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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추억 - 두 번째 이야기

스펙트럼

삼국지에 나오는 적토마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릴 수 있다고 한다. 진도를 떠나 충주로 가는 거리가 천 리, 즉 400km에 육박하니 적토마를 이용했어도 꼬박 하루가 다 걸릴 거리를 이사하게 되었다. 이삿짐 센터를 부르려 했지만 천릿길 짐을 옮겨주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홀로 직접 두 번 왕복에 걸쳐 이사를 강행하게 되었다. 두 번 왕복에 사천 리 길을 이삿짐을 옮기고 나니 우리나라 땅이 그렇게 좁지만은 않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렇게 두 번째 추억을 만들어갈 곳에 도착하였다. 서울에서만 살다가 충주에 왔다면 별 감흥이 없었을텐데, 1년 섬 생활을 하고 와보니 하나하나가 신세계같이 느껴졌다. 우선 보건소가 시청 건물에 같이 있어서 무려 11층짜리 건물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시내에는 무려 마트와 영화관이 있었고, 공보의들끼리 운동 후에 같이 버거킹을 먹으러 갔을 때는 이렇게 호화로운 생활을 누려도 되는지 걱정까지 되었다.

충주는 경기도, 강원도, 경상북도 세 개의 도와 접해있을 정도로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교통의 요지였던 충주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적지들이 많은 편이다. 삼국시대의 흔적인 중원고구려비는 이 지역이 어느정도의 전략적 요충지였는지를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국보 제6호로 지정되어 있는 중앙탑은 통일신라 원성왕 때 건립되었는데, 왕이 국토의 중앙이 어디인지 궁금해하여 국토의 동서남북 끝에서 직접 사람들을 걸어오게 하여 만나는 지점에 탑을 세웠다는 재미있는 일화를 가지고 있다. 중앙탑 주변은 막국수와 후라이드 치킨을 함께 파는 것으로 유명한데, 두 음식의 궁합이 잘 맞는 것 같지 않으면서도 자꾸 먹게되는 묘한 중독성을 느낄 수 있다.

조선시대로 넘어오면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목숨걸고 항전을 했던 탄금대가 있다. 물러설 곳 없이 싸우기 위해 남한강을 등진 채 배수진을 치고 싸우다 전사하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충주댐이 세워진것 때문인지 격전의 현장답지 않게 물은 고요하고 평화롭게만 흐르고 있다. 남부 지역에는 온천으로 유명한 수안보가 있는데,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온천을 하면서 욕창을 치료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좀 더 치과가 많은 지역이라 그런지 보건소의 업무는 외래진료보다는 구강보건사업 위주로 이루어져 있다. 주로 학교나 경로당 출장 위주로 진행되는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특수학교에서의 진료였다. 학부 시절 교수님께서 하는 진료를 지켜보면서 나중에 나는 과연 저런 환자를 진료할 수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현실로 다가오니 처음엔 막막하기만 했다. 손발을 모두 구속하고도 세 명의 선생님이 매달려야 겨우 진료를 시작할 수 있는 장애아동의 진료는, 아무리 단순한 진료여도 환자가 언제 갑자기 머리를 돌리고 입을 닫을지 알 수 없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한 순간이라도 방심하면 술자와 환자 모두 다칠 수 있는 상황이 올 수 있어 진료 내내 집중력과 순발력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렇게 힘들고 에너지 소모가 많은 일이었지만, 치과에 내원하기 어려워 구강의 상태가 매우 불량했던 장애아동들이 진료 이후에 훨씬 양호한 상태가 되는 것을 보면 정말 뿌듯하고 보람있는 일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지내다보니 어느덧 두 번째 해도 흘러가게 되었다. 어디로 가게될지 모르고 출발했던 첫 해와는 달리 두 번째 해는 좀 더 안정되고 적응된 생활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이곳에서 계속 지내게 될 줄 알았는데 3년 공보의 생활에 역마살이라도 낀건지 또 새로운 곳을 찾아 이동하게 되었다. 남쪽 끝 섬에서부터 시작되었던 이야기는 평화로운 중원 지역을 거쳐 이제는 공보의가 갈 수 있는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인 곳에서 또 다른 추억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되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영준 회장
대한공중보건치과의사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