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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섹션 영화/여성 괴물들


문화예술에 있어서 페미니즘의 문제는
성평등이나 여성혐오에 대한 지적 차원이 아니라
좀 더 깊이있는 분석을 요구하는 것이다

지난해 일어난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 노래방 화장실에서 불특정 여성이 한 남성에 의해 살해된 사건-은 살인자의 동기가 여혐이었다는 것에서 촉발해 엄청난 담론의 파장이 일어나게 된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미소지니(여혐)에 대한 여론이 들끓었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메갈리안’의 미러링 전략에서 파생된 사이버 설전이 팽팽히 벌어지고 있었다.

한편 연말에는 촛불집회와 DJ DOC의 노래 “수취인분명”의 노랫말의 ‘여혐’ 비판과 관련된 출연 무산 건이 있었다. 그 배경에 단순히 ‘문화통제’라고 비판하기에는 복잡한 “담론적 갈등상황”이 있겠지만, 박근혜의 여성성을 혐오하고 비하하는 수많은 구호들과, ‘수취인분명’의 문화적 맥락은 동일시할 수 없지 않을까. 문화예술에 있어서 페미니즘의 문제는 성평등이나 여성혐오에 대한 지적의 차원이 아니라 좀 더 깊이있는 분석을 요구하는 것이다. 공포영화 같은 경우도 여성혐오적이고 저급한 문화로 비판 받아온 측면이 있다. 이러한 공포영화를 다시 한번 여성의 시각에서 살펴 보자.

우리에겐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로 더 잘 알려진 브라이언 드 팔머의 초기작 <캐리>, 럭기 매키의 2011년작 <더 워먼> 같은 공포 영화의 여성괴물들이 지니는 공포성의 연원을 파고 들어보면 매우 가치전복적이다.

# 피의 통과의례 - <캐리>와 <로우>


초경과 통과의례, 원시성과 모성이라는 여성의 생명적 특성과 공포가 연결된 작품들을 몇 편 꼽아 보자. 원작자인 스티븐 킹과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을 일약 대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걸작 <캐리>에서 캐리는 사춘기의 통과의례를 겪는 소녀로서 정상이 아닌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존재로 그려진다. 광신도 어머니 밑에서 자란 캐리 화이트는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초경을 하고 제대로 성교육을 못받은 탓에 동급생으로부터 놀림을 받는다. 동급생들은 짜고서 캐리를 학생무도회에 퀸으로 뽑아 무대에서 최고의 순간을 맞을 때 돼지피를 쏟아 붓는데, 이 피는 수치와 모욕을 의미함과 동시에 캐리의 초자연적 힘을 일깨우는 계기이다. 이 피와 함께 캐리의 폭주가 시작된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악의 근원으로 월경을 죄와 수치의 징표라고 보는 어머니는 아버지의 질서를 체화하고 있다. 두 사람이 죽음으로 단죄를 받고 우리가 안심할 때 허를 찌르는 마지막 장면은 비명을 지르게 한다. (2013년 작 클로이 모레츠 주연의 캐리 리메이크는 한참 못 미치는 작품이다)




이와 맥을 같이 하는 작품으로 신예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로우> (2016)를 꼽을 수 있겠다. 엄격한 채식주의자 부모 밑에서 자란 저스틴은 언니 알렉스가 다니고 있는 유명한 생떽쥐베리 수의학교에 입학한다. 가족의 품을 떠나 갑작스럽게 시작되는 신입생활에 적응할 새도 없이 미친 신입생 신고식에서 억지로 동물의 내장을 먹어야만 하는 혹독한 의식을 치른 후 그녀는 살면서 한 번도 느낀 적이 없었던, 생고기에 대한 강렬한 갈망을 느끼게  된다. 언니와의 소소한 일상 가운데 끔찍한 사고가 나고, 저스틴은 금욕에서 카니발리즘으로의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오랜 훈육을 통해 길러졌을 내성적이고 금욕적인 저스틴이 신입생으로서 겪어야 하는 변화는 너무나 급격하고 극단적이다. 잔혹한 통과의례, 성적 욕망과 일탈이 바닥에 깔린 피에 물든 카니발리즘이 충격적이면서도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것은 무엇보다도 가녀린 가랑스 마릴리에의 섬세하고 드라마틱한 연기 덕택이다.

