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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의 향기와 太平舞

오지연의 Dental In-n-Out

예상을 뛰어 넘는 많은 관람객으로 한겨울의 전쟁 기념관에는 활기가 가득했다. TV쇼의 위력이란 실로 대단해서, 평소 아이들 때문에 억지로 끌려온 지루함을 온몸으로 표현하곤 했을 아저씨들은 온데간데없고 이어폰을 낀 채 전시된 모든 것들을 맹렬한 기세로 들여다보느라 여념이 없는 예비역(?)들의 열기로 장내는 심지어 더울 지경이었다. 인파에 밀려 비실비실 구석으로만 돌다보니 ‘보라매의 전설’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전쟁 당시 우리 공군의 상황을 설명한 코너 앞에 서게 됐는데 무심코 내용을 읽다가 그만 망연자실하게 되고 말았다.

개전당시 우리 공군에는 조종사가 단 57명뿐이었고 전투기는 한 대도 없었다. 그래서 육군 병기창에서 시험제작한 15kg 폭탄 247발과 경찰에서 인수한 수류탄 500여발은 보유 항공기의 전부였던 (무장이 없는) 12대의 연락기와 10대의 연습기 뒷자리에서 관측사가 창문을 통해 손으로 직접 떨어뜨려야 했다. 목표물에 가깝도록 조종사가 매우 낮은 고도로 비행해야만 했고, 당연히 적의 고사포에 격추될 위험이 컸다는 대목에선 결국 눈물이 났다.

미군이 지원하기로 한 F-51전폭기 10대를 인수하러 개전 바로 다음날인 6월 26일 일본으로 건너간 10여명의 조종사들 이름이 적힌 누렇게 빛바랜 명부와 최단시간 교육훈련을 마치고 전선으로 귀환해 7월 3일부터 유엔 공군과 함께 출격했다는 부분에 이르자 애처로움에 가슴이 아팠다. 설명중인 지휘관을 바라보며 두 줄로 도열해있는 사진도 있었는데, 다만 좀 이상한 표현일는지 몰라도, 그 표정들이 너무나 자부심과 투지로 가득 차 있었다. 어쩌면 울고 있는 지금의 나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마치 이 사진을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볼지 모르니 고개를 더 들고 가슴을 더 펴야겠다는 생각뿐인 듯 했는데, 무려 68년 후의 나 역시 박수를 쳐주고 싶어질 정도이니 과연 ‘보라매의 전설’이란 제목대로인 것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인 太平舞는 복잡한 장단에 맞춘 기교적 발놀림이 필요한 퍽 어려운 춤이라고 하는데 보기에는 호화로운 왕비의 옷이 어떻게 생겼나 보여주려는 건가 싶어질 만큼 꽁지깃을 편 공작처럼 양팔을 들고 그저 천천히 돌기만 하는 느낌이다. 왕실의 번영과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며 왕 또는 왕비가 직접 춤을 춘다는 내용으로 일제강점기인 1938년에 무대공연용으로 만들어졌다기에 짐짓 그때로 돌아가 무대의 태평무를 보는 나를 상상해봤다. 나라를 빼앗긴 시절이니 더는 쉽게 볼 수 없어진 왕과 왕비의 우아한 움직임과 호화로운 복색을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오래오래 감상하다보면  틀림없이 아릿한 그 무엇이 가슴속에 담길 것 같았고, 꼭 오래도록 기억하리라고 다짐하며 언젠가 무대가 아닌 진짜 세상에서 저 빛나는 옷들을 다시 보게 될 날을 염원하게 될 것 같았다. 요컨대 전설적인 존재에게는 꺼져가던 희망의 불씨를 다시 피어오르게 하는 알 수 없는 힘이 있는 것이다.

예전엔 비교적 개업환경이 수월했다거나 자신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는 선배님들의 말씀이나 글을 이따금 접한다. 척박해진 상황의 후배들이 안쓰러워서인지 사뭇 말씀을 아끼시려는 느낌도 받는다. 하지만 저 흔한 ‘폼 잡은 선배들 사진’조차 없던 시대의 치과의사생활이 수월했을 리 만무이고, 교재도 교구도 부족해 생각보다 오랜 동안 일본어로 된 책이 필요했던 시절을 운이 좋았다고 할 수만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바라건대, 포스 넘치는 말씀도 좋고 절도 있고 우아한 태평무처럼도 좋으니 후배들을 더욱 자주 만나주셨으면 좋겠다.

영화 속 얘기지만 ‘실수로 스텝이 엉키더라도 그게 바로 탱고니까 그냥 추면된다’며 멋지게 탱고를 추거나, 자신을 도와주던 고등학생을 위해 아버지 대신 교장과 전교생 앞에서 ‘내가 아는 이 학생은 자기의 미래를 위해 남을 팔지는 않을 사람’이라고 우렁찬 목소리로 변호해 주던 알 파치노 같은 베테랑 곁이라면 참 행복할 거 같다. 등 뒤의 그런 큰 하늘을 믿고 나도 언젠가 한번쯤은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며 狐假虎威를 해 보고 싶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