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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and Off

스펙트럼

출근하는 길, 막연한 불안감으로 가슴이 콩닥콩닥 뜁니다. 오늘은 어떤 환자가 올까? 내가 진료 중에 실수를 하지 않을까? 막상 진료시간이 시작되면 잠시 불안감은 잊고 현실에 몰입합니다. 그러나 진료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심장이 또 한 번 바운스 바운스합니다. 내가 오늘 허튼 말을 하지는 않았을까? 뭔가 놓치고 지난 일은 없을까?

그럴 때마다 어떤 스님의 말씀을 떠올리고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씁니다. “앉아있을 때는 앉아 있는 생각만 하고, 서 있을 때는 서 있는 생각만 해라.” 앉아있을 때 설 생각을 하며 불안해 하고, 서 있으면서 앉을 걱정을 하고 있다 보면, 앉아 있는 그 순간, 서 있는 그 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없기 때문이지요. 사실 이 말씀은 학생 때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국어수업 시간에 수학숙제를 하고, 수학시간에 영어숙제를 하고 있다 보면 아무것도 제대로 안 된다. 그 수업시간엔 그 과목만 공부하라는 선생님 말씀이었습니다. 일과 가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워킹맘으로서 가능하면 지금도 그 원칙을 지키려 애씁니다. 병원에서는 병원 일만 생각하고, 퇴근해서 집에 가면 잠시 병원일은 잊고 가정 일에 충실하고자 합니다.

출근을 하면 믹스커피를 한잔 탑니다. 아메리카노도 카푸치노도 좋아하지만, 출근해서 차가와진 머그잔에 뜨거운 물을 부어 머그잔을 데우고, 물을 팔팔 끓여 진하고 달달한 믹스커피를 타며 하루를 여는 스위치를 켭니다.

딸아이는 학원을 다녀오면 강아지를 데리고 한바탕 뒹굽니다. 밖에서의 피곤한 하루를 정리하고 릴랙스를 하는 시간입니다. 학교에서의 일을 마무리하고 밤에 자기할 일이 끝나면 컴퓨터를 켜든, 노트를 들든 그림을 그립니다. 하루를 끝내기 위해 Off 스위치를 누르는 시간입니다.

한 단계를 시작하고 정리하는 나만의 On and Off 스위치가 있을 때, 그 순간의 현재에 몰두할 수 있고 혹은 릴랙스하며 하루를 마칠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작고 사소한 행복의 경험이 있지요. 요즘말로 “소확행”이라 합니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링겔한스 섬의 오후’에 나온 단어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첫 단어를 따서 만든 신조어랍니다. 아침에 갓 세탁해서 다려놓은 보송보송한 옷을 입을 때, 폭신폭신한 카푸치노를 마실 때, 요즘은 파아란 하늘만 봐도 행복하지요.

아무리 바빠도 강아지와의 짧은 산책으로 하루를 시작하시는 분도 계시고, 퇴근하고 아내와 함께 하는 게임으로 하루의 끝을 마무리한다는 분도 계시지요. 여러분은 어떤 일로 하루를 시작하고 끝맺으시나요?

복잡한 여러 가지 일을 머리에 한꺼번에 담고 있기보다, 나에게 작고 확실한 행복을 주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할 수 있다면, 조금은 심플한 하루하루가 되고, 조금 더 현재에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윤정 원장
장미치과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