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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 힘과 시간의 힘

기고

얼마 전 대학 졸업 30주년 기념을 하는 모임이 있었다. 대학 신입생 시절 만난 친구들이 어느덧 중년이 되어 우리 동기들이 처음 만난 나이보다 더 나이가 든 자식들을 둔 기성세대가 된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졸업 후 처음 만난 중년의 친구를 보며 학창 시절의 얼굴과 이름을 정확히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기억력이 둔해져 얼마 전 첫 근무를 시작한 전공의들의 얼굴과 이름도 잘 기억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것은 아마 생의 가장 아름다운 나이에 함께 했던 친구들에 관한 기억이 마음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자식을 키우며 살아가다 보면 이런 인연의 힘이 우리 삶에 얼마나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알 것 같다. 그동안 대학에 근무하며 가르치고 연구했던 일들은 오랜 시간 상아탑 안에서 함께 가치를 만들려고 노력한 많은 인연들과 함께 한 결과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의 재능을 기대하며 홀로 노력하여 얻은 것보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을 만나 합력하여 얻은 결실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지나온 시간이 알려주고 있다.

최근 언론을 장식하는 ‘미투 운동(#Me Too)’의 심각성은 잘못된 인연과 시간의 사용에 있을 것이다. 시간의 힘은 놀랍고 위대하며 때로는 무섭기도 하다. 지금의 나는 지난 시간 동안 쌓아온 추억 그 자체일 수 있다.

시간의 힘은 대단하여 한 사람에게 허용된 시간 중 특정한 부분에 집중된 시간은 중년을 넘어 일생 동안  위력을 미친다. 시간의 강물은 양순한 듯 흐르지만, 그 깊은 바닥에는 양날의 검처럼 날이 서 있어서 때론 한 개인의 삶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힌다. 지금의 나의 모습은 의미 있는 시간의 축적과 의미 없거나 해로운 시간의 축적의 혼합이고, 얼굴에는 그 시간이 준 영광과 상처가 고스란히 남겨져 있는 것이다.
 
앞으로의 시간 또한 아직은 날을 감춘 채 우리의 일상을 천천히 따라오며 둑에 물이 차오르듯 몸속에 차오를 것이다. 그 동안에도 가족의 사랑과 주위 사람들과의 인연이 이어질 것이고 이 세계와 사회가 주는 직, 간접적인 영향이 또한 쌓여갈 것이다. 그 시간의 축적은 먼 미래에 다시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몸과 마음에 남아 우리가 어느 날 문득 바라보는 거울에 그 흔적을 여실히 드러낼 것이다.

시간의 진실을 알게 되면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 필요 없는 일에 진을 빼지 않고, 욕심을 내지 않아 상처를 덜 받으며 사랑하는 이들과 좋은 사연을 만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충분히 있을 것이다. 또한 한 전문 분야를 담당하는 우리들의 일상에서 좋은 인연과 시간의 축적을 통하여 주위에 작지만 좋은 영향을 주는 삶이 되면 좋겠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