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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기로에서

고대 그리스에서 의학과 철학

로버트 프로스트는 ‘단풍 든 숲 속에 난 두 갈래 길’을 노래하고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소크라테스와 동시대에 살았던 소피스트인 프로디코스 이야기(Horai) 역시 ‘두 갈래 길’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는데, 매우 흥미롭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크세노폰의 <회상>(Memorabilia) 제2권에서 전해지는데. 이 이야기는 대충 다음과 같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젊은 헤라클레스가 어떤 ‘인생항로’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아포리아(aporia; 난관)에 빠진다. ‘아포리아’란 길이 꽉 막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때 키가 큰 두 부인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다. 그 중 한 사람은 예의 바르고 고귀한 모습을 하고 하얀 의복을 몸에 걸치고 있었다. 이것은 aretē(덕)이다.

또 한 사람은 그녀를 편드는 쪽에서는 eudaimonia(행복)라고 부르고, 그녀의 적으로부터는 kakia(악덕)라고 불린다. 이 여자는 풍만하고, 유려하고, 화장과 같은 수단으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높이고, 허영의 눈으로 자기의 그림자를 응시하고, 비치는 옷으로 남자의 관능을 부추기려 하고 있다. 두 여자는 번갈아가며 헤라클레스에게 오랫동안 말을 걸고 그를 행복으로 이끌 것을 약속한다. 마침내 헤라클레스는 ‘덕(아레테)으로의 길’을 결정한다.

선과 악이라는 서양 윤리학을 근원적 사고를 결정하는 이 이야기의 뿌리에는 헤시오도스가 서 있다. 헤시오도스는 “악이라고 하는 것은 별로 애쓰지 않고도 많이 손에 넣을 수 있다. 그것에로의 길은 평탄하고, 그것이 머무는 장소는 바로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사하는 신들은 아레테 앞에 땀(노고)을 두었다. 거기에 이르는 길은 멀고 험하고, 게다가 맨 처음에는 돌이 많이 깔린 길이다. 그러나 고지에 다다르면 아레테를 얻는 것은 쉽다. 거기에 이르는 길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말이다.”(<일과 나날> 287행 이하)

아레테로 향하는 길과 카키아(악덕)로 향하는 길! 헤시오도스에게 아레테는 아직 ‘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성공과 숙달’을 의미하며, 카키아는 악이라기보다는 ‘좋지 않은 불쾌한 것’이다. 여기서 헤시오도스는 행복에 이르는 길과 타락(파멸)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고 있다. 행복에 이르는 길은 처음에는 매서운 고난으로 채워진 것처럼 보이지만, ‘정상에서는’ 행복이 손짓하며 부르고 있다. 이와 반대로 좋지 않은(불쾌한) 것(禍)에로의 길은 별로 고통스럽지 않으면서도 바로 손에 넣을 수 있다.

<성경>에도 두 개의 길의 이미지가 있다. ‘빛의 길과 암흑의 길’, ‘죽음의 길과 생명의 길’, ‘지복(至福)에 이르는 좁은 길과 영겁의 벌에 이르는 길’이라는 우리에게 친숙한 이미지들이다. <예레미아 서(書)> 제21장 제8절에 이렇게 쓰여 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또 이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라.”

하지만 헤시오도스가 말하고 있는 의미는 지복의 길 혹은 영겁의 벌의 길을 약속하는 <성경>에서의 알림과는 다르다. 그는 종교적 계시에 기초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분별 있는 농부로서 들판에서의 경험을 진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레테, 즉 성공과 행복으로의 길은 매서운 노동의 길이지만, 이에 반해서 태만하고 안이한 길은 파멸로 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두 갈래로 갈라진 인생이란 저 숲길에서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 어느 길을 이미 선택하고 살아나가고 있는가? 죽음 직전에 ‘나는 죽으러 갈 것이고, 여러분은 살러 갈 것’이라는 소크라테스의 저 말 속에, 어느 길이 더 나은지는 ‘오직’ 신만이 안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기억해두는 것도 좋을 듯하다(<소크라테스 변명>).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재홍 연구원
숭실대학교 철학과 대학원·박사 졸업
캐나다 토론토대학 고중세철학연구소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
가톨릭대학 인간학 연구소 전임연구원
충북대학교 철학과 초빙교수
관동대학교 인문대학 연구교수
전남대학교 사회통합센터 부센터장
현) 정암학당 연구원(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