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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의 관상학적 의학

고대 그리스에서 의학과 철학

‘내가 날씨 따라 변할 사람 같소?’ 연극 제목이다. 자연의 변화와 직업과 같은 사회제도가 인간의 성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한국인이 성격이 급하다면 뚜렷한 계절의 변화와 심대한 온도의 차이가 그 원인이 될 수 있을까?

히포크라테스는 기후와 풍토, 계절의 변화에 따라서 사람의 체질이나 체형, 나아가 도덕적 품성과 성격까지도 영향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간의 건강과 도덕적 성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결정적 요소로서 계절의 균형(summetria)과 변화(metabole)의 개념을 들었다.

히포크라테스는 계절의 변화가 잦을 때, 정액이 응고하는 경우 더 큰 변질(phthorai)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거칠음, 사나움, 용맹함 같은 성격도 자연환경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추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더운 지역에 사는 인종보다 더 용감하다는 것이다. “항상 같은 기후에서는 게으름이 생겨나고, 변화 많은 기후에서는 몸과 마음이 시련을 견뎌낸다.”(《공기, 물, 장소에 관하여; De aere, aquis, locis)》

히포크라테스는 인체를 구성하는 체액(humor)이 기후와 풍토의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한다. 히포크라테스에 따르면 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은 인체를 구성하는 불, 흙, 공기, 물이라는 네 원소에 해당하는 온, 냉, 건, 습이라는 네 속성과 사계절과 연관을 맺는다. 이 네 가지 체액의 ‘혼합’(krasis; temperamentum)이 조화를 이루면 건강하고, 조화가 깨지면 병이 생긴다. 그리고 특정한 신체적 특징과 정신적 특성은 각 체액의 혼합으로 할당되게 된다.

지리적 조건과 기후적 조건이 인종의 겉모습과 기질에 영향을 준다는 주장을 폄으로써, 히포크라테스는 초기 관상학과 인종학의 분야에 과학적 토대를 놓았다고 평가받는다. 더운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향해 있고, 또 그런 바람이 일상적으로 불어오며 북풍으로부터 보호받는다면,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머리는 습하고 체질은 점액질이고, 그들의 모습(eidea)은 무기력해 보이며 잘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다는 식으로 그는 설명한다. 용기, 인내, 노력, 기개 같은 정신적 기질도 그에 적합한 기후가 아니라면 생겨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인들이 일상적 생활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삶의 표준으로 받아들인 것은 중용(mesotes)이었다. 인간의 행위를 말할 때도 그 기준은 중용이었다. 중용은 좋은 상태로, 성격적으로는 덕(德)을 지닌 적절함이다. 히포크라테스에게도 ‘적합함’이란 곧 중용이었다. 히포크라테스와 같은 의사들은 중용에 대립되는 적합하지 않음과 지나침을 ‘변화’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바꾸었다. 지역이 되었든 기후가 되었던 나쁜 조건은 변화를 통해서 일어나기 마련이다.

유럽 인종과 아시아 인종과 달리 기후적으로 온화한 중간적 위치를 차지함으로써 지중해에 사는 그리스인들은 ‘용기와 지성’이라는 성격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기후 결정론적 생각은 나중에 ‘그리스 중심적 사고’(Hellencentrism)의 헬레니즘의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나아가 이러한 생각이 인종주의의 기원과 뿌리가 되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재홍 연구원
숭실대학교 철학과 대학원·박사 졸업
캐나다 토론토대학 고중세철학연구소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
가톨릭대학 인간학 연구소 전임연구원
충북대학교 철학과 초빙교수
관동대학교 인문대학 연구교수
전남대학교 사회통합센터 부센터장
현) 정암학당 연구원(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