차시 성당이 꼭대기에 있는 어부의 요새로 향했다. 5세기에 7개 부족을 상징하여 7개의 요새를 만들고, 1243년 마차시 성당을 만들어 1847년 요셉1세와 엘리자베스왕비의 대관식을 하였다고 한다.

이어서 13세기 만들어진 부다성에 갔다. 이곳은 세계대전 때 모두 파괴된 것을 외부만 복원하였다 하며, 1986년에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부다성에서 보는 부다페스트의 장관을 깊이 간직하고 싶다.

크로아티아에 가기 위해 3시간 정도 달리니 국경이 나와 처음으로 여권 심사를 받았다. 유럽은 28개국이 유럽연합 경제공동체로 화폐 등 모든 경제를 같이 운영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서 EU를 구성한 것이다. 또한 이와 별도로 25개국은 쉥겐조약에 가입해 국경을 넘을 때 그냥 통과하면 되는데, 크로아티아는 여기에 가입되어 있지 않아 출입국 심사를 한다.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 도착했다. 자그레브에는 성 슈테판성당이 있는데 헝가리의 라디슬라브 왕이 최고의 기독교 국가를 만든다는 포부로 세웠다고 한다. 6명의 성인들의 조각상이 정문에 조각되어 있고, 1880년 지진이 일어나서 그 때를 기록하기 위해 보존된 시계와 탑이 있다.

‘자그레브의 배’라는 시장은 3시 이후에는 광장으로 사용되며, 많은 곳의 벽에 낙서를 하면서 시민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살아서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고 한다. 그라데츠와 카톨에 ‘피의 다리’가 있는데 과거에는 피를 흘리며 싸우다가 1800년 대 말에 수로를 없애고 데갈차 거리를 만들어 평화를 상징하는 거리가 되었다 한다.

크로아티아 사람들의 마음의 아버지인 엘라츠츠 동상이 있는 엘라츠츠 광장은 모든 사람들의 만남의 광장이라고 한다. 엘라츠츠 광장에서 사진을 찍고 현지인들의 모습을 보고 숙소인 푼디자르 호텔에 도착했다. 푼디자르 식당은 5대째 200년 동안 운영되고 있었고, 아들은 치과병원을 아래층에서 하고 있다.

식당 주인이 전통 검투사 검으로 와인 병마개를 따서 한잔씩 마시게 하고, 천여 점의 요리에 관한 자료를 보관한 식당 옆 박물관도 소개했다. 그는 이 식당에 2천 가지의 메뉴가 있고 베네딕트 주교도 식사를 하러 왔다고 자랑이 대단하다. 너무나 자랑스러워하는 주인의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우리나라도 모든 직업에서 가업을 잇는 일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봤다.

푼디자르 호텔에서 200년의 전통을 느끼며 잠을 청해 본다.

10월 6일 알프스의 눈동자에서 플레티나 노 젓는 꿈에 빠지다

눈을 뜨니 크로아티아 국립공원 중 가장 아름답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지정된 플리트비체와 아기자기한 폭포마을 라스토케를 본 다음 국경을 넘어 슬로베니아 국립공원 유네스코지정 블래드 섬과 성을 보는 조금 빡빡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6시 반에 플리트비체를 향해 출발했다.

보슬비가 계속 내리는 가운데 그리그의 ‘솔베이지의 노래’를 감상하는 동안 3만㏊, 16개의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호수, 영화 아바타의 배경이 된 그레이트 폭포가 가을 단풍과 함께 장관을 펼친다. 1시간 정도 호수로 내려가는 동안 너무나 맑은 파란색의 물속에는 카르스트 지형으로 석회가 많았고, 다양한 광물이 나무에 붙어 보는 방향에 따라 다양한 색을 나타내는 16개의 호수와 폭포를 구경했다.

현지식인 송어를 레몬맥주와 화이트와인으로 점심을 먹고 난 후 요정이 산다는 아기자기한 폭포마을 라스토케에 도착했다. 140명이 사는 마을로 폭포들이 많고 물레방아, 방앗간, 박물관, 빨래를 하는 원통 등 유럽 시골의 자연이 준 아름다움을 보았다.

그 후 4시간을 달려 슬로베니아 국립공원 블래드 호수에 도착했다. 가는 동안 가이드가 그리스로마시대, 중세 암흑기, 르네상스시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 오스만트루크의 침략,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인의 오스트리아 황태자 살해 사건으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된 일, 이에 따른 북유럽의 몰락, 유고슬라비아 붕괴, 보스니아 내전, 그리스와 로마 사이 발칸반도의 작은 국가들이 민족주의가 강한 이유, 기독교, 동방정교, 무슬림들의 싸움 등 너무나 많은 세계사 강의를 해 주어서 평소의 궁금증이 많이 풀렸다.

슬로베니아는 전체 2만의 인구로 포도밭이 많고 경관이 너무 아름다운 조그마한 나라이다. 뱃사공이 노를 젓는 슬로베니아 전통 배인 플레티나를 10분 정도 타니 유고연방 시절 티토 대통령의 개인 별장이 있는 블래드 섬에 도착했다. 마침 슬로베니아 처녀총각의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99계단을 밟고 올라 변치 않는 사랑을 약속하며 소원의 종소리를 들어보는 여행이다.

알프스의 눈동자라는 블래드 성으로 향했다. 130m 절벽에 자리한 15세기 왕비의 그림이 있는 마리아 성당, 과거 귀족들이 땅 문서 등을 인쇄한 인쇄소, 박물관과 알프스의 광경은 눈동자라는 수식어가 딱 어울려 보였다. 이제 알프스의 눈동자인 블래드 호수에서 플레티나의 노를 젓는 꿈을 꾸고 싶다.

