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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세노파네스의 올림픽 비판

고대 그리스에서 의학과 철학

전혀 앞길을 내다볼 수 없었던 갈림길에서, 모처럼 남북한의 해빙을 가져온 ‘평창의 평화 올림픽’도 끝났다. 세계의 젊은이들이 함께 모여 공정한 경쟁을 통한 평화를 꿈꾸는 올림픽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해 주었다.

올림픽의 진정한 정신은 ‘평화’의 추구이다. 그 바탕에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높이 평가했던 자유로운 경쟁(eris)을 통한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따르려는 정신이 있었다. 그들은 ‘경쟁과 싸움’을 중요한 덕목으로 받아들였다. 폴리스와 폴리스 간에 필연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는 대립각을 ‘공정한 에리스에 의한 평화’를 통해서 해소하고자 했다. 이것이 고대의 올림픽 정신의 출발이었다.

아테나이오스의 ‘현인들의 만찬’에는 인간의 지혜를 사랑하는 것보다 육체적 힘을 자랑하는 ‘올림픽 게임’을 비난하는 음유시인 크세노파네스(기원전 570-475년)의 시가 나온다. 올림피아에 있는 피사의 샘터에서 열리는 올림픽 경기에서 승리하면, ‘영예가 주어지고 국가는 공적인 비용의 식사와 보물이 될 선물이 주어질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힘보다 또 말(馬)의 힘보다도 우리의 지혜가 더 낫다. 훌륭한 지혜보다 그런 힘들을 선호한다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 아무리 육체적으로 뛰어난 선수들이 있더라도 ‘그것으로 인하여 국가가 더욱 더 훌륭한 법질서(eunomia)를 갖추는 것은 아닐 것이기에.’

요새나 그때나 올림픽 경기에서 승리하면 시민들은 승리자에게 상당한 영예를 부여했고, 폴리스는 물질적 보상을 해 주었다. 현대 올림픽에서도 지나친 국가 경쟁 때문에 각 국가들은 메달을 딴 사람들에게 국가적 영웅 대접을 해주고, 물질적 보상을 최대한 약속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올림픽이 지나치게 정치화되고 자본화되어서 올림픽의 기본 정신이 망각되었다고 사람들은 비난한다. ‘평화’의 추구라는 올림픽 정신이 훼손되었다는 것이다.

올림픽의 이상과 정신이 훼손된 것은 이미 고대에도 있었다. 우리는 크세노파네스의 보고를 통해서 알 수 있다. 크세노파네스는 자신이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인간의 가치인 지혜(sophia)가 더 낫다고 주장한다. 육체적으로 강한 힘을 가진 것이 반드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훌륭한 덕은 아니라는 것이다.

크세노파네스는 올림픽 승리자들은 “나만큼 차지할 만한” 가치를 갖지 않기에 폴리스와 사람들이 부여하는 그 모든 것에 대해서 신뢰성을 줄 수 없다고 말한다. 인간이 진정으로 추구해야만 하는 것은 “사람의 힘도 말(馬)의 힘도” 아니며, 사려하고 남을 배려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지혜’이다. 남을 능욕하지 않고 약자를 배려하는 인간의 덕인 ‘지혜’야말로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임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렇기에 육체적 힘에 따라 명예와 부를 부여하는 것은 ‘제멋대로 된 관습’에 불과하다. 그는 단적으로 ‘훌륭한 지혜보다 그런 힘들을 선호한다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시민들 가운데 뛰어난 권투 선수가 있거나, 5종 경기에서, 레슬링에서, 발 빠르기에서 뛰어난 자가 있더라도 한 나라의 훌륭한 법질서가 더 잘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한 나라의 법질서와 정의가 올바르게 세워져야만 그 나라는 부강한 나라이고, 정의로운 나라이다. 설령 올림픽 승리자들에게는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이 가장 영예로운 것이라 해도, 지나치게 그들을 영웅시할 필요는 없다.

이것 저곳에서 각자의 생업을 위해 서로 다른 직업으로 그저 말없이 자신의 생활을 영위하는 이들도 나라를 위해서는 더 소중할 수 있다. 어쩌면 바로 이런 분들이야말로 ‘나라가 받는 즐거움은 아주 크고, 나라의 보고를 살찌우는’ 사람들일 수 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재홍 연구원
숭실대학교 철학과 대학원·박사 졸업
캐나다 토론토대학 고중세철학연구소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
가톨릭대학 인간학 연구소 전임연구원
충북대학교 철학과 초빙교수
관동대학교 인문대학 연구교수
전남대학교 사회통합센터 부센터장
현) 정암학당 연구원(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