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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보건의 동행 취재④이민혁 공보의(질병관리본부)


구강보건정책 수립 위해 전국 돌며 ‘영양조사’
‘진료’는 전혀 하지 않고 ‘검진’만 불안감도 커

“사실 전 진료가 너무 하고 싶은데, 지금은 검진만 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진료를 못 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상당히 커요. 그래서 얼른 3년차 때 다른 곳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요(웃음). 선배들 말로는 어차피 금방 배운다고 하는데, 친구들 이야기 듣고 있다 보면 나만 뒤처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이민혁 공보의에게는 일정한 ‘근무지’가 없다. 일주일 가운데 월요일 하루 오송에 있는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로 출근하지만, 이곳을 근무지라고 하기엔 좀 애매하다. 그가 매주 화, 수, 목, 금 나흘은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활동하는 탓이다. 이렇게 그는 1년 365일 가운데 144일 동안 전국으로 출장을 떠난다.
기자와 만난 지난 9월 14일에도 그는 광주광역시에서 ‘국민건강영양조사’(이하 영양조사) 일환으로 구강 검진을 하고 있었다. 새벽 6시부터 진행된 검진이 끝나고 잠깐 짬이 난 이 공보의와 근처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지난 2016년 원광치대를 졸업한 이민혁 공보의는 ‘질본’에서 2년째 근무하고 있다. 그의 1주일은 여느 공보의의 생활과는 사뭇 다르다. 이 공보의의 1주일은 대체로 이렇게 흘러간다.

우선 월요일은 오송에 있는 ‘질본’ 본부로 출근한다. 화요일엔 집에서 짐을 챙겨 ‘영양조사’가 예정된 지역으로 내려가 다음날 필요한 것들을 세팅한다. 그리고 해당 지역에 화~금 나흘간 머물며 ‘영양조사’를 한다. 이런 사이클로 그는 1년 중 48주를 보낸다.

#  ‘구강건강 불평등’ 마음 아파

이 공보의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영양조사에서’ 국민의 우식경험, 치주병유병, 임플란트 시술 여부 등과 같은 구강 상태 전반을 검진하고 이를 기록한다. 이렇게 모인 데이터는 연령별, 소득별, 성별 등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노인 틀니·임플란트 급여화’ 같은 구강보건정책을 만든다. 또 ‘영양조사’는 이런 정부 정책의 효용성을 평가하거나 예측하는 데도 사용된다.

2년째 ‘영양조사’를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구강 검진을 진행한 이 공보의는 구강건강 불평등을 목격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경제적인 수준에 따라 구강 건강에서도 격차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읍·면 단위나 도심 외곽지역으로 갈수록 구강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같은 도시 안에서도 못 사는 지역에 있는 분들이 치아 상태가 더 좋지 않고요. 아무래도 치과치료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고 기본적인 덴탈 아이큐가 부족해 생긴 결과인 것 같아요. ‘비용이 부담돼서 치과에 못 가고 있다’는 분들을 만날 때면, 괜히 제 마음이 안 좋을 때가 많죠.” 

‘진료 경험’ 대신 다양한 ‘사람 경험’ 밑거름
 설명 잘해 주는 따뜻한 치과의사가 될 것




#  ‘진료’ 못 하고 2년째 ‘검진’만

매주 장돌뱅이처럼 전국 각지를 돌아다녀야 하는 그의 생활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수반한다. 먼저 숙박비가 팍팍하게 책정돼 있다 보니 좋은 숙소를 잡기 위해 매주 발품 파는 게 일이다. 현재 이 공보의가 쓸 수 있는 숙박비는 1박당 시·도가 5만원, 광역시 6만원, 특별시 7만원이다.

여기에다가 거점 지역이 없어서 취미 생활을 갖기도 어렵다. “한 곳에 쭉 머무는 게 아니다 보니 꾸준하게 즐길 수 있는 취미생활을 갖기가 참 어려워요. 헬스장을 끊으려고 해도 제가 일주일 중 절반은 지방에서 보내고, 일요일은 문 안 여는 곳이 대부분이다 보니 돈이 아깝고요(웃음).”

특히 자신이 ‘치과의사’임에도 ‘진료’는 전혀 하지 않고 ‘검진’만 하는 것에 불안을 느낄 때가 많다. 다른 곳에서 공보의 생활을 하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괜히 자신만 뒤처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전 진료가 너무 하고 싶은데, 지금은 검진만 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진료를 못 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상당히 커요. 그래서 얼른 3년차 때 다른 곳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요(웃음). 선배들 말로는 어차피 금방 배운다고 하는데, 친구들 이야기 듣고 있다 보면 나만 뒤처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 시야 넓어지고 ‘대화의 기술’ 터득

물론 지금의 공보의 생활에서 그가 배우는 것도 많다. 이곳에서 ‘진료 경험’을 쌓지 못하는 대신 그는 ‘사람 경험’을 다양하게 하고 있다. 덕분에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있다는 게 이 공보의의 설명이다. 

“여러 곳을 다니면서 워낙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다 보니 시야가 넓어지는 것 같아요. 만약 보건지소에 근무했다면 지소 주변에 사는 주민들만 만났을 텐데, 저는 전국을 돌아다니다 보니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폭이 훨씬 넓은 거죠.”

이처럼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면서 그가 배우고 익힌 건 ‘대화의 기술’이다. “초·중·고등학생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하다 보니, 각각에 맞춤한 대화 소재가 뭔지 고민하게 돼요. 그러다 보니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어나가는 방법 같은 걸 터득한 것 같습니다(웃음).”

‘먹튀 치과’ 등의 여파로 치과의사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가 조금은 나빠져 있는 상황. 그에게 어떤 치과의사가 되고 싶은지 물었다. “영양조사에 참여하신 분 중 치과에 갔을 때 제대로 설명을 안 해준다고 하는 분들이 있어요. 이런 분들 만날 때면 제가 아는 범위 안에서 몇 배로 더 열심히 설명해드리곤 하는데요. 저는 무엇보다 따뜻하고 정감 가는 치과의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환자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저를 믿고 찾을 수 있는 치과를 만들고 싶어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