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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직업

스펙트럼

4월 21일~29일까지 강연차 이탈리아를 다녀왔다.
이탈리아는 이번까지 3번째 방문이었지만 밀라노만 2번째였고 제노아(제노바)는 처음 가보는 도시였다.

여느 유럽의 나라들이 그러하듯 관광지는 영어만 해도 돌아다니는데 무리가 없었으나 제노아라는 도시는 아직 아시아권에 많이 소개가 안 된 이유인지 식당에도 이탈리아어 메뉴판이라 메뉴 선정에 다른 대도시보단 어려움을 겪었다.

제노아 대학에서 4차 산업 혁명에서 의료에 대한 전제 조건에 대한 강연을 하고 개인정보보호법에 대한 깊은 논의를 했던 뜻깊은 일정이었다.

특히 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EU에서 2016년 공표한 개인정보보호규정으로 2018년 5월 25일부터 시행)은 모든 산업 전 분야에 당장 적용되는 것으로 치과 산업이나 기자재 업체들도 유럽과 거래를 위해선 반드시 숙지해야 할 내용이었다.

배움과 토론에 열정적이었던 시간들과 맛있는 이탈리아 요리들을 접할 수 있었던 즐거운 여정이었다.
특히 제노아에서 3일은 최고의 이탈리아 요리와 맛있는 화이트 와인, 식후 디저트 술인 레몬 첼로를 즐길 수 있었다.

심지어 강연 전 점심 식사 후에 디저트로 30도가 넘는 술 한잔은 잊지 못 할 것 같다.
제노아 일정 3일중에 2일은 제노아 대학 로스쿨 교수인 안드레아의 안내를 받으면 중세시대 건축물과 미술사를 들었다.

물론 중간 중간 안드레아가 추천해준 현지 맛집 투어도 너무나 행복했다.
같이 갔던 일행들도 현지 문화와 음식에 즐거워 했지만 가장 맛있게 먹었던 곳은 따로 있었다.
제노아에 도착한 첫 날 호텔 프론트에 추천해줄 식당이 있냐고 물었더니 작은 골목의 한 허름한 식당을 알려주었다.

11시 조금 넘어서 도착한 우리 일행은 메뉴판을 봤고 영어가 없음에 잠시 당황하다 겨우 주문을 할 수 있었다.
제노아가 항구 도시라 해산물 위주로 주문을 했고 주당들의 꿈인 낮술을 위해 화이트 와인도 0.5리터를 시켰다.
홍합, 문어, 오징어, 새우, 작은 물고기로 여러 요리가 나왔는데 일행 모두 여지껏 먹어본 이탈리아 요리중 최고라고 감탄을 했다.

우리 일정이 정해져 있는 관계로 여기를 또 올 수 없는 것에 아쉬움이 클 정도였다.
우리가 주문한지 30분쯤 지나자 식당이 사람들로 가득차는 모습에 ‘아 진짜 우리가 현지 맛집 제대로 왔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심지어 가격은 그 이후 다닌 유명한 식당이란 곳의 1/2 정도였으니 우리가 느낀 만족감은 어마어마했다.

평소 관찰을 즐겨하는 나는 이 식당의 강점은 무엇일까 꼼꼼히 살펴봤다.
‘맛? 가격? 음..이건 기본으로 깔고 있구나’
하지만 더 크게 감명을 받은 건 식당 주인과 종업원 이었다.
가득찬 테이블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바게트 빵을 썰면서도 굉장히 활기차게 움직이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다.

운 좋게 제노아를 떠나기 전 그 식당을 다신 한 번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처음이 너무 좋아서인지 메뉴도 똑같이 시키고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즐길 수 있었다.
같이 간 일행 중에 방송국 PD, 작가들을 많이 알고 있는 한 분이 이런 식당은 소개가 되어야 한다면서 식당 주인에게 한국에서 온 관광객인데 실례가 안된다면 한국 방송에 한번 소개해도 될까요? 라고 정중히 의향을 타진했다.

한국에서는 방송에 출연한 식당들이 겪는 어려움과 사람들의 극성을 알기에 주인의 의향부터 타진할 수 밖에 없었다.
제안에 주인은 흔쾌히 동의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일에 대한 생각을 말하는데 무척 감명 깊었다.
이렇게 손님이 많고 서빙 인원도 적은데 힘들지 않냐고 하자 자신은 이 일이 너무나 좋고 일을 하는데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고 또 식당에서 손님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힘들지 않다고….

사실 이번 이탈리아 방문을 앞두고 발표 준비하랴 환자 보랴 일에 너무 치여 어두운 얼굴로 환자들을 대했던 내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너무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바게트 빵을 자르더라도 저렇게 활기차게 신나게 하는데 저 모습을 보고 좋아하지 않을 손님이 어디 있을까?

짧은 시간이었지만 일과 직업에 대한 생각을 잠시나마 할 수 있었던 시간에 감사했다.
보통은 음식 사진들을 찍지만 우리는 거기 주인과 스탭들과 사진을 찍었다.
한국에서의 지친 일상들에서 잠시나마 자유로움을 느꼈지만 그 또한 내 일 내 직업이 만들어준 선물임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얘기들을 하면서 식당을 나섰다.

다음번 제노아 방문도 초청 받은 우리 일행은 그때 꼭 이 식당 다시 오자는 다짐과 한국에 가서 각자의 일을 좀 더 사랑하고 열심히 하자고 했다.
여행은 힐링도 주지만 이런 큰 깨달음도 주는 것 같다.
그래서… 또 여행가고 싶다 ^^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진균 페리오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