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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雲夢과 효도폰

오지연의 Dental In-n-Out

한국인 記者와 결혼하여 서울에 20여 년째 살고 있는 일본인 여성을 치료하고 있는 도중에 그녀의 시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며느리 입장이야 이심전심 알만 한 처지라 짐짓 무심한 척 글러브도 바꿔 껴 가며 딴전을 피워 편하게 통화하도록 해 주었다.

서둘러 통화를 끝낸 뒤 미안하다며 변명처럼 “아들과의 효도폰도 있는데 늘 말도 잘 안 통하는 제게 전화를 하셔요…”라기에, 효도폰은 ‘유사시’에 쓰라는 전화니까 그야 당연한 일이죠 라고 웃으며 말해 주었다. 일본 여인 특유의 놀라는 표정으로 눈이 동그래 진 환자가 남편과 하도 통화가 안 되어 어머니와의 핫라인인 그 효도폰 번호로 전화를 했다가 대판 싸운 일이 있었다며, 남편이 설명도 안 해 주고 불같이 화만 냈던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고 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심지어 핫라인 효도폰 번호인 줄도 몰랐고, 내가 동기 골프 모임 회장이던 몇 년 전, 무슨 기념패를 만드는 의논 차 당시 총무이던 남자 동기에게 (바뀐 전화번호를 미처 몰라) 옛날에 입력해 놓았던 번호로 전화를 건 것뿐이었는데, 왜 이 번호로 전화했느냐, 지금 올림픽대로인데 갓길에 차 세우고 비상등 켜놓고 받고 있다, 이거 우리 엄마랑 만 통화하는 효도폰이다, 빨리 끊어라, 내가 전화 할 테니 그 번호 입력 해 놔라…며 한바탕 혼쭐이 났던 것이다. 부산에 계신다는 어머니에게 뭔가 안 좋은 일이 있나 해서 얼마나 놀랐을까 지금 생각하면 퍽 미안하지만, 효도폰이 뭔지 몰랐던 당시엔 영문도 모르고 봉변당했다고 한참을 씩씩거렸었다.

이조참판의 무남독녀로 태어나 할머니 정혜옹주에게 소학을 배웠으며, 할아버지 윤신지로부터 ‘사내였으면 대제학이 되었을 것’이라는 칭찬과 사랑을 받을 정도로 총명했던 윤씨 부인은, 병자호란으로 남편을 일찍 여의었으나 당시 다섯 살과 아직 腹中에 있던 김만기, 김만중 형제를 직접 가르쳐 두 아들이 모두 대제학을 지냈고, 손자와 증손자에게도 직접 맹자, 중용, 사서, 시경언해 등을 가르쳐 손자까지 벼슬이 대제학에 이르게 했다.
장희빈의 일로 숙종에게 諫言하다 귀양 간 김만중이 책을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귀양지에서 쓴 저 유명한 <구운몽>이 주인공 양소유뿐 아니라 8선녀 각각의 개성이 뚜렷하게 묘사되어 있고, 상황과 심리묘사에 방대한 중국 고전이 인용되었을 뿐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등장인물과 치밀한 구성으로 이후 고전소설 창작의 새로운 전형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 작품이 어머니 윤씨 부인의 우아하고 지적인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한 아들의 奮鬪 그 자체였기 때문일 것이다.

데이지가 소나기 그친 하늘을 바라보며 저 작은 구름이 개츠비와 자신을 태우고 먼 곳으로 데려다 주면 좋겠다고 말하던 애절한 장면처럼, 김만중도 아홉 개의 구름에 귀양 간 자신의 처지와 홀로 계실 어머니의 처지를 띄워 푸른 하늘 저 멀리로 날려 보내고 싶었던 것일까.


작가는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공감과 카타르시스도 주지만 결국은 스스로를 치유하려는 것이라는 말처럼, 고단한 귀양지의 또 하루를 살아갈 용기를 얻으려는 눈물겨운 노력이었으리라.

평소에 소설을 싫어했던 정조임금이었음에도, ‘김만중의 <구운몽>처럼’ 자신도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시경>에서 100편을 발췌해 <毛詩百選>이란 책을 지어 드렸다고 하는데, 귀양을 간 것도 서울과 부산으로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한 집에 살면서-좀 많이 넓은 집이긴 하지만-굳이 책을 써드린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봤다. 혹시 자초지종 긴 얘기를 나누기엔 말도 잘 안 통하는 외국인일지언정 며느리와 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는, 아들과는 효도폰 핫라인이나 <구운몽> <모시백선>같은 책 쪽이 더 좋다는 그런 얘기가 되는 걸까. 그러고 보면 女子語를 못 알아듣기는 남편이나 아들이나 거기서 거기이긴 하다. 하하하.

지난 주말, 몇 년 전 내 간담을 서늘케 했던 그 부산과 서울간의 효도폰 핫라인이 사라졌다…기 보단 구름을 타고 멀리 날아갔다. 제가 아는 한 더 할 나위 없는 아들이었습니다. 김만중 못지않았지요. 물론 어머님이 더 잘 아시겠지만. 좋은 곳에서 평안하시길 기도드리며.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오지연 치과의원 원장
서울치대 치의학대학원 동창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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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