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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와 숙녀

오지연의 Dental In-n-Out

부지런하고 감성 충만한 분들의 사진을 알람삼아 맞는 기쁜 아침, 오늘의 취향저격 최종병기 사진은 눈 내리는 밤의 전철역부근 정경이다. 바삐 어디론가 가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한 소녀가 버스 정류장 지붕 밑에서 손바닥 위로 눈을 맞고 있다. 어두운 밤하늘에서 하염없이 내려오는 눈송이들과 줄지어 늘어선 가로등 불빛은 서로 어울려 마치 별처럼 빛난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란 박인환의 詩가 떠오른다. 상심하여 詩人의 가슴에 혹은 소녀의 손바닥 위에 떨어져 가벼웁게 부서지던 별은 오오, 그러니까 바로 눈이었던 거였다. 꽃처럼 별처럼 빛나다가 땅이나 몸에 닿으면 사라지는 하얀 눈을 경험하지 못하는 곳에선 (화가는 몰라도) 詩人은 나오기 어렵다는 말을 믿어야 하려나보다. 오늘은 밥 시거의 노래를 틀어놓고 출근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만으로도 이미 흰 눈처럼 폭신한 그의 목소리가 목마와 숙녀를 낭송하는 환청이 들리는 느낌이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그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라는 구절은 그대로 영화 ‘인터스텔라’로 이어져 STAY란 단어로 가슴에 별처럼 남았다. 일단은 머무르리라. 설령 등대, 그 불빛이 아직 잘 보이지 않더라도.

일전엔 TV로, 물수리가 형산강의 맞바람을 안고 약 100여m 상공에서 130km/h로 수직 낙하하여 1kg에 육박하는 큰 물고기를 잡아서는 미사일처럼 발로 움켜쥐고 커다란 날개를 펼치며 다시 상승하는 실로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다. 詩經에 실린 ‘물수리를 바라보며’(관저;關雎)란 詩는 강가 모래톱의 窈窕淑女 같은 물수리의 자태를 칭송하며, 한 君子가 그런 우아하고 고운 처자와의 만남을 그리면서 밤새 뒤척이며 잠을 못 이룬다는 내용이다. 輾轉反側이란 말의 유래가 된 이 詩가 무려 2600년 전에 이미 물수리의 자태를 입증한 셈이다.

물수리의 삶은 그러나 모습처럼 우아하지만은 않다. 번식을 위해 시베리아로 돌아가는 길에 약 한달 가량만 한반도에 머무는 어린 물수리들은 아직은 사냥에 서툴고, 잡은 물고기를 빼앗으려는 갈매기와 까치에게 쫓기기 일쑤이다. 맹금류이기에 그들을 죽일 능력이야 충분하지만 그 과정에서 작은 상처라도 입으면 긴 여정에 지장이 있기 때문에 싸우지 않고 떨쳐 내기만 하는데, 그걸 얕보고 끈질기게 따라 붙는 새들을 피하려다 전깃줄에 걸려 허망하게 목숨을 잃기도 한다. 겨냥한 물고기를 잡으려 종종 수면 아래 1m까지도 뚫고 들어가 물속을 휘저어야 할 때도 많다. 반면, 물고기들은 새들의 공격을 피해 물위로 솟구쳐 2m 이상을 날기도 하니, 새는 헤엄치고 물고기가 날아다니는 그곳은 이미 치열한 전쟁터이다.

‘진짜’ 요조숙녀들 역시 각자 일터에서는 물수리 못지않은 전사일 테니 때로 부상이나 탈진으로 戰場을 떠나기도 할 것이다. 전우를 남겨두고 떠나는 심정이 담담할 리 없지만, 한참 만에 돌아가려 할 때의 생경함이란 그것만으로도 발이 얼어붙을 정도로 훨씬 더 힘들다. 그러니 비록 급박한 전황이라 한들 채근만으로 될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낡은 잡지의 표지만큼 통속한’ 세상사지만 각각 앞뒤 사정과 까닭-事緣-들이 있을 테니, 날마다 모래톱 수풀 속을 찾아 헤매고 전전반측하기 보다는 더 따스하고 먹이가 풍족한 강으로 가꿔가면서 조금만 시간을 두고 기다리면 어떨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게다가, 마치 사라질 때 그랬듯이 復歸할 때의 그들은 어쩌면 하늘 가득 예쁜 날개를 펼친 무리가 되어 나타날 지도 모른다. 물수리도 요조숙녀도 유유상종이라고나 할까, 함께 모여 다니는 경우가 많은 까닭이다.

이미 사라진 목마의 방울소리가 여전히 귓전에 철렁거리듯, 머무르라고 혹은 기다리라고 속삭여주는 사진이며 詩, 영화 또는 다큐멘터리 모두가 아름답고 부럽다. 저야 뭐 별 도리 없이, 아름다운 그 작품들을 연결해 보고 되새기며 한나절씩을 견디는 ‘목마를 타고 떠나지는 않은 淑女’인 척 하는 것쯤으로 自足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전 그냥, 그것도 좋아요!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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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