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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존재, 필로칼로스

고대 그리스에서 의학과 철학

그리스 로마 신화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주인공은 누구일까? 질문을 던져놓고 나니, ‘매력적’이라는 말이 이미 정해진 답을 함축한 것처럼 보인다. 라틴어로 매력은 베누스(venus)니까.

로마의 천재 시인 카툴루스는 이런 시를 썼다. “퀸티아는 많이들 아름답다 하지. 내가 봐도 눈부셔, 훤칠해/ 늘씬해. 그것만은 나도 인정해./ 하지만 아름답다 할 순 없어. 매력이 없거든./ 호리호리한 몸매에 소금 한 톨이 없어./ 레스비아는 아름다워, 예쁜 건 다 가졌지./ 왠지 알아? 모든 여자들의 매력을 모두 그녀 혼자 훔쳐갔거든.” 퀸티아에게는 없지만 레스비아에게 있는 것, 모든 여자들이 도적질 당한 것, 그녀 혼자 다 훔쳐간 것, 그것이 매력인데, 카툴루스는 그것을 ‘베누스의 특성’(venustas), 모든 ‘베누스들’(veneres)이라고 썼다. 그것을 마치 음식에 마지막 맛을 완결 짓는 소금으로도 비유했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아름다워 보이는 퀸티아는 사귀어보면 소금이 안 들어간 밍밍한 음식 같이 매력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음식을 맛깔나게 하는 소금 같이 여성을 매력적으로 빛나게 하는 것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 인간 너머 신의 영역에 있는 것이라고 해서, 로마 사람들은 베누스를 매력적인 여신으로 신격화시켰고 추앙했다. 베누스 여신은 그리스 신화에서는 아프로디테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그 이름은 출생의 비밀을 담고 있다. ‘아프로스’(aphros)는 파도에 이는 거품을 가리키며 ‘-디테’(-ditē)는 빛난다는 뜻이다.

이 이름은 그리스 신들의 계보를 노래한 헤시오도스의 서사시 내용과 맞아 떨어진다. 그에 따르면, 태초에 세상은 온통 흙이었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만 있었기 때문이다. 가이아에게서 만물이 탄생한다. 그 중 가장 힘센 자가 하늘의 신 우라노스다. 땅과 하늘의 결합에서 티탄들이 태어나는데, 막내가 시간의 신 크로노스다. 크로노스는 거대한 낫으로 아버지의 남근을 거세하고 세계의 지배자로 등극한다. 그런데 거세된 남근이 바다에 빠지자 부글부글 거품이 일어났고, 그 거품에서 빛나는 여신이 태어났다. 그녀가 바로 아프로디테였다.

아프로디테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등극한 사건이 있었다. 펠레우스라는 영웅과 바다의 여신 테니스가 결혼하던 날, 신들이 모두 모여 잔치를 벌이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은 황금사과를 잔칫상에 던졌다. 거기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새겨져 있었다. 그러자 세 여신이 황금사과의 주인을 자처하며 나섰다. 여신들의 여왕 헤라, 지혜의 여신 아테나, 그리고 아프로디테. 하객들의 관심은 일제히 세 여신의 경쟁에 쏠렸다. 제우스는 판결에 곤란함을 느끼고 트로이아의 왕자 파리스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파리스도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모두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여신들은 파리스의 판결을 얻어내기 위해 선물을 제안했다. 헤라는 아시아를 지배할 권력을, 아테나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전략의 지혜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과의 결혼을 약속했다.

권력과 힘, 남자라면 군침이 돌만한 제안이다. 가장 아름다운 여인과의 결혼은 상대적으로 시시해 보였다. 파리스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도대체 저 조금한 황금사과가 뭐기에 헤라와 아테나는 이토록 엄청난 선물을 주고 얻으려는 것일까? 가장 아름답다는 명예를 얻는 것, 그것은 권력이나 승리, 성공보다 더 값진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니, 아프로디테의 제안은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있었다. 세 여신이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얻으려고 안달이 나게 한 것이 ‘아름다움’이라면, 아프로디테야말로 정말 자기가 생각한 가장 값진 것을 선물로 제안한 것이 아니겠는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차지한다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경쟁하는 여신들의 가치관에 딱 맞는 결정인 될 것이다. 신들의 생각과 가치를 존중하는 자라면 아프로디테의 선물을 최고의 것으로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논리로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에게 황금사과를 건넸다.

황금사과를 놓고 싸운,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인정받기를 갈망했던 세 여신, 그리고 권력과 힘 대신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선택한 파리스, 그들은 모두 아름다움을 최고의 가치로 숭앙하던 존재들이다. 그들을 일컬어 그리스 사람들은 ‘필로칼로스’(philokalos)라고 했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philosophos), 즉 철학자에 못지않은 최고의 인간형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 헌
현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교수, 정암학당 연구원.
서양고전학(그리스) 전공.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수사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그리스로마신화’를 강의하고 있다.
저서  ‘인문학의 뿌리를 읽다.’, ‘그리스 문학의 신화적 상상력’ 등 
역서 ‘두 정치연설가의 생애’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 이펙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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