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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신을 알라

고대 그리스에서 의학과 철학

널리 알려져 있듯이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즐겨 사용했다. 그러나 그가 이 말을 처음 한 사람은 아니다. 이 말은 소크라스 이전에 그리스 7현인 중 한 명인 킬론이 만든 말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말은 “무엇이나 지나치지 않도록 하라”, “인간은 인간사를 생각하라”는 경구와 함께 그리스의 델피에 있는 아폴론 신전에 새겨져 있었다. 이런 말들은 인간이 신의 세계를 넘봐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아폴론 종교의 세계에서는 인간이 감히 신의 세계를 넘보는 것은 오만방자(hybris)이고 이에는 응징(nemesis)이 주어지는데, 귀족들은 이런 이치가 평민들과 자신들의 관계에도 적용됨을 평민들에게 인식시키는 데 “나 자신을 알라”는 말을 이용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뜻을 담고 있던 말에 소크라테스는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오늘날도 많이 애용하는 말로 만든 셈이다.

“너 자신을 알라”란 말은 소크라테스가 즐겨 사용한 또 다른 말, 즉 “혼(영혼)을 돌보라”는 말과 짝을 이룬다. 혼을 돌보라는 것은 재산이나 외적인 좋은 것들에 마음을 쓸 것이 아니라 혼이 가능한 한 훌륭하게 되게끔, 특히 혼이 최대한 지혜롭게 되도록 혼에 마음을 쓰라는 얘기다. 그래야 진정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런데 혼을 제대로 돌보려면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고 그는 본다. 그래서 그는 “너 자신을 알라”고 역설하고 다녔던 것이다. 그러면 이 말을 무엇을 뜻하는가?

우선 ‘자기 자신’이 무엇을 뜻하는지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플라톤의 ‘알키비아데스’편의 논법을 이용해서 고찰해보자. 우리 자신은 어딘가에 가기 위해 차를 이용하고 또 우리의 몸을 이용한다. 그런데 ‘사용하는 자’는 ‘사용되는 것’과 다르다. 그러니 여기서 차와 그것을 이용하는 자인 ‘우리 자신’이 구분되고, 마찬가지로 몸과 ‘우리 자신’도 구분된다. 그러면 우리 몸을 이용한 ‘우리 자신’이란 무엇인가? 몸인가, 혼인가, 아니면 몸과 혼이 결합된 것인가? 그건 혼이라는 게 소크라테스의 생각이다. 그러니까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들이키고 숨을 거두기 전 친구들에게 “자네들 자신을 돌보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것은 “혼을 돌보라”는 말이며, “너 자신을 알라”는 것도 자신의 혼에 대해서 알라는 말이다. 

그러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이 말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 그 하나는 자신이 무지함을 깨달으라는 말이다. 그는 당시의 사람들이 무지하면서도 자신들이 무지함을 모르고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그가 보기에 행복하려면 무엇보다 앎이 있어야 하는데, 무지하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배우려고 하지 않아 아예 참된 앎을 얻을 기회를 가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친구인 카이레폰은 소크라테스가 당대에 가장 지혜로운 자라는 신탁을 받았다고 하는데,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그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자신이 무지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지함을 깨달으라는 것은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의 소극적인 의미라면, 그 말의 적극적인 의미는 우리의 혼에는 눈에서 가장 귀중한 눈동자와 같이 귀중한 능력이 있음을 깨달으라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사람들이 혼에는 참된 앎을 얻을 수 있는 능력 즉 이성이나 지성의 능력이 있음을 사람들이 깨닫고 그 능력을 사용해 혼이 최대한 지혜롭게 되도록 하고자 한 철학자였다.

“혼을 돌보라”는 말이나 “너 자신(혼)을 알라”는 말을 통해 혼의 중요성을 역설한 소크라테스의 외침은 오늘날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으나, 적어도 소크라테스 시대에는 혁신적인 말이었다. 소크라테스 이전에 사람들은 몸이야말로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크게 달라졌을까? 혼을 돌보라는 그의 외침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되새겨볼 만한 것이 아닐까?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기백
정암학당 학당장 역임
정암학당 이사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