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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맛집의 비결

스펙트럼

내가 즐겨 가는 홍대 앞 짬뽕집이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빠듯하게 15명 들어갈까 말까 하는 작은 짬뽕집이였는데, 입소문을 타고 손님이 늘자 근처의 큰 건물로 이전을 했다. 소형 맛집이 테이블을 늘려 이전을 하면 오히려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데 이 짬뽕집은 여전히 문전성시다. 일요일 오픈이 12시인데, 11시에 가도 이미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손님이 20여명은 된다. 나는 줄을 서서 음식을 사 먹을 정도의 미식 애호가는 절대 아니지만, 이 짬뽕집은 번잡한 맛집 특유의 피곤함이 없어서 즐겨 간다. 아무리 맛있는 식당이라도 지나치게 손님이 많고 편안하지 않으면 두 번 가지는 않는 편인데, 이 짬뽕집은 뭔가 특별했다. 나는 그 짬뽕집을 이 삼주에 한 번씩 꾸준히 방문한 결과 어느 날 갑자기 그 비결(?)을 깨닫게 되었다.

그 짬뽕집에는 직원에게 질문을 하는 손님이 없다. 다른 혼잡한 레스토랑에서 흔히 오가는, ‘이거 저희가 시킨 음식이 아닌데요.’, ‘저희가 먼저 주문했는데요.’, ‘OOO가 어떤 음식이에요?’, ‘숟가락 하나만 더 주세요.’ 밑반찬 좀 더 주세요.’, ‘손님 이거 시키신 거 맞으시죠?’ ‘저 자리에 앉으면 안 되나요?’ 이런 대화를 들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서비스가 철저히 판매자 위주의 시스템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짬뽕집에서는 손님이 테이블을 고르는 경우가 별로 없다(손님이 많기 때문에). 하지만 가끔 동시에 여러 개의 테이블이 비면, 조금이라도 먼저 온 손님이 통상적으로 더 아늑하다고 생각되는 자리로 안내를 받는다. 또한 주방에서 짬뽕 여러 그릇이 동시에 나와도 항상 먼저 줄 서 있던 손님이 5초라도 먼저 음식을 받는다. 여러 사람이 함께 와서 면류를 시키면 메뉴가 다르다 하더라도 거의 동시에 음식이 나온다. 사소해보이지만 나 같은 보통 사람은 짐작하기도 힘든 그들만의 치밀한 시스템이 있을 것이다. 메뉴는 질문이 필요 없을 만큼 누구나 다 아는 음식들 뿐이며, 정해진 수의 손님이 왔다 나가면 직원이 알아서 수저와 소모품을 채우러 온다. 틈틈이 테이블로 찾아가 밑반찬을 리필해 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렇다보니 손님들은 질문이 없을 수밖에 없으며, 맛있는 식사와 즐거운 대화에 온전하게 집중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내가 느꼈던 편안함의 비결이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응, 너는 음식만 맛있게 먹어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할게’가 이 짬뽕집의 모토인 셈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손님의 선택을 도와주면서 맛있는 음식을 능숙하게 대접하는 그 짬뽕집은, 비유하자면- 손님, 직원, 요리사 모두가 막힘없이 직관적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공장 같은 곳이라 하겠다. 손님들은 편안하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좋고 판매자는 손님의 질문과 요청에 왔다 갔다 하는 직원들의 에너지와 시간, 공간을 절약하여 짬뽕을 한 그릇이라도 더 파는(?) 긍정적인 결과를 볼 수 있어서 좋다.

이러한 교훈에 힘입어 환자들의 질문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당연히 의학적인 상담은 개별적으로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하지만 생각보다 사소한(?) 질문도 많다. 그런 질문에 일일이 응대하다보면 진료와 상담에 집중해야하는 나와 직원들의 시간과 에너지를 고갈시킬 수 있다. 약간의 구조를 바꿈으로써 환자들의 질문거리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질문도 그렇지만 대기실과 진료실에서 환자의 동선은 자연스럽고 직관적이어야 한다. 체어에 앉기 전 환자가 두리번거리며 가방을 올려 둘 곳을 찾지 못하거나, 티슈로 입을 닦은 후 휴지통을 발견하지 못해 두리번거리는 일도 없게 하는 편이 낫다.

어시스턴트의 업무와 동선 역시 그렇다. 비효율적으로 움직이거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어시스턴트가 있다면 개인 역량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 때문일 수도 있다. 술자, 환자 그리고 어시스턴트 모두가 같은 목표로 달려도 90점 받기 힘든 것이 치과진료이다. 나는 얼마나 여기에 온전하게 집중하고 있는가? 직원들과 환자들 역시 온전하게 협조적인가? 나는 구환들에게 ‘특별한 느낌’을 주는 치과의 원장이 되고 싶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유란 원장
모두애(愛)치과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