# 남성의 상징계를 위협하는 여성성
      - <더 워먼>과 <이어도>

<더 워먼>은 문명과 대립하는 야성과 비문명의 여성괴물을 그린다. 북미 숲 속에 생존해 있던 마지막 야생의 식인종 여자를 우연히 목격한 변호사 크릭은 사냥그물을 챙겨 와서 그녀를 포획한 후, 지하벙커에 여자를 묶어두고 강제로 문명화시키려고 시도한다. 바깥에서는 매너 좋은 성공한 변호사의 모습이지만 집안에서는 아내와 아들, 그리고 두 딸들에게 군림하는 폭군인 그는, 야생동물을 사육하듯 가족 구성원들에게도 여자의 길들이기 작업을 분담시킨다. 여자로 인해 가족의 갈등이 깊어지고, 큰 딸이 여자를 풀어주면서 온 집안은 살육의 도가니로 변한다.


2011년 선댄스영화제의 프리미어 상영에서 일부 남성관객의 항의를 불러 일으켰을 정도로 (남성에게) 불편한 영화이자, 문명화라는 논리로 원시와 야만에 가해진 폭력을 합리화하는 남성 가부장의 폭력성과 그 대물림에 대해서 통렬한 비판을 가하는 작품이다.



문명을 위협하는 여성의 원시적 생명력을 다룬 또 하나의 작품 <이어도>는 시대를 앞서간 시네아스트 김기영 감독의 영화 중에서도 가장 괴작이자 독보적인 세계관을 보이는 작품이다. 새로운 관광호텔 개발을 홍보하기 위해 이어도행 관광선을 띄운 선우현은 취재기자 천남석과 부딪히고, 천남석이 배에서 실종되면서 의문과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천남석의 고향인 파랑도를 찾은 선우현은 천남석과 엮인 파랑도의 여인들을 통해 천남석의 과거와 이어도의 비밀을 점차 알아나간다. 섬이라는 공간과 빨려들어 갈 듯한 힘을 지닌 바다, 이와 대비되는 실내 공간의 미장센. 전복양식, 번식에의 집착, 여성의 자궁과 남성의 정자, 오염. 미장센과 스토리텔링 속에 수많은 상징이 존재한다. 근대와 남성의 ‘상징계’의 시선으로 헤매며 조금씩 발견하는, 근원적인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이론에 따르면) ‘기호계’적인 세계 그 자체라고 할 이어도와 바다, 그 속의 여성들의 신비로운 생명력의 묘사는 영화사 속에서도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할 만하다.

이 두 작품을 크리스테바의 ‘아브젝트’라는 개념과 연결시켜 볼 수 있을 듯 하다. 크리스테바는 <공포의 권력>이란 책에서 공포영화에서 괴물성을 ‘아브젝트(abject: 비천한 것: ‘비체’라고도 번역함)’라 하면서 이것이 혐오스러우면서도 매혹적인 성질을 지니고 우리 존재를 위협한다고 했다. 크리스테바가 아브젝트의 대표적이자 근원적인 것으로 드는 것이 모성의 몸이다. 유아가 어머니와 자신을 구분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합일감과 쾌감을 느끼는 상태.

또한 배변구분을 하지 못하는 상태의 아이는 더럽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데 훈련을 받고서야 더러움을 알고 혐오하게 된다. 배설물은 나로부터 나오는 것이면서도 더럽고 혐오스러워 밖으로 구분해서 버려야 할 것으로 훈련받는 것이 배변훈련이다. 오염과 정화의 의식은 종교의 기능이었지만 이제는 예술이 그 기능을 넘겨받았으며, 공포영화가 그런 제의적인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무서워 피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공포영화 속의 괴물들-아브젝트는 카타르시스와 쾌락의 근원이다. 비록 우리가 부성의 상징계의 질서 속으로 되돌아 올 지라도, 그 근원적 매혹의 체험은 상징계의 질서를 교란하는 전복성을 키워 주는 것이다.


▶▶▶김영덕 프로그래머는…
2001년부터 4년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프로그래머, 2005년에는 리얼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 2006년에는 제1회 아시안필름마켓을 기획하고 마케팅을 맡았다. 2001년부터 국제공동제작을 비롯한 제작, 수입, 배급 등 다방면의 영화경력을 쌓았고, 2016년 2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로 복귀하여 현재 재직중이다. 영상원, 성균관대, 추계예대에 출강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