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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 기아, 나의 동창 기태

Relay Essay 제2265번째


이탈리아에는 ‘친구를 찾은 자는 보물을 찾은 것과 같다(Whoever finds a friend finds a treasure)’라는 속담이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친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잘 설명하는 문장이다. 이탈리아 문화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가족만큼 친구 또한 소중한 존재이다. 친구란 서로 간에 신뢰, 충성, 열정, 이해, 용서와 감사가 있어야 한다. 우선 만남으로 시작해서 앞에서 언급한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세월이 흐르다 보면 비로서야 진정한 친구가 되는 것이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진정한 친구는 몇 명인가요? 나에게는 36년 지기 친구와 자랑스러운 친구이자 동창이 있어 이곳에 잠시 소개할까 한다.

내 친구 기아와 인연을 거슬러 올라가면 82년 탄생한 해태 타이거즈부터 시작된다. 비록 중간에 친구의 이름이 변경되었지만 36년 동안 여전히 우리의 우정은 굳건하다. 해태 타이거즈부터 기아 타이거즈까지 우승은 내 인생의 굽이굽이마다 있었다. 83년 중3때 우승, 86년 고3때 우승, 89년 대학교 3학년 때 우승, 93년 인턴 때 우승, 96년 공보의 1년차 때 우승, 09년 개원의 9년차 때 우승 그리고 2017년 우승 등등. V11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우승을 위한 간절함과 V10에 대한 자긍심이 2017년 우승의 영광과 눈물과 미소를 만들지 않았나 싶다. 이처럼 나의 친구 기아는 나에게 인생의 교훈도 주곤 한다. 내가 지금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하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나에게 어떤 자긍심을 안겨줄지 상상하게 한다. 

총 11번의 우승 중에서 2017년 우승은 무척 남다르다. 1983년 사춘기를 보내면서 방황하고 있을 때 나의 친구 기아(해태)는 첫 우승의 기쁨을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거실에서 펄쩍펄쩍 뛰며 좋아했던 중3 학생이 세월이 흘러 이젠 지천명을 코앞에 둔 아저씨가 되었다. 이번에는 또 다른 중3 학생인 아들과 함께 층간 소음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날뛰며 기뻐했다. 나의 친구 기아는 자연스럽게 내 아들과도 절친이 되었다. 이런 까닭에 ‘기아 없이는 못살아’라는 응원가는 일상 속에서 흥얼거리는 노래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정도면 나의 친구 기아를 향한 내 마음의 신뢰, 충성과 열정을 충분히 보여준다고 자부한다. 또한 나의 친구 기아가 잘할 때든 못할 때든 나는 이해와 용서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과거의 업적과 현재의 모습에 감사한 마음뿐이다.

2017년 기아의 우승이 특별했던 또 다른 이유는 나의 동창이 기아 감독으로 있기 때문이다. 그 덕택으로 기아가 우승했다고 지인들로부터 축하전화까지 받았다. 언감생심이지 나의 36년 친구 기아가 우승할 때 나의 동창 기태가 그 팀의 감독으로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언제 또 다시 이런 기쁨과 행복이 오기나 할련지 모르겠다. 야구와 인생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내년에도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 

나의 동창 김기태 기아 감독은 억수로 운좋은 사나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얼핏 보면 단순히 운이 좋았기 때문에 선수와 감독으로서 풍성한 결실을 맺은 것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런데 왜 유독 야구인 김기태에게만 행운의 미소가 많이 찾아올까? 김 감독의 운수대통 비법은 동행과 배려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동행’ 슬로건을 내세웠고, 3년 동안 기아의 성적은 7위, 5위, 1위와 11번째 우승이 말해주듯 그 결과도 경이롭다. 동행의 증거는 중계 화면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승리한 후 모든 코치와 선수들과 악수를 하며 고마움을 표시한다. 특히 홈경기에서 김 감독과 가장 마지막으로 악수를 하는 사람은 응원단 사회자 이슈(이름)이다. 아마도 김 감독은 경기를 동행한 관중에게 감사하는 마음의 표시일 것이다.

김기태 감독과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학창시절 운동선수와의 만남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기에 베프(베스트 프렌드)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동창 김기태 감독이 지나온 길을 잘 알고 있어서 그런지 2015년 1월경 30년 만의 해후가 무척 반갑고 즐거웠다. 몇몇 고교 친구들과 함께 학창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며 김기태 동창의 기아 감독 취임을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한다. 이날 고교시절 3년 동안의 수돗물 우정 또한 피 못지않게 진함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우정은 또한 친구 간에 경제적 출혈을 야기하여 인생을 응급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가르침도 명심해야 한다.    

김기태 감독의 배려를 경험하였던 지극히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공개한다. 부인과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고 하던데 친구 자랑도 이 범주에 포함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동창이 기아 감독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는 우쭐해지면서 이곳저곳에 친구 자랑을 하였다. 이젠 말로 하는 자랑을 넘어 보여주는 과시에까지 이르렀다. 그 결과 중1 아들 친구들, 치과 직원들과 몇몇 지인들과 함께 김감독을 몇 차례 찾아가는 용감함도 서슴지 않았다.

다행히도 동창 기태는 일일이 악수도 하고 사진도 촬영하면서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게다가 학생들에게는 ‘공부 열심히 해라’, 직원들에게는 ‘언제 함께 회식한번 하자’, 지인들에게는 ‘친구인 나를 잘 부탁한다’는 덕담도 잊지 않았다. 모두 2015년과 2016년에 내가 저지른 일들이었다. 늦게 서야 나의 이기적인 행동을 깨닫고, 2017년에는 조신하게 보냈더니 우승이란 큰 선물을 받았다. 나도 운동선수의 징크스를 거울삼아 앞으로 3년 동안 경기장에서 김 감독을 만나는 일은 없게 할 것이다. 하지만 치과에서 직원들로부터 듣는 ‘원장님 김 감독님과 언제 회식해요?’라는 질문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나의 숙제’이다. 김 감독이 치의신보를 볼일은 없겠지만 혹시 이 소식을 알게 되면 동창 숙제 좀 꼭 해주소. 마지막 부탁이네.

‘나의 친구 기아, 나의 동창 기태’라는 제하의 글을 백범 김 구의 ‘나의 소원’을 인용하여 마무리하고자 한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친구 기아의 선전과 우승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두 번째 소원은 “동창 기태의 건강과 정진이오”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나의 지인, 우리 모교, 우리나라의 무궁한 발전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