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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냐고 하면 뭐라 할까?

고대 그리스에서 의학과 철학

누군가가 우리에게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물음은 하루하루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당혹스럽기도 하고 부질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가 하는 문제는 당혹스럽기는 해도 부질없는 물음은 아닐 것이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한 번도 성찰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마치 한 번도 정비를 받지 않은 채 차를 몰고 다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물론 나의 차를 정비 한번 안 받았는데도 다행히 이제까지 별 탈이 없을 수도 있지만, 서서히 어딘가 망가져가고 언제 큰 사고로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이 순조롭고 잘 영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일지라도 성찰이 없이 살아가는 것은 너무 무모한 것이 아닐까?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만한 가치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소크라테스의 변론(변명)』 38a).

인간은 왜 사는 것일까? 이 물음은 두 가지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그것은 삶의 원인을 묻는 것일 수도 있고, 삶의 목적을 묻는 것일 수도 있다. 인간은 생존 본능에 따라 산다고 말한다면, 이는 삶의 원인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통상 우리가 왜 사는가를 물을 때는 이처럼 삶의 원인을 묻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목적을 묻는 것이다. 그러니까 “왜 사는가” 하는 물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하는 물음이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다양하게 나올 수 있겠으나, 궁극적으로 모두 행복을 위해서 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행복이란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도 다양한 대답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행복에 대한 인식에 따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도 달라질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 두 물음을 하나로 결합시켜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인가”를 묻는다. 이 문제는 소크라테스의 여러 철학적 논의의 구심점이었다.

행복에 관해서는 소크라테스 이래 오늘날까지 수많은 철학자가 고찰을 해왔다. 그런 만큼 행복에 관해 견해가 이전에 비해 진일보하고, 따라서 오늘날의 철학자들은 소크라테스보다 한결 더 진리에 다가간 발전된 행복론을 전해주리라 기대하게 된다.

그런데 과학의 경우 분명히 이론적 발전의 역사를 만들어 왔으나, 철학에도 그렇게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향후 칼럼을 통해 철학자들에 의해 거듭 검토의 대상이 되어 온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의 행복론을 살펴볼 것인데, 우선 소크라테스의 행복론을 엿볼 수 있는 플라톤의 대화편인 ‘에우튀데모스’(278e-282d)를 주목해 보기로 한다.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 혹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소유하게 되면 행복할 것으로 생각한다. 소크라테스도 일단 그렇다고 본다. 그러니까 행복이란 ‘좋은 것의 소유’라는 것이다.

그런데 좋은 것을 소유함으로써 우리가 행복해지는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이로울 경우일 것이다. 그러니까 좋은 것들을 소유만하고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것들이 우리에게 이로울 게 없으며, 이 경우에는 행복할 수도 없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행복하고자 하는 자는 좋은 것들을 획득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사용하기도 해야 할 것 같네”라고 말한다.

곧 행복이란 좋은 것의 소유(획득)와 사용이라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견해이다. 그러면 어떤 것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좋은 것일까?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기백
정암학당 학당장 역임
정암학당 이사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