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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예쁘지 않고, 언제나 그렇듯 둘은 만나지 않았다”

Relay Essay 제2277번째

근래 유행하고 있는 SNS에 확산되고 있는 한 문장이다. 겉으로 보면 무슨 이야기 인지 의아해 할 수 있지만 그 속사정을 알고나면 탁 하는 박수소리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한 사람이 본인의 SNS 계정에 사진을 올리고 일상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자칭 후배라고 칭하는 다른 여자는 이 사진에 “언니 너무 예뻐요. 우리 도대체 언제 만나요? 언니 너무 보고싶은데”라는 댓글을 남기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어머, 예쁘기는. 그대로야 얘. 사진보니 네가 더 좋아 보이더라. 우리 정말 언제 만나니?”라는 답글이 달린다.

몇 번의 댓글 랠리가 계속되고 그 결과가 바로, 시작했던 첫 문장 “언니는 예쁘지 않고, 언제나 그렇듯 둘은 만나지 않았다” 인 것이다.

보이지 않는 인맥으로 과시되는 인간관계, 좋아요 수로 평가되는 사회생활, 나를 드러내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동반되는 번거로운 수고들에 감싸지고 있는 요즘이다.

좋은 음식을 먹으면 맛을 느끼기 보단 사진을 찍어야하고, 경치 좋은 곳은 프로필 사진의 배경이 될 뿐 본래 가진 아름다움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저 한 문장에 씁쓸한 마음이 들어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오롯이 진심만을 표현하는 시간이 하루에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생각해보면 직업 특성상 사람의 얼굴을 관찰하는 것이 주 업무일수도 있겠다싶어 세어보니 그 동안 보았던 환자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마취주사에 잠깐씩 찡그려지던 미간, 요즘처럼 잇몸 컨디션이 좋았던 적이 없다며 “참 좋아요” 활짝 웃던 눈과 입술, 나보다 소중한 내 자식이 걱정되어 진료실 앞을 서성이던 엄마의 불안한 눈빛과 이제 무섭지 않다며 씩씩하게 진료실을 걸어 나가던 아이의 발걸음들에 나도 모르는 새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보니, 아! 이제 정말 환자들이 보이는구나 싶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1년차 신입시절 나는 늘 동동거리던 내 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루하루 진료를 따라가는 일에 급급했고, 환자가 무서웠고, 사회에 나와 처음 겪는 동료라는 관계가 어렵기만 했다. 발에 붙이 붙은 것처럼 급한 마음에 뛰어다니기만 하고 정작 봐야 할 환자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환자의 아픔에 공감해주지 못하는 치과위생사라니, 지금 생각하면 참 웃음이 나올 만한 일이다.

해가 갈수록 환자의 얼굴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미세한 떨림 하나에도 공감하고픈 마음이 생기더니 아이러니하게 이 시야는 점점 넓어져간다.

환자 안에서만 고정될 줄 알았던 눈은 옆 사람을 보고 있고, 이제 앞사람을 보게 된다. 보고 있는 사람을 따라 병원도 벗어나게 된다. 병원을 벗어나 앞 건물의 회사를 보고, 도로를 따라 저 멀리 학교를 보고, 은행, 구청을 돌아 지하철을 타고 멀리멀리 뻗어나간다.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있었을 뿐인데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무궁무진해진 느낌이다. 이제야 새삼스레 작은 곳에 갇혀있지 말라던 선배의 말이 떠오른다. 마주보는 일의 힘이 이렇게나 큰 걸, 더 넓은 세상은 사람을 따라 이렇게 가는거구나 싶다.

김정원 서울인치과의원 치과위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