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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밥 딜런’이 될 수 없다

Relay Essay 제2291번째

도 어릴 적 여느 소녀들과 마찬가지로 신데렐라 스토리를 꿈꿨다. 아니, 백마탄 왕자님한테 기대어 왕비가 되지 않더라도 어느 날 나에게 인생역전의 행운이 찾아오기를, 성공신화의 주인공이 되기를 꿈꾸며 살았다. 부족하진 않았으나 여유롭지 못했던 어린 시절 부모님의 빚의 무게만큼 삶의 무게를 너무 일찍 알아버려서 일까?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도 대부분 한사람의 성공스토리에 관한 일대기 영화, 신데렐라 스토리와 같은 것들 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영화들이 실제로 그랬다. 언제나 주인공은 많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꿈을 이루거나 성공했다. 그래야했다. 그런 것들이 더 재미있고 극적이니까. 그리고 그런 영화와 글을 읽고 있으면 마치 나도 그렇게 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집에 돌아와 현실을 마주하고 직시할 때면 더 큰 허탈감과 좌절감이 밀려왔다. 나는 무엇을 꿈꾸며 사는가.

시린 겨울 코트도 없이 낡은 기타와 우연히 떠맡게 된 고양이 한 마리가 전부인 포크송 음악가 르윈 데이비스는 돌아갈 집도 없이 매일 매일 지인의 소파를 전전한다. 듀엣이었던 그의 음악 파트너는 자살했고 그의 레코드판은 먼지만 쌓여간다. 절망 말고 그에게 남은 건 없다. 그러다 유명 음악 프로듀서인 버드 그로스만을 만나기 위해 시카고를 향한 여정에 오르게 되고 로드무비라고 보기에도 어려운 잠깐의 그 길 위 어디에도 그가 머무를 곳은 없었다. 그렇게 고생스런 여정 끝, 버드 그로스만 앞에서 실력을 보일 기회를 얻었다.

르윈의 노래를 듣고 난 버드의 평은 명료하다.
“솔로로는 안 되겠어. 듀엣이었다고? 재결합하게.”
아무런 부언 없이 르윈은 답례한다.
“좋은 충고네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그는 영화의 첫 장면에 등장한 자신이 노래하던 뉴욕의 작은 클럽으로 다시 돌아와 노래한다. 그의 인생은 다를 게 없으며 영화의 처음 한 사내에게 얻어맞은 것처럼 마지막 장면에서도 얻어맞으며 끝난다. 그러나 그는 처음과 다르게 자신을 친 그의 뒷모습을 보며 인사를 건넨다.
“Au Revoir(또 봐요 안녕)”

그리고 그의 무대 다음에 당시에 무명이었던 포크송 가수 밥 딜런이 노래한다.

이 영화 속엔 기승전결도 없고 성공스토리도 없다. 처음과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르윈만 존재한다. 그러면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삶의 절망인가?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굴레인가? 처음과 마지막 장면의 르윈은 같은 사람인가?

자신의 파트너가 자살한 후 부르지 않던 if we have wing을 처음과 같은 Hang me, oh hang me 다음에 1인칭으로 담담히 부르는 르윈의 모습에서 그의 내면은 달라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20~30대는 비트코인 블루(우울증)에 빠져있다. 자신의 삶에는 변화가 없는데 상대적 박탈감에서 오는 우울감이 덮치고 있다. 가상화폐가 주는 실질적인 부를 쫓은 이들 또한 자신의 대담함과 소심함에 후회를 반복한다.

작년 기사 중에 30대는 집단우울증이 의심될 만큼 삶의 만족도 조사에서 전반적으로 낮게 나왔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특히나 남들과 비교하며 삶을 사는 사람들에겐 이러한 큰 이벤트에 자신이 소외되었다고 느껴 불안과 우울은 더 컸으리라. 
코엘 형제의 ‘인사이드 르윈’이란 영화가 나에게 크게 와 닿은 이유는 주인공의 거창한 성공스토리를 말하지 않으며 우리 주변에 어디에나 있는 ‘르윈’의 일상을 얘기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밥 딜런이 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담담히 자신의 길을 걷는 르윈처럼 어제와 다른 르윈이 될 수는 있다. 길을 걷다 웅덩이를 밟더라도 그곳에 그저 있었던 물 웅덩이를 탓할 수는 없다. 물이 스며 질척이는 신발 때문에 불쾌 할 수도 있지만 계속 걸어야 한다. 다음날 우리는 웅덩이를 피하기 위해 다른 길로 돌아갈 것이고 그 길에서 또 다른 이벤트를 만날지도 모른다. 우리의 인생 또한 그렇다. 그저 어제보다 조금 더 단단한 새로운 일상을 만날 뿐이다. 


주혜민 부산대치과병원 구강내과 전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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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