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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 치의학의 역사박물전

기고

치의신보에 아래와 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치의학역사 도록으로 ‘한눈에’ 서울치대 O회 기금 ‘… 역사 박물전’ 발행이란 제목으로 한국 근·현대 치의학의 발전을 사진과 함께 한눈에 볼 수 있는 도록이 만들어져 한국 치의학사의 발전을 한단계 높여 주고 있다.

‘한국 근·현대 치의학의 역사박물전’으로 명명된 이 책은 치의학박물관 도록 편찬위원회에서 편찬을 맡아 도서출판 몸과 마음에서 발간했다.

특히 이 책은 서울치대 O회 졸업동문들의 기금으로 만들어지고 서울치대 박물관이 개관한지 1주년이 지난 시점에서 발간돼 그 의미를 더하고 있으며 치대생과 치과의사들의 역사의식을 고취 시키는데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중략)

이 책의 1부에서는 일제하 치의학의 근대성, 해방공간과 한국의 치의학, 미국을 통한 치의학 수용, 치의학 지식의 제도화 및 전문화 과정 등을 다뤘으며 2부에서는 한국 근·현대 치의학 박물전이 컬러로 게재돼 있다. 부록으로 치의학 연표가 실려있다.

2003. 1. 19일 치의학박물관 도록 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도록(p.109)은 교수사서함을 통해 전 교수에게 우선 배포 되었는데 저는 사진화보집으로 편집된 책장을 넘기다가 1969. 12. 29일 소공동 치대 건물앞에서 연건동으로 교사를 이전하기 직전, 전체 교수가 함께 찍은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 저는 전임강사 발령을 받은 지 6개월이 조금 지난 후라서 사진에서는 교수님들 맨 윗줄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었습니다.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소공동에서 연건동으로’ 치과대학 소공동 건물은 1928. 9. 29일 부터 1969. 12. 31일까지 한국 치의학의 산실이었다. 대지 662평, 건평 1600평, 지상 4층, 지하 1층으로 지어졌다.

일제 식민통치 시대에 지어졌던 소공동 교사를 떠나 연건 캠퍼스로 옮겨간 것은 두 가지를 의미했다. 하나는 치의학의 독립성을 포기하고 의학적 헤게모니로 포섭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과거에 대한 역사적 인식에 근거하지 않고 장밋빛 미래에 대한 신기루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소공동을 떠나기 전에 교수들이 모여 기념촬영을 한 사진의 중심에 이춘근(李春根 1918~2001)이 앉아 있다는 것은 연건동 시대에 그가 보여준 권력을 상징한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춘근 교수님을 이런 방법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책을 발간하기 위해 서울치대 O회가 기금을 모아 발간하였다는데 이 기념 사진을 촬영한 시기는 1969. 12월 말 소공동 교사를 떠나기 직전으로 이 사람들은 중학교 2학년 정도 되었을 때 입니다.

그리고 당시 (지금도) 학장이나 기관장이면 단체사진을 촬영할 때 앞줄 중앙에 앉는 것이 당연한데 이것을 권력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그러면 편찬위원 모두도 같은 생각인지?

저는 편찬위원들 몇 분에게 문의해 보니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는 대답이었습니다. O회 동기 중 서울치대에 현직 교수로 두 사람이나 재직하고 있고 저의 교실에서도 5사람이 석·박사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스승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예부터 임금과 스승님은 부모와 같다고 하여 군사부일체 (君師父一體)라고 하였습니다.

이 교수님은 서울대 대학원 의학박사 1호(1952. 2), 부속병원장(제3대 : 1955. 4~1961. 4), 학장(제8대 ; 1969. 3 ~1971. 3), 동창회장(제11, 12대 1989. 5~1995. 4) 그리고 서울대 명예교수(1983~ )를 하셨습니다.
저는 그달 정례교수회의 때 이 도록을 들고 나가 전체 교수들에게 사진 설명을 읽어 주며 ‘설명 문구를 삭제하고 다시 제본을 하던지’하라고 하였습니다.

급기야 학장(C교수)은 교수들에게 배부했던 도록들을 모두 회수 하였습니다.

대학에서 치과생체재료연구동 준공에 맞춰 축하하러 오는 내빈이나 동창들에게 배부하고자 했던 몇 천부나 되는 이 도록들은 그대로 박물관에 쌓여 있게 되었습니다.

그후 치대 교수들에게는 사진 설명을 스티커로 가린 도록을 다시 배부 하였습니다. 지금도 이러한 기사를 누가 썼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당시 어떤 교수는 일부러 그런 글을 써 넣었는데 왜 그것을 들추냐고 했던 교수도 있었습니다.

궁금한 것은 이 교수님 가족 분들도 아시고 계셨는지? 교수님 1주기 기념예배를 서울대병원 교회에서 드리는 자리에서 유족들은 고인의 뜻이라며 당시로는 거액의 발전기금을 대학(학장 : K교수)에 전하였고 그리고 일부는 이 교수님께서 재직 중 섬기시던 병원교회에 헌금 하셨습니다.

14년이 지난 지금 졸업 20주년 기념으로 이와 같은 역사책자를 발간한 동기회는 없습니다. 그동안 편찬위원 9인중 4인이 타계 하였고 이 동기들은 환갑 나이가 되었습니다.

2015년 5월 13일 치의학대학원 관악캠퍼스에서 있었던 스승의 날 명예교수 간담회에서 배부한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육연구재단 ‘We Guarantee Excellence in Dentistry’ p.8 에는 이 교수 자제분인 이 주 박사가 어머님 결정에 따라 부동산 4억500만 원을 기부했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철위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