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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상황에서의 설명의 의무

스포츠치의학회가 들려주는 평창올림픽 뒷이야기 (4·끝) 이의석 교수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에 참가하게 된 건 순전히 대한스포츠치의학회 덕분이었다. 그 동안 스포츠치의학회에서 활동하면서, 특별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사회에서 동계올림픽 홍보를 하여 지원하게 되었다. 일주일 이상 역할을 할 수 있는 치과의사가 필요하다고 하여 남겨두었던 연가를 사용하여 지원하였다.

강릉 지역을 선택하면서, 어린 시절 강릉에서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초등 축구부 응원을 위해서 평일 방과후에는 연습하고 일요일에도 종합운동장에 나가서 카드섹션을 했던 기억들, 무던히 다치면서도 남대천에서 실전 수영을 배우고 놀던 시간들, 조금만 나가면 초등생 한 키를 넘는 깊이의 경포 바다에서 아빠랑 동생이랑 해수욕했던 기억들이 아직도 선명하다. 겨울이면 얼었던 경포호수에서 스케이트를 탔는데, 경포호 중간에 있는 정자를 둘러보고 한 바퀴 돌고 오면 집에 돌아올 정도로 호수는 넓었다. 동생은 아빠 앞 자리 그러니까 이륜차 기름통 위에 타고, 나는 뒷자리에 타고 겨울에 경포로 나가면서 얼어있는 도로에 미끄러졌지만, 아빠의 보호로 아무도 다치지 않았던 위험했던 순간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강릉 선수촌으로 향했다.

강릉선수촌에 도착해서 선생님들을 만나고 별 일이 없이 일정에 익숙해질 즈음이었다. 선수촌에서는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오전 오후반으로 근무를 했었는데, 오후반 담당이었다. 밤 8시 반 막 퇴근을 위해 정리하려고 할 무렵, 아일랜드 올림픽 팀장이 치료받으러 내원하였다. 며칠 전부터 이가 아파오기 시작했다는데, 이미 신경치료는 되어 있고, 치근단 부위에 살짝 보이는 병소… 다음날 저녁에 출국하여 두바이를 거쳐서 회의하고 일주일 내내 세계를 다니며 회의를 하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고국 아일랜드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란다. 발치 해 달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치아가 아까우므로 고국에서 잘 치료받으라고 투약 처방을 하였다. 돌아온 답은 그 상태로 비행기를 탔다가 너무 아파지면 참을 수 없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일주일을 세계 여기저기를 다녀야 하는 상황에서 치통은 도저히 참을 수 없으니 치아를 빼 달라고 하는 모습.

한 나라의 스포츠 수장이 결손치가 많은 상태에서 치아가 아플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발치를 결정하는 한계 상황이 안타까웠다. 본 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세 아이의 엄마로 치료 받으러 다닌다는 것이 쉽지 않겠다는 상황도 발치를 하기로 한 결정에 큰 기여를 하였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치료 받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는 것도 판단에 영향을 주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투약 처방을 기다리면서 동반한 동료들과 상의도 하고 정성을 들여서 설명하는 시간이 참으로 길었다. 그러나, 환자에게 모든 정보를 알려주고 스스로 결정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판단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바람직하다는 생각으로 밤이 늦었지만 충분히 기다리면서 설명을 하였다.

결국 밤 10시가 넘어서 발치를 결정하였다. 한계 상황에서 환자가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치과위생사 선생님들도 함께 기다려 주셨고, 11시가 다 되어서야 진료를 마칠 수 있었다. 평소 숙소로 돌아가는 9시 반을 훨씬 넘어서 11시 반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참고로 알려드리면, 숙소는 선수촌과 약 한 시간 가량 떨어져 있는 속초에 위치하고 있었다. 매일 출퇴근하면서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으나, 관객을 위한 배려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진료를 위해 끈기를 가지고 함께 기다려주었던 김성태·최형준 원장님, 정인실 선생님을 비롯하여 김미소·고귀식·오현영 선생님, 함동원·송호택·이인성 원장님, 박원서 교수님, 그리고 평창과 강릉을 오가면서 모든 일을 진두 지휘하셨던 김우택 원장님, 강릉선수촌 궂은 일을 도맡아야만 했었던 이민영 사무관님, 올림픽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안해 주셨던 권긍록 대한스포츠치의학회장님 등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강릉에서 지내면서 왜 그렇게 아빠와의 추억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는지… ‘아빠 사랑해요! 고마워요, 죄송해요 아빠!’ 올림픽이 끝나자 마자 부친상을 당하여 너무 슬픈 상황에서 평창 패럴림픽에 지원나갔을 때, 아픔을 함께 나눠주시고 위로하여 용평까지 와서 세심히 배려해 주셨던 송호택 원장님, 권용대·남옥형·류재준 교수님, 이동욱·정시동·양동현·김보라·김소연·이은영·김규홍 선생님 등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이 지면을 빌려서 위로해 주신 모든 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이의석 교수
고려대학교 임상치의학대학원
구로병원 구강악안면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