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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자식대로 미루기에는 아직 이르다

기고

대학에 근무하다 보면 다양한 성격을 가진 학생들을 만나게 됩니다. 학생들은 타고난 품성에 자라온 환경의 영향이 합쳐져 각자에게 적절한 삶을 선택하게 될 텐데, 이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가 ‘나이(Age)’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이가 공부에 영향을 미치는가?’ 라는 질문을 한다고 가정하면, 대학에서 오랜 시간 학생들을 가르쳐 본 사람들의 공통된 결론은 아마도 ‘당연히 예스!’ 일 것입니다. 역시 ‘공부는 제 때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한 사람이 평생 전공하고자 하는 분야에 언제 노출되는가에 따라 미래가 결정된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을 만큼 나이 요소는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의학이나 치의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보면 전문대학원 체제라서 학부를 졸업한 후 다시 입학하는 경우가 많아 평균 연령이 높은 편입니다. 남자의 경우 군대를 마치고 오는 경우 더 늦어집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의과대학이나 치과대학을 마치고 전공의 과정에 있거나 대학원 학위 과정에 있는 학생들은 고등학교를 졸업 후 바로 입학한 학생에 비하여 나이가 많고 결혼을 하여 아이를 키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결혼을 하여 자식을 낳아 본 사람은 책임감의 무게가 크다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어린 자식의 눈망울을 보고 어떻게 돈을 조금 벌 생각을 하겠습니까? 청년 시절에는 졸업 후 수련을 받거나 석, 박사 학위를 받을 꿈을 꾸고, 언젠가는 외국에 가서 공부를 더 하고 싶다던가, 혹은 언젠가 나도 제자들을 가르치는 교수의 꿈을 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식을 보는 순간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고 많은 꿈들이 사라져가는 걸 깨닫습니다. 누군가는 어린 자식이 우는 소리를 ‘피가 부르는 소리’라고 했으니 본능이 이끄는 바대로 삶의 방향이 정해지는 것이지요. 생각해 보면, 이는 나이가 들며 처한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가는 방식일 수 있고 그리 잘못된 방식도 아닙니다.

대학에 근무하면서 유능한 인재를 발굴하고 교수 요원을 선발하다 보면, 사람은 뛰어난데 가정을 책임져야 해서 박봉(?)의 교수직을 포기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학부를 졸업하고 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는 조급함으로 전공의 기회를 포기하는 사람도 있고, 박사 학위는 실용적이지도 않고 개원에 도움이 안 되어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사람을 접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학부를 졸업 후 더 공부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학위 과정은 내가 이루고자 하는 가정의 행복과 반대되는 일인가?’ 자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오랜 시간 한 분야에서 동료들의 삶을 보니, 학위 과정이나 전공의 과정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은 무형의 자산이 되어 결국 자식과 주위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결혼하지 않은 사람 또한 미래에 맞이하게 될 자녀들을 위하여 미리 무형의 가치를 쌓아가고 있다는 것을 중년이 된 지금에야 깨닫습니다. 무형의 자산은 생명체처럼 살아 숨 쉬며 가정에서 일어나는 많은 결정 과정에 영향을 줍니다.

때로는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을 넘어설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로서 자나 깨나 열망하는 ‘자식을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겁니다. 꿈을 자식에게 미루고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에 들어서는 것은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자식을 위하여 지금의 꿈을 자식에게로 미루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영호 아주대 임상치의학대학원장, 치과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