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Rainbow Connection

오지연의 Dental In-n-Out

감명 깊었던 다큐멘터리를 다시 볼 때는 도중에 보기 시작해도 이해에 무리가 없을 뿐 아니라, 기억에 남았던 부분이 다가올 때면 매번 가슴이 두근두근하기까지 하다고 말씀드리면 이내 눈치 채셨겠지만, 그리고 좀 쑥스럽지만, 무척 즐기는 취미이다. 가령 일주일쯤 문 밖 출입을 못하는 정도는 내게 아무런 불편도 주지 않는다. 궁금해 하실 분도 없겠지만.

엊그제는 처칠에 대한 BBC의 다큐를 봤는데, 그의 장례식 후 템즈강을 통해 生家인 블렌하임 성으로 가기 위해 유해를 실은 배가 출항할 때 항구의 타워 크레인들이 일제히 머리를 숙여 조의를 표하는 유명한 장면이 나왔다. 그 부분에서 꼭 눈물이 나는데, 도중에 기차로 옮겨 싣고 지나갈 때 들판이며 언덕에 나와 서서 모자를 벗고 예를 갖추는 사람들 때문에 계속 울게 된다. ‘늙은 사자’라 불리던 영국을 2차 대전 승전국이 되게 했던, 나치즘과 파시즘 등 모든 극단적인 것들에 맞서 극단적일 만큼 저항했던 처칠을 향한 영국인들의 이 유별난 사랑은 또한 당시 재위했던 조지6세를 향한 것이기도 하다.

콜린 퍼스의 능청스런 연기로 영화 킹스 스피치에서 묘사되었듯, 조지6세는 심한 말더듬이였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자신과는 상관없을 것 같았던 왕위에 오른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청산유수의 대중연설과 선동의 귀재 히틀러와 그의 야욕에 동요하고 있는 유럽이었다.

1차 대전의 傷痕이 채 가시지 않았던 당시, 모두들 독일의 戰意를 짐작케 하는 여러 징후를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냉철하게 앞을 내다본 조지 6세는 1939년 초 돌연 미국을 방문했다. 未久에 닥칠 전쟁에 미국을 참전시킬 토대가 된 이 친선방문이 아니었다면, 훗날 처칠이 “장비를 주면, 우리가 끝장내겠다.”며 조금은 뻔뻔스럽게 미국에게 무기 원조를 요청했던 저 유명한 연설이 과연 가능했을지 의문이다. 사전 논의 여부까지야 나로선 알 도리가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夫唱婦隨라 할 만큼 완벽한 팀워크였다. 히틀러나 무솔리니에게도 결코 뒤지지 않을 저돌적 캐릭터의 처칠이었지만 공식 기자회견에 잠옷 바람으로 시가를 물고 나타나서는 戰況과 상관없이 걸핏하면 손으로 승리의 V자를 그려 보이는 천진난만하고 패기 넘치는 수상으로 기억된다. 이 또한 기나긴 전투로 전쟁터만큼이나 황폐해질 국민들 마음과 생활을 걱정한 나머지, 마치 ‘그 근심으로 인해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듯’ 몇 자 되지도 않는 선전포고 연설문을 떠듬떠듬 한참을 읽어 내려가던 ‘맏형처럼’ 사려 깊은 왕과 더할 나위 없는 콤비를 이루었던 덕분 아닐까. 쓰다 보니 어쩐지 점점 감상적이 되어 가는 듯하지만.

同時代人이 아니어도 팀이 될 수 있다. 지난 15일에 발생한 포항 지진으로 사상 최초로 수능시험도 연기되며 힘든 시간이 이어지고 있는데, 해당 지역 치과의원들도 진료실 벽에 금이 가고 장비가 파손되는 등의 피해가 있었다. 경북지부가 사태가 빨리 안정화되기를 기원하고 피해발생현황을 문자나 유선으로 회신 바란다는 문자를 사건 발생 다음날인 16일 소속 회원들에게 발송했다는 치의신보 기사는 “이번 사태로 지진 관련 대피 치과 매뉴얼 제작의 필요성을 느꼈다. 상황을 좀 더 파악하고 대처해 나가겠다”는 양성일 지부장의 신중한 멘트로 끝나고 있었다. 저 매뉴얼이 과연 언제쯤 빛을 발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그 매뉴얼의 문자가 더 이상 쓰이지 않을 먼 훗날이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고대문자를 해독하듯이 그들 또한 끝내 매뉴얼을 읽어 낼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만 뭉클해져 버렸다. ‘세대를 잇는’ 인류의 팀플레이란 예를 들면 이런 스타일이 아닐까. 재난의 고통 뒤에 무지개처럼 떠오르는 뒷사람을 위한 배려. 연약하지만 아름다운 그 배려의 길고 긴 이어짐.

Why are there so many songs about rainbow?
I’ve heard it too many times to ignore it, there’s something that I’m supposed to be.
Someday we’ll find it, the Rainbow Connection, the lovers, the dreamers and me.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오지연 치과의원 원장
서울치대 치의학대학원 동창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