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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삶이 행복한 삶일까

고대 그리스에서 의학과 철학

우리는 즐거울 때 행복하다고 말하곤 한다. 이는 오늘날의 행복관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공리주의자들은 즐거움과 좋음(선)과 행복을 같은 것으로 보기도 한다. 즐거움과 행복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고대 그리스 철학부터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금욕주의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즐거움에서 행복을 찾는 쾌락주의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는 즐거움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보여주는데, 여기서는 플라톤이 저술한 ‘고르기아스’라는 대화편에서 쾌락주의자인 칼리클레스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반론을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즐거움은 욕구의 충족에서 주어지는데, 소크라테스는 욕구를 충족이란 밑 빠진 독에 물붓기와 같다고 보며 두 가지 설화를 들려준다. 우리의 몸속에 있는 혼의 부분들 중 욕구들이 들어 있는 부분은 쉽게 설득당하고(pithanon) 변덕스러워서 항아리(pithos)라 불렸는데, 특히 어리석은 자들의 그 부분은 무절제하고 만족할 줄 모르므로 ‘구멍 난 항아리’라 불렸다고 한다. 또 하나의 설화에 따르면, 절제 있는 사람의 경우 그의 항아리들이 멀쩡하고 가득 채워서 신경 쓸 일도 없어서 편히 쉴 수 있는 반면, 무절제한 사람의 경우 그의 항아리들이 구멍 나 있어서 밤낮으로 줄곧 그것들을 채울 수밖에 없거나 극단적인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러한 설화와 관련해서 칼리클레스는 항아리를 다 채운 절제적인 사람에게는 더 이상 아무런 즐거움도 없게 되므로, 그의 삶은 마치 돌처럼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한다. 그가 생각하는 인간의 행복한 삶은 욕구를 끊임없이 채우며 즐거움을 만끽하는 삶이다. 따라서 그로서는 사람의 욕구적인 부분이 구멍 난 항아리와 같다는 것이 오히려 천만다행이다. 계속 채우며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배설하면서 계속 먹어댄다고 하는 게걸스러운 어떤 새와 같이 사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 셈이다. 배고픔이나 목마름 등과 같은 욕구를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는 데서 행복을 찾는 칼리클레스에게 소크라테스는 “가려운 데가 있는 사람이 긁고 싶어서 마음껏 긁을 때, 평생을 계속 긁으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겠느냐”고 조롱조로 묻는데, 칼리클레스는 긁는 사람도 즐겁게 살 것이고, 따라서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즐거운 삶을 행복한 삶이라고 보는 칼리클레스의 견해는 즐거움과 좋음을 동일시하는 것이라고 소크라테스는 본다. 즐거운 삶이란 즐거움을 지닌 삶이고, 행복한 삶이란 좋음을 지닌 삶이기 때문이다. 즐거움과 좋음이 같다고 보는 견해는 고대로부터 널리 퍼져 있는 견해이고, 공리주의의 기본 전제이기도 하다. 소크라테스는 즐거움과 좋음이 같다고 보는 통념에 맞서 그 둘이 다름을 밝히고자 한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즐거움에는 좋은 즐거움이 있는가 하면 나쁜 즐거움들도 있다. 이로운 즐거움들은 좋지만 해로운 즐거움들은 나쁘다. 무언가 좋은 것을 생기게 하는 즐거움들은 이로운 것이지만, 무엇인가 나쁜 것을 생기게 하는 즐거움들은 나쁜 것이다. 먹고 마심에서 얻는 몸에 관련된 즐거움들 가운데 몸 안에 건강이나 몸의 힘, 또는 몸의 다른 어떤 덕을 생기게 하는 즐거움들은 좋지만, 이와 반대되는 것들을 생기게 하는 즐거움들은 나쁜 것이다. 고통들도 그와 마찬가지로 어떤 것들은 쓸모가 있지만 어떤 것들은 몹쓸 것들이다. 그러니 즐거움이든 고통이든 쓸모 있는 것들을 선택해야 한다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롭고, 그래서 좋은 즐거움을 선택하고 추구하려면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즐거움에 좋은 즐거움과 나쁜 즐거움이 있다는 견해는 쾌락주의는 거부한다. 쾌락주의의 한 유형인 공리주의에서는 모든 즐거움은 다 좋다고 본다. 그러면 사디스트의 즐거움도 좋은 것일까? 공리주의에서는 역시 좋다고 본다. 다만 사디스트가 얻는 즐거움에 비해 그의 상대편이 겪는 고통이 더 크기 때문에 사디스트의 행위는 옳지 못하다고 여긴다. 과연 그런가? 이보다든 사디스트의 즐거움은 나쁜 것이고, 나쁜 즐거움이 있으므로 쾌락주의는 옳지 않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기백
정암학당 학당장 역임
정암학당 이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사학과 연구교수 역임
의철학회 이사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