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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쇼맨 : Painless Parker

그림으로 배우는 치과의사학-19



개봉박두!! 영화 ‘위대한 쇼맨’은 19세기 후반 지상 최대의 쇼(The Greatest Show on Earth)라는 서커스단을 만들어 엄청난 부를 축적한 P.T. Barnum(1810-1891)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이다. 그래서인지 영화 제목도 The Greatest Showman(위대한 쇼맨)이다. 바넘(Barnum)이라는 이름이 우리에겐 낯설지만 북미 대륙에서는 꽤 유명한 인물이다. 사실 바넘의 인생을 그린 영화는 1986년과 1999년에 이어 세 번째다. 에니메이션인 벅스 라이프(A bug’s life, 1998)와 카(Cars, 2006)에서도 바넘의 서커스단을 모티브로 한 P.T. Flea’s Circus가 등장한다.

필자는 2014년 치과계의 이단아로 낙인찍힌 Painless Parker(1872-1952)에 관한 칼럼을 준비하면서 바넘을 알게 되었다(‘Dr. Painless Parker를 아시나요?’, 월요시론, 치의신보 2199호). 뛰어난 사업가, 천재 사기꾼과 자선사업가 등등 바넘에게는 많은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바넘의 성공이면에는 그럴듯한 상술과 엉터리 사기가 숨어있었다. 80세쯤 되는 조이스 헤스(Joice Heth)를 나이가 161세이고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돌보았던 간호사라고 소개하였고, 동물 털을 물고기에 붙여서 지구상에 단 한 마리뿐인 털 달린 물고기라고 주장하였고, 어류 머리를 원숭이 몸통에 붙여 원숭이 인어라고 보여주었다. 그때는 통했지만 지금은 분노유발이다.

바넘은 특출하고 기발한 비즈니스로 서커스를 단순한 오락이 아닌 사업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인물이다. 그러나 치의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바넘은 의문의 1패를 당한거나 마찬가지다. 그 이유는 이렇다. 첫 개원에 실패한 파커는 바넘의 서커스단에서 45년 동안 관리자로 근무하였던 William Beebe를 우연히 만나게 되어 그를 치과 매니저로 고용하였다. Beebe의 진두지휘 아래 파커의 치과는 운영되었고 바넘을 뛰어넘는 상술을 치과에 적용한 결과, 파커는 금전적 부를 얻었으나 인간적 명예는 실추되었다. 게다가 파커는 20세기 초 미국 치과계에 ‘윤리’라는 화두를 떠오르게 한 장본인이다. 21세기 대한민국 치과계에서도 20세기에 미국에서 일어난 비스무레한 장면들이 재현되고 있다. 영화 ‘위대한 쇼맨’을 보기 전에 치과의사 파커에 대해서 알면 영화가 남다르게 보일 것이다.

이번에는 1919년과 1925년 ‘Life’ Magazine 앞표지에 실린 두 장의 그림을 소개한다. 참 오묘하게도 파커의 전성기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게다가 그림에 써진 치과 이름도 Painless Parker의 치과명과 일치하며, 그림의 제목도 고발적이고 도발적이다. 첫 번째 그림의 작가는 William Grotz, 제목은 ‘A Testimonial(추천서)’이고 1919년 라이프 메가진 1월호에 실렸다(그림1). 치통을 앓은 소년이 치과 벽에 ‘Liar’라는 낙서를 하고 있다. 아이들은 거짓말을 못한다. 그래서 이 그림이 일반인에게 주는 메시지가 결코 가볍지 않다. 필자의 치과 벽에는 어떤 낙서가 써져 있는지 한번 살펴보아야겠다.

파커의 노골적인 광고와 개원 전략은 대부분 거짓투성이였으나 안타깝게도 그가 치과계에서 이룬 부끄러운 과거는 모두 팩트이다. 파커는 약삭빠르고 화려한 비즈니스를 발휘하여 폐원 직전의 작은 개인 치과를 큰 사업으로 승화시켰다. 그 결과 75명의 치과의사를 고용하여 30개의 치과를 경영하였고, 그의 1년 그로스는 300만 달러였다(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3500만 달러). 그는 수백만장자가 되었고 파커 소유의 치과들은 다른 동료들에게 임대해주어 부수입까지 얻었다고 한다. 인생을 정리할 시점인 나이 70언저리에도 파커 자신의 수명은 150세라고 호언장담을 하였다. Painless Parker에게는 Painless보다는 Speechless(어이없는), Shameless(수치심 없는), Mannerless(네가지없는)가 더 어울리는 이름이다.


1925년 라이프 8월호 표지그림 ‘Dental Revenge’는 더욱 적극적인 의사 표시이다(그림2). 파커에게 치과 치료를 받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소년이 치과 입구에 바나나 껍질을 놓고 있다. 이 무렵 승승장구하던 파커는 바나나 껍질에 넘어지는 듯한 고통을 맛본다. 1920년대 파커의 목표는 미국 전역에 Painless Dentist를 개원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일환으로 콜로라도주 덴버에 새로운 Painless Dentist 분점을 내려고 하였으나, 콜로라도 주정부에서 다른 주의 치과의사 면허에 관한 상호 허용을 불허하여 실패하였다. 이에 파커는 면허 교차 허용을 위한 법안 개정안을 제출하였으나 콜로라도 주정부와 콜로라도 치과의사협회의 콜라보를 통해 콜로라도 주에서 Painless Dentist의 진출은 불가능하였다. 의료법 33조 8항 ‘의료인 1인 1개소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목전에 있다. 법에도, 법의 판결에도 국경은 없다.

위대한 쇼맨이었던 P.T. Barnum(1810-1891)과 Painless Parker(1872-1952)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남기고 간 유산이 있다. 바넘은 서커스를 통해 번 재산을 자신의 고향 사람들에게 12만평의 땅을 기증하였고, 이곳은 미국 코네티컷주 브리지포트에 Seaside Park로 조성되어 있다. 이 공원은 ‘개처럼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는 속담을 떠오르게 한다. 반면 파커가 남기고 한 유물들도 그의 모교인 템플 치과대학에 전시되어 있다. 예비 치과의사들에게 ‘진짜 이렇게 살지는 말자’라는 소중한 교훈을 전해주고 있다.

영화 <위대한 쇼맨>에서는 바넘의 생각대로 제작된 화려한 쇼들이 펼쳐질 것이다. 그리고 바넘의 비즈니스 마인드는 파커의 치과 개원 전략에 그대로 투영되어 실행되었다. 바넘의 영화를 보면서 파커의 인간극장을 상상해보는 것도 영화의 또 다른 묘미이지 않을까요?   



권 훈                                      
조선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미래아동치과의원 원장
대한치과의사학회 정책이사
2540g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