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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학과 의학의 만남-소크라테스와 히포크라테스

고대 그리스에서 의학과 철학

고대 서양 관상학에 가장 영향력을 끼쳤던 ‘아리스토텔레스 이름’으로 알려진 《관상학》(Phusiognōmonika)은 그의 진작(眞作)이 아니다. 페리파토스(소요학파) 계열의 ‘짝뚱(Pseudo) 아리스토텔레스’가 기원전 3세기경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관상학이 성립하는 기본 전제는 “영혼과 신체는 서로 간에 상호작용을 하며, 영혼의 상태의 변화는 동시에 신체의 형태를 변화시킨다(《관상학》 808b12-14)”는 것이다. phusiognōmonika란 말은 phusis(자연, 본성)와 ‘알다’, ‘판단하다’, ‘해석하다’를 의미하는 gnōmōn이 결합되어 생겨난 말이다.

재미난 사실은 ‘신체의 표지를 보고 성격을 판단해 낸다’는 phusiognōmonia란 말이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에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Hippokratēs)에게서도 나온다는 점이다. 물론 그 말이 사용된 맥락은 심리적 성격과 외관과의 상호관계가 아니라, ‘정신적 활동과 생리학’(physiology)의 상호관계였다.


철학자들은 인간의 ‘윤리적 성격’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인간의 성격과 인간의 생김새 간에 있을 수 있는 모종의 연관성을 이론적으로 따져보았다. 의사들은 관상을 통해, 즉 인간의 외관을 읽어냄으로써 질병의 원인과 그의 심리적 상태를 파악하려고 무진 노력을 기울였다. 철학과 의학이 겹칠 수 있는 영역은 인간 본성에 대한 정신적 측면과 신체적 측면에서의 상호 관련성이다. 이 지점에서 관상학을 통해 철학과 의학은 만날 수 있었다.

소크라테스의 외모는 ‘납작코에 퉁방울눈을 가지고 있었고 올챙이배와 두터운 입술을 가진 모습’이었다. 키케로가 전하는 소크라테스와 관상학자 조퓌로스 일화는 흥미롭다. 외모로부터 모든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조퓌로스는 ‘쇄골 위의 목이 움푹 패지 않았기에 소크라테스는 어리석고 우둔하며, 그의 눈은 여자를 탐닉하게 생겼다’고 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소크라테스는 그 사람이 자신의 성격을 올바르게 설명했다고 인정하면서, 자신의 성격의 단점을 지성(ratione)을 통해, 즉 ‘철학을 통해’ 극복했노라고 말했다. 이것은 본성적 단점인 악(惡)을 의지와 노력, 철학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제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키케로 자신도 이 예를 영혼이 교육될 수 있고, 치료될 수 있는 전거로 삼고 있다. 

역사적 사실과는 잘 들어맞지 않지만, 아라비아의 관상학사의 전통에서 신비적 인물로 전해지는 폴레몬은 ‘관상학의 스승’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여기서는 이 일화가 폴레몬과 히포크라테스로 바꿔어져 나타난다. 히포크라테스의 제자들이 스승의 그림을 들고 관상학자  폴레몬에게 찾아 가서 스승의 성격을 추론해 보라고 요청했다. 신체의 구조를 자세히 뜯어 본 폴레몬이 “여기 있는 그 사람은 여색을 밝힌다”고 했다. 제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는 지자 히포크라테스다”라면서 “당신은 거짓말을 한다”고 답했다. 제자들이 히포크라테스에게 가서 전후사정을 자세히 말하자, 히포크라테스는 “폴레몬이 옳다, 나는 여색을 밝힌다. 그러나 나는 내 자신을 통제한다”고 말했다.

2세경에 살았던 퍼가문 출신의 갈레노스는 ‘신적인 히포크라테스’를 관상학의 ‘최초의 발견자’라고 지칭하고 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지》 제1권에서”라고 언급하면서 “관상학의 연구에 관한 또 다른 작품에서”라는 말을 하고 있다. 이를 미루어 판단해 보면 관상학은 철학적 동기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의학적 관심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헬라스의 의학을 받아들인 아라비아의 관상학자 대부분이 의사였다는 사실에서도 그럴만한 이유를 충분히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재홍 연구원
숭실대학교 철학과 대학원·박사 졸업
캐나다 토론토대학 고중세철학연구소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
가톨릭대학 인간학 연구소 전임연구원
충북대학교 철학과 초빙교수
관동대학교 인문대학 연구교수
전남대학교 사회통합센터 부센터장
현) 정암학당 연구원(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