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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춥지만 따뜻한 도시

Relay Essay 제2278번째

12월 중순 양산의 날씨는 아주 추웠다. 해가 쨍쨍하게 떠있는 점심시간에 두꺼운 외투를 입고 밖을 나왔는데도 말이 덜덜 떨리면서 나올 정도였다. 양산에 온지 이제 2년이 다되어 가지만, 양산이 이렇게 추운 곳이었나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래서 잘 이용하지 않던 녹차 티백을 텀블러에 넣어두고 마시면서 추위를 녹이고, 지나가다가 어디 난로라도 있으면 잠깐 곁에 서서 난로를 쬐었다.

가끔 나도 잊고 살지만, 나는 강릉원주대학교 치과대학 출신이다. 강릉원주대학교 치과대학은 양산보다 한참 북쪽에 있는 강릉시에 위치하고 있다. 강릉시청 홈페이지를 들어가 강릉 기후에 대한 설명을 찾아보았다. “강릉시는 남북으로 길게 놓여있는 백두대간의 동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해안에서 6km 떨어져 있어 해양성 기후 특성을 나타낸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강릉시는 같은 위도선상의 타 지방에 비해 겨울철은 온난하고, 여름철은 비교적 시원한 편이다.” 나는 학창시절 다른 과목에 비해 국어를 잘 못하는 편이었는데, 그 당시 이 문구를 읽었다면 강릉의 추위에 대하여 과소평가를 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만 읽고 ‘음 강릉은 겨울에 온난한 곳이구나’라고 하면 곤란하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현재 기온이 양산은 -2℃, 강릉은 -8℃, 서울은 -11℃인걸 보니 ‘같은 위도 선상’에서만 보면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창원 출신으로 20년 간 창원에 거주하였던 나에게 강릉은 참 추운 곳이었다.

처음 강릉을 간 것은 강릉원주대학교 입학식 날 이었다. 버스를 타고 창원에서 원주까지 3시간 30분, 원주에서 강릉까지 1시간 30분이 걸려 도착하는 경로였다. 그 때 마침 김연아 선수가 벤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피겨스케이팅 연기를 하는 중이었는데, 가는 중 터널들이 얼마나 많던지 김연아 선수가 버스 안의 TV에서 스핀을 돌때마다 TV가 멈추었다. 원주에서 배차시간 때문에 1시간을 더 기다리고 우여곡절 끝에 강릉에 도착하였다.(물론 지금은 직행 버스가 있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 몸 전체에 느껴지는 추위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태어난 지 20년 만에 ‘살을 에는 추위’라는 말을 처음 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손이든 목이든 맨살이 노출된 부분이 있으면, 그 부위가 아팠다. 땅은 얼어서 미끄러웠고, 입으로 숨을 내쉬면 그 숨이 어디로 가는지 다 눈으로 보였다. 춥긴 했지만 기분이 좋았던 건, 창원에서는 몇 년에 한 번 볼 수 있는 눈이 정말 영화처럼 많이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나에게 그 영화가 겨울왕국 같은 영화였는데, 1주 만 더 지내보니 겨울왕국이 아니라 투머로우였다.
 
입학 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강릉에서는 눈이 좀 많이 내렸다. 한 2m 정도. 2mm가 아니라 2m이다. 2m가 온 날 아침에 밖을 나갔더니, 내가 웬 메이즈 러너가 되어 있었다. 눈이 아무리 많이 내리더라도 집주인은 반드시 눈 내린 다음 날 집 앞 마당을 치워야 하는 모양이다. 널찍했던 도로가 눈으로 쌓여 미로처럼 좁은 길을 만들었다. 물론 좁은 길이 스스로 만들어진 건 아니고 집주인들이 밤새 열심히 길을 내었던 것이겠지만… 편의점에 갔더니 간식, 도시락, 과자, 라면 코너는 다 텅텅 비어있었다. 사람들이 너도 나도 음식을 사러 온데다가 눈 때문에 그 날 물품을 공급하는 차가 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날은 평일이었는데, 강의들은 물론 휴강되었고, 치과병원도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했다. 하지만 많은 양의 눈이 내리는 것은 강릉 사람들에게는 일상이라, 3일도 지나지 않아 제설작업이 깔끔히 진행되었고, 모든 일은 정상화 되었다.

춥고 눈 오는 겨울은 강릉인에게는 일상이기 때문에, 역대급 폭설이 와도 크게 당황하지 않는다. 또 제설장비나 제설능력은 전국 최고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눈이 얼마가 오든 금방 정상화 시켜버린다. 겨울에 이렇게도 추운 강릉이지만, 강릉에는 남해와는 또 다른 매력을 갖고 있는 동해바다가 있고, 카페가 많아서 앉아 있기만 해도 힐링이 된다. 가까이에 설악산이 있고, 20대에게 유명한 경포대는 걸어서 학교에서 차로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이렇게 강릉을 가면 추위 이상의 편안함을 느끼고 오기 때문에, 나는 휴가 때마다 강릉을 찾는다. 이번 겨울휴가에도 춥지만 따뜻한 강릉을 꼭 찾을 예정이다.

이정상 부산대치과병원 소아치과 전공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