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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상상하라 (논어를 읽는 또 다른 재미)

시론

子張問政, 子曰: “居之無倦, 行之以忠.”(자장문정, 자왈: “거지무권, 행지이충.”)
자장이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하기를 “자리를 맡으면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일을 할 때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논어, 안연편>

倦(게으를:권)에 마음이 꽂혔다. 게으름이란 人(사람:인) + 卷(책:권)이 합하여 생긴단어이다. 사람이 책을 가까이 하면 게을러지는 것일까? 倦(권)이라는 한자를 만든 사람은 책만 읽고 땀 흘리는 일을 하지 않는 주인을 모시고 사는 머슴일거라는 상상을 해본다.

倦(게으를:권)자를 통해 내 자신의 게으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내 삶에서 땀을 흘리며 먹거리를 찾아 헤맨 적이 있었는가, 타인을 위해 땀을 흘린 적이 있었던가?” 스스로 묻는다. 치과대학에 입학한 순간부터 나는 치과의사였다. 예과 1학년 때 진료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지만 예비 치과의사라는 명분으로 실습용 흰 가운을 입고 진료하는 선배들 주위를  맴돌았다.

본과 3학년 때 치과대학 학생회 차원에서 처음 농활을 하였다. 농노 확장 및 보수 공사, 주거환경개선사업 등 하루 종일 땀을 흘렸다. 저녁에는 주민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공중보건의 1년차 때 후배들이 주관하는 농활에 참여했다. 보건소에 근무한다는 이유로 토요일 일요일만 같이 하였다. 그것이 땀을 흘린 마지막 기억이다. 치과를 개업한 이후에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진료봉사를 하고 있다.
2016년 “바람꽃 광산구 주거환경 개선 봉사단” 대표를 맡게 되어 소외가정 주거환경개선을 위해 몸으로 하는 봉사활동에 참석하고 있다. 참석한 많은 분들은 봉사단이 창립되기 전에도 개별적으로 소외가정 주거환경개선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고 계셨다고 한다. 봉사자들은 자신의 특기를 살려 가구를 치우고, 주방을 정리하고, 방을 도배하고, 고장난 가구들을 수리하며 하루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을 하셨다. 쓰레기를 옮기는 일 외는 할 수 있는 마땅한 일이 없었다. 치울 쓰레기가 없어지자 기록을 남긴다는 핑계로 카메라만 들고 이리 저리 피해 다녔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나의 손에는 항상 책이 있었다. 人(사람:인) + 卷(책:권) 나의 손에 책이 들려진 이후 나는 倦(게으를:권)하였다.

최근에 躬(몸:궁)자에 마음이 꽂혀 살고 있다. 躬(몸:궁)자는 身(몸:신)과 弓(활:궁)로 구성되어 있다. 身이라는 것은 나의 행동, 실천(行)이다. 54년을 살아가면서 삶(身=行= 矢 화살:시)의 주인(弓)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인정받는 내가 되는 것, 즉 내 화살(矢)의 활(弓)은 부모님이셨다. 그리고 점차 성장하면서 내 삶의 주인은 수시로 바뀌고 확대되어졌다. 주인이 사람이 아닌 물질일 때도 많았다.

나는 요사이 내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갔던 적이 있었던가 물어본다. 내 삶(矢)의 주인(弓)이 되고 싶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병기
대덕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