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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지 나 물

Relay Essay 제2280번째

엄마가 밥을 짓고 있다.
미리 불려놓은 보리쌀을 가마솥 바닥에 안치고 그 위에 한줌도 안 되는 쌀을 얹혀 할아버지 몫을 더한다.
오늘 엄마는 가지나물을 할 모양이다. 텃밭에서 따온 가지 서너 개를 밥솥 안에 넣고 찐다.
난 가지나물이 싫다. 약간 물렁물렁한 식감이 그렇고 보랏빛도 아니고 검은색도 아닌 찐 가지의 거무티티한 모양새가 그랬다.
엄마는 찐 가지를 세로로 길게 찢어, 마늘, 파, 고춧가루를 간장과 들기름에 버무려 무쳐 가지나물을 만든다.
가지나물은 엄마의 주특기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문밖 텃밭에는 가지며 파며 고추며 마늘이 널려 있어 손쉽게 구할 수 있고, 돈도 안 드니 손쉬운 반찬거리 일게다.
아무리 간단하고 손쉬운 나물이지만 엄마의 손길은 항상 따듯하고 또글또글 하다.

엄마 돌아가신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동료들과 점심을 먹는 자리다. 밑반찬에 가지나물이 나왔다. 옛 어머니가 만들어 주던 그런 가지나물이 아니다. 가지를 깍두기처럼 썰어 찐 것도 아니고 레인지에 데워 온 가지나물이다.
한 친구가 말한다.
“이제는 옛날에 엄마가 해 주시던 가지나물을 먹지 못할 거야.”
“요새 부인들이 가지나물을 만들지도 않지만 만들 줄도 모른다고.”
“옛날 엄마의 가지나물은 구수하고 달착지근했지, 거기다 들기름 맛은 어떻고…….”

식성이 변했나? 옛 가지나물이 먹고 싶고 그립다.
5년째 인도네시아 해외무료진료를 해 오고 있다. 자카르타에서 78Km 떨어진 다다 인도네시아라는 한국계 봉제공장에서다. 직원이 7000명이란다. 큰 규모의 공장이다. 직원을 위한 기숙사가 있고 식당이 있다.

매번 갈 적마다, 오는 사람마다 식당 음식이 한국 음식보다 맛있다고 소문이 자자하다.
배추김치, 깍두기, 깻잎 무침, 고추 장아찌, 감자조림, 오이무침 등등 어느 것 하나 인도네시아 음식과는 다른 순 한국식 반찬이다.

김치찌개, 미역국, 어묵국, 북엇국 등등 해외진료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아니다. 특히 지난밤 술 먹은 후 아침에 나오는 북엇국은 일품이다. 간간이 섞여있는 매운 청양고추 맛은 국을 시원하고 개운하게 할 뿐 아니라 숙취를 날려 보내고도 남음이 있다. 누구의 솜씨인지 모르나 대단한 손 매무새이고 손재주이다.

오늘은 가지나물이 나왔다.
세로로 찢어서 파, 마늘, 생강과 진간장에 버무려 나온 가지나물은 지난 어머니가 만들어 주던 그 가지나물이다. 엄마의 손맛이다. 먼 남쪽 이국땅에서 엄마의 손길을 맛보다니 얼마나 행복한가?
남을 도우려 와서 참 엄마의 손맛을 마음으로 느끼며 기뻐 할 줄이야 꿈엔들 생각 했겠는가?
다다인도네시아 식당 아주머니들 손끝의 마력에 모든 시름이 사그라진다.

신덕재 중앙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