10월 7일 모차르트와 볼프강을 유람하다

모차르트의 생가가 있는 짤쯔브르크와 운터스베르그에서 케이블카 관광을 하고 산과 호수가 아름다운 짤츠참머굿의 길겐마을의 볼트강을 유람하는 날이다. 아침 7시에 슬로베니아를 출발해 슬로베니안 알프스를 보면서 국경을 통과했다.

오스트리안 알프스는 스위스에서 보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광경이라 한다. 10시경 짤쯔브르크에 도착했다.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리아 신부님이 트랩가의 아이들과 도레미 송을 불렀던 미라벨 정원은 한 신부가 사로메얄트라는 여인을 위해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그 옆에 모차르트 음악대학이 있고 모짜르트가 17살부터 20살까지 비엔나에 가기 전에 살던 집을 보았다. 성악가 조수미 씨를 발굴한 20세기 최고의 지휘자 카라얀의 생가도 있다. 그 옆에 녹색의 물이 흐르는 잘자흐강이 있다.

구시가지에는 모차르트가 태어나서 17세까지 살았다는 생가에 피아노, 바이올린, 집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모차르트는 5살 때부터 누나와 연주를 하였고, 13살 때부터 서거한 37세까지 600여곡을 남긴 오스트리아가 제일 사랑하는 절대음감의 천재이다.

점심식사 후 운터스베르그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1776m 정상에 올라 한여름에도 눈이 덮인 알프스의 장관을 보고 만지고 너무나 황홀하였다. 우리 5식구는 알프스의 눈을 배경으로 많은 사진과 추억을 만들었다.

그 후 볼프강 호수가 있는 짤츠참머굿의 길겐마을에 도착하여 유람선을 타고 40분 동안 유람을 하였다. 사운드 오브 뮤직 맨 첫 장면인 8자 모양의 호수, 결혼 비석, 120m의 코끼리의 절벽과 사운드 오브 뮤직의 걸어서 국경을 넘는 트랩가의 가족들을 연상케 하는 영화의 마지막 촬영지가 보인다.

3800명이 살고 있는 상트길겟마을의 모차르트 외가에는 어머님과 누나의 초상화가 벽에 그러져 있다. 국제학교가 있고 길겐 성당 옆 시내 한 복판에 납골당이 있는데 많은 기념물을 놓고 죽은 후에도 가족들과 함께 하는 너무 부러운 모습을 보았다.

480년 된 역마차인 포스트호텔이 있고 판사이자 시장이었던 모차르트 외할아버지 집을 본 뒤고 1865년부터 돈까스와 밀맥주를 팔아 온 가스토프 켄들러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였다.

독일로 오는 길에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며 도레미 송, 유 아 세븐틴, 에델바이스 등 짤쯔브르크의 배경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가는 길에 바이에른 뮌헨 축구 경기장이 장관을 보인다. 꿈속에서 모차르트와 볼프강 호수를 유람하길 기대하며 잠을 청해 본다.

10월 8일

구자철, 지동원 선수가 뛰는 아우스부르크에서 출발하여 2차 세계대전에서 46%가 파괴되었으나 시민들의 기금으로 부활된 중세의 보석 로텐부르크로 간 뒤에 프랑크푸르트에서 여행을 마무리하는 날이다.

노르마의 작품에서 마리아칼라스의 답답한 마음을 달님에게 노래한 ‘정결의 여신’을 들으며 로텐부르크에 도착했다. 조그마한 성벽 옆으로 들어가니 조용한 중세의 마을로 장난감 같이 생긴 마을에 게오르게 성인의 우물이 있다.

시청사를 보고 1618년부터 30년간 일어난 종교전쟁을 기념하여 누시 장군과 땔리 장군이 정시마다 열리는 문으로 나타나는 시계를 마르크트 광장에서 보고, 크리스마스의 모든 것을 최초로 만든 크리스마스 빌리지 상점에 들른 뒤 밀전병으로 만든 이지역의 특산물인 슈네발렌 빵을 먹어 보았다. 칼로 잘라서 먹어야 할 정도로 단단한 빵 맛이 독특하다.

로텐부르크와 인스부르크를 지나 이탈리아의 로마까지 연결된 과거 성지 순례길인 380km의 로맨틱가도 일부를 달려와 고속도로인 아우토반으로 나와서 중세부터 박람회의 원조인 ‘메쎄’가 상시 열리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유럽연합을 대표하는 상징물이 있는 은행을 보고 여행을 마무리 지었다.

며칠 동안 체코, 헝가리, 오스트리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독일의 자연적 아름다움에 충격을 받고 너무나 오래된 전통에 부러움을 가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6·25 전쟁 후에 일으킨 한강의 기적을 바탕으로 세계 곳곳에 퍼져있는 삼성, 현대, 엘지 등과 우리만이 갖고 있는 최고의 부지런함과 근면함이 있다.

이러한 자산을 바탕으로 자연과 문화유산, 또한 K-pop 등 세계를 선도하는 한류를 잘 지키고 발전시켜 전 세계가 제일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도록 우리 국민 모두 각자 맡은 바 최선을 다하길 기대한다.

아울러 우리 치과계에서도 대한민국 동료들의 혁신적인 발명에 늘 감탄하며 감사드리는 동시에 필자도 계속 연구 중인 교합과 CBK(cranial balancing key )splint 이론이 세계를 선도해 나가기를 서원해 본다.

최병기 좋은얼굴 최병기치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