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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놀이 斷想

오지연의 Dental In-n-Out

새해맞이 카운트다운 불꽃놀이가 여러 나라에서 벌어지는 걸 보면 묵은해를 태우고 반짝이는 새로운 날을 기다리는 마음이란 비슷한가 보다. 템즈 강변 사우스 뱅크 부근에서 불꽃놀이를 구경했던 적이 있었다. 자정에야 시작되지만 3시면 어두워지는 런던의 겨울이라 이미 캄캄해진 6시 무렵부터 사람들이 모여든다. 코트와 목도리로 단단히 무장을 한 채 시큼한 식초(malt vinegar)냄새가 진동하는 강둑 쪽으로 삼삼오오 걸어가는 끝없는 人波는 그 자체가 이미 구경거리다. ‘향수’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마치 사람들을 홀려 이끄는 듯 자욱한 냄새의 정체는 영국인들이 사랑하는 피시 앤 칩스란 음식이다.

런던의 멋진 펍에서 피시 앤 칩스를 시켜 먹어봤지만 느끼하고 별 맛도 없더라는 얘기를 들을 때면 짧게나마 런던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마음이 아프다. 펍에 앉아 포크와 나이프를 써서 케첩에 찍어 먹어서는 결코 그 음식의 본질에 다가갈 수 없기 때문이다. 대구 등 흰 살 생선에 마치 빵처럼 두툼한 튀김옷을 입히고, 굵게 썬 감자튀김과 함께 신문지에 싼 뒤, 그 가게 특유의 비법으로 만든 맥아식초와 소금을 뿌려 테이크아웃 해서 먹는 게 피시 앤 칩스다. 위생적인 전용포장지로 바뀐 후에도 그 위에 신문지를 한 겹 더 싸 주기도 하며, 전용포장지 겉면에 신문지 모양의 도안을 넣기도 할 정도로 신문지 포장은 매우 중요하다. 전쟁 통에도, 공황 때에도, 설사 경기가 좋을 때라 해도 고달프긴 마찬가지인 퇴근길을 따스하게 달래주던 피시 앤 칩스는 신문지 포장과 식초냄새가 함께 어우러져 즐거운 잡담과 포근한 한 때를 약속하는 상징 같은 음식이었을 것이다. 불꽃놀이를 보러 걸어가면서도 사 먹고, 지루한 몇 시간을 기다려 달랑 10여분 구경하고 돌아가는 길에 또 사 먹고, 그래서 거리도 지하철역도 기차 안도 온통 식초냄새로 그득해진 그런 날엔 모두가 어쩐지 행복한 기분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그런 얘길 하자 “미세스 양, 이제 런더너가 다 됐네!” 하며 미소 짓던 옆집 영국인 할머니 때문에 깜짝 놀랐다. 피시 앤 칩스의 매력 포인트를 설명해 주는 영국인을 최근까지도 결코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날의 놀라움은 사실 여전히 진행 중이다. 구글 프론트 페이지처럼 텅 빈 듯한 막막함과 냉담함에 느닷없이 서울이 그리워졌고, 내가 알아 낼 때 까지 절대 가르쳐 주지 않을 셈이었구나 싶어 한없이 서운했다. 눈만 마주치면 미소와 함께 인사를 하고, 뒤에서 걸어오다 추월할 때도 쏘리 하며 지나가는 상냥하기 짝이 없는 영국인들더러 왜 깍쟁이요 새침하다고 하는지 실감하게 되던 순간이었다.

대개는 많이 알고 있는 쪽이 과시하듯 설명하려 들곤 하지만, 때때로 정보를 독점한 쪽 입장이(여러 이유로) 애매할 때라면 그다지 관련이 없는 정보를 홍수처럼 방출하되 정작 키포인트가 될 사항은 슬쩍 빼먹거나 공개를 미룬다. “온라인상에 온갖 1차 정보가 폭로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매스미디어는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보다 은폐하는 역할을 맡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고야마 류스케가 ‘라이프 핵’이란 자신의 저서에서 말했듯이, 요즘엔 정보라 해서 다 유용하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때로는 본질을 가리기도 한다는 게 놀랍지만 사실이다. 핵심 내용이 어떤 이유로 은폐되거나 왜곡된다면, 혹은 알아 낼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접근을 허락한다면, 함께 피시 앤 칩스를 먹으며 불꽃놀이를 구경했더라도 친구가 되긴 어렵다. 어쩌면 나의 마이너리그 적 피해의식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불꽃놀이 축제도 끝났건만 여전히 아직도 친구가 아닌 기분이 든다면 이내 어떤 포기나 배척의 분위기가 감돌게 되고 결국 대립도 해결도 아닌 무관심과 허탈의 암흑만 남곤 한다. 팩트와 정보에 목말라 하는 시간이(타이밍이라고나 할까)영원히 계속되지는 않는 법이니까.

이왕 새침하다고 정평이 난 영국인들이니 피시 앤 칩스 즐기기 쯤 친절하게 안 가르쳐준들 뭐 대수이랴 싶지만, 새해맞이 불꽃놀이 이야기가 그만 또 이상한 데로 가 버렸습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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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