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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후배 그리고 나

Relay Essay 제2290번째

에피소드 1.
20년 전 개원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47번 치아에 신경이 쓰일 정도의 통증을 겪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다가도 씹을 때면 느껴지는 시큰함. 멀리 있는 선배에게 전화로 증상을 호소했더니 cracked tooth syndrome이 의심된단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토요일, 그 선배는 서울에서 내가 있는 대구까지 직접 왕진을 오셨다. 진료의자를 선배에게 내어드리고 유니트체어에 누었을 때의 안도감, 치아 삭제 후 임시로 씌워진 SS크라운으로 처음 씹었을 때의 사라진 통증에 대한 신기함 등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된다.

에피소드 2.
2주전 토요일 오후, 자극적인 매운 음식을 먹는데 갑자기 예의 47번 치아에 심한 통증이 느껴지더니 그 이후 계속, 물 등 액체 종류가 닿으면 통증은 반복되었다. 며칠을 견디다가 갓 개원한 후배의 치과를 찾았다. 후배는 크라운을 제거하고 레진코어 수복 후 레진임시크라운을 장착해주었다. 아직도 가끔은 자극에 심하게 시리지만 후배의 권유대로 예후를 관찰 중에 있다.

20년 전, 멀리까지 달려와서 치료해주신 선배에게 당연히 감사한 마음은 가졌었지만, 개원의가 하루의 진료를 포기하고 낯선 곳에서 진료를 베푼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지, 시간이 지나면서야 그 선배의 사랑과 능력이 새록새록 더 깊게 와 닿는다. 3년 전 여자동문회에서 뵈었을 때의 그 선배는 여전히 환자를 생각하는 천생 치과의사이시면서 후배들을 다독이고 이끄는 훌륭한 지도자이셨다.

오랫동안 봉직의로 있다가 개원한 후배는 평소에는 여리고 겸손하기만 한데, 진료실에서의 모습은 배려심과 위엄을 두루 갖춘 실력 있는 치과의사였다. 아직 정리가 덜된 개원 초기의 치과에 찾아온 선배 환자가 귀찮고 부담될 만도 한데 성심성의껏 진료해 주는 모습에 존경심이 들었다.

개원 초기에는 “원장님, 제 이는 원장님께 맡길 거니까 이 자리에 오래오래 있어주세요”라는 환자분들이 상당수 계셨는데, 한 자리에 오래 있어서 그런지 요즘에는 “원장님, 치과 일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이 일 너무 오래 하지 말고 일찍 은퇴해서 여행이나 다니면서 즐겁게 사세요”라고 말씀해주시는 환자분들도 계신다. 약 20년의 시간차를 두고 환자분들로부터 듣는 두 가지 말씀들은 상반된 의미를 가진 것 같으면서도 모두 동네치과의사를 격려하고 사랑하는 덕담으로 여겨져서 그 말씀을 건네주셨던 환자분들이 너무 고맙다. 그렇다고 치과 일이란 게 힘든 게 전부인 것은 아니고 내가 당장 일찍(?) 은퇴할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오랫동안 매주 화요일 오전은 휴진을 하다가 작년 후반기부터는 화요일 종일 휴진을 하고 있다. 최근 한 환자분께서 오셔서 화요일에 종일 전화를 했었는데 받지 않아서, 우리 치과 환자이시기도 한 직장 동료분과 같이 “그 치과 망했나보다”라고 이야기 했었다고 스스럼없이 말씀하셨다.

지금 60대의 연령이신 그 환자분께서는 40대 중반이 되도록 편측 제1대구치의 scissors bite을 갖고 계셔서 유독 그 치아 주변만 만성치주염으로 고생하고 계셨었다. 간단한 교정치료로 교합문제를 해소해 드린 결과 그 후 20년 가까이 건강한 치주와 치아 상태를 유지하고 계시기에, 매년 2회의 정기검진 때마다 치과의사로서의 보람을 느끼게 해 주시는 분이고, 그 환자분의 직장 동료 또한 스케일링과 검진을 위해서 매년 2, 3회 꾸준히 내원하시면서 전반적인 치주 건강을 회복, 유지하고 계시며 불과 두 달 전에도 내원하신 바 있는 분이시다. 그런데 그 두 분께서 그런 인식(우리 치과가 사전 예고 없이 두 달 만에 폐원할 수도 있고, 폐원은 곧 “망한 것”이라는 사고)을 가지고 계셨다는데 적잖이 놀랐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분들의 몫이기에 내가 그분들의 사고를 바꾸고자 설득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어서 환자분의 말씀을 웃음으로 넘겼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분들 외에도
혹시 앞으로나마 “갑자기 망했다”고 생각하실 환자분들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급히 전화 자동응답시스템을 신청한 것뿐이었다.

돌이켜보면, 어떤 진료를 했을 때 나는 술자로서의 보람을 크게 느끼는데 진료 받으신 환자분은 정작 같은 정도의 만족감을 느끼지 않거나 만족하시더라도 그 사실을 오래 기억하고 계시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반대로 나는 다만 나의 할 일을 했을 뿐인데 환자분께서 과하게 감사해주시는 경우도 있고, 환자분의 조건 등으로 인해 제반 제약 상황에서 진료했을 때 술자인 나는 결과에 꽤 아쉬워하게 되는데도 환자분께서는 아주 좋아하시는 때도 있다.

물론 통상적인 조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과정을 거쳤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오는 수도 있고, 내 관점에서는 결과가 괜찮은데도 환자분께서는 그 결과에 만족하시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치료의 과정과 결과, 술자와 환자의 만족도가 꼭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과진료는 꽤 정직한 과정의 연속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러한 정직한 과정의 수행을 위해 공부하고 노력해야 하는 치과의사라는 직업은 꽤 매력 있는 직종에 속한다고 본다.

개원초기에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신, 롤모델같은 선배를 둔 것은 커다란 행운이었다. 새로 개원한 후배는 예전의 개원 이력도 있고 봉직의로서 많은 경험을 쌓은 터여서 내가 후배에게 꽤 괜찮은 선배 역할을 할 여지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래도 후배에게 뻔한 조언을 한다면, ‘나’라는 이름을 내건 나의 치과에 환자분이 방문한다는 것은 나를 신뢰한다는 것이기에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고, 그러한 환자분 개개인과 오랫동안 신뢰를 쌓아가며 여정을 함께 할 여지가 있다는 것은 더더욱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때론 나의 진심과 노력의 결과가 환자분들께 고스란히 전달되지 않는다 하여도, 진료의 과정이나 환자분들과의 소통에 있어서 흔들리지 말라고도 말하고 싶다. 하긴 후배는 이미 나의 47번 치아를 본인의 판단대로 잘 치료해주고 있어서 나의 조언이 무색하지만 말이다.

나의 후배, 그리고 성실히 진료하시는 모든 치과의사 선생님들 파이팅!

 

김효은 우정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