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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감옥에 다녀와서 칼로 죽여버리겠다”

기자수첩

“의사도 두려움을 느끼는 존재예요.”

사람은 누구나 두려움을 느낀다. 공포는 본능이다. 의사도 사람이다. 사람의 생명과 신체를 다루지만, 생명의 외경 앞에서 두려움을 초월할 재간은 없다. 더구나 본인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라면? 

지난 8일 경찰청 앞에 수백 명의 의사들이 어깨를 겯고 구호를 외쳤다. “의료기관 폭행발생 환자생명 위협한다!” 한 덩어리가 된 의사들은 환자생명과 국민건강을 외쳤다. 물론 이것은 지극히 온당한 명분이다. 촌각을 다투는 응급실에서 주취 폭력에 막힌 응급전문의가 응당 시행해야 할 CPR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아찔하다. 

하지만 이 구호 안에는 공포에 직면한 인간 군상의 단면이 배어있다. 환자생명과 국민건강은 전문직업인으로서 일생의 화두로 짊어져야 할 굴레이지만, 가운을 벗은 자연인에게 폭력은 똑같은 무게의 공포에 다름 아니다. 그리하여 의사들은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두렵다.” 

집회가 끝나고 만난 한 응급의학 전문의는 이렇게 말했다. “익산의 의사가 폭행을 당하는 그 장면도 두려웠지만, 정말 끔찍했던 것은 ‘감옥에 다녀와서 칼로 죽여버리겠다’는 말이예요. 그런 말을 들은 의사가 앞으로 정상적인 진료활동을 할 수 있을까요? 의사도 두려움을 느끼는 존재예요.”

CPR을 자주 시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치과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치과는 지극히 예민한 공간이다. 치과에는 환자와 치의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진료에 임하는 치과의사는 손끝에 자신의 오감을 집중시킨다. 그런 상황에서 임플란트에 앙심을 품은 어느 환자는 치과의사의 등에 칼을 꽂는다. 치료에 불만을 품고 연약한 여 의사에게 칼을 휘두른다. 어떤 치과의사는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치과는 ‘프라이빗’한 공간이기에 역설적으로 폭력에 더욱 취약하다. 제지할 인력이 많지 않은 것과 여성 스탭의 비중이 높은 것도 취약점으로 꼽힌다. 그래서인지 최근 치과에서 벌어지는 진료실 내 폭력은 메디컬의 그것을 압도하고 남을 만큼 충격적이다. 많은 치과의사들이 두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치과도 두렵다. 

경찰청 앞 규탄대회에 참가한 김철수 협회장은 앞의 사례들을 열거하면서 “3만 치과의사들도 이제는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고 사자후를 토했다. 그러면서 “의료기관 내 폭력이 근절되는 날까지 연대를 함께 하겠다”고 공언했다. 

두려움을 이기는 힘은 연대다. 개개인의 두려움이 모여 스크럼을 짜면 정책과 제도를 바꾸는 강력한 목소리가 될 수 있다. 현재 청와대 청원란(안전, 환경)에는 진료실 폭력을 규탄하고 엄정한 법 집행을 촉구하는 청원이 진행되고 있지만, 숫자가 부족하다. 치협 회원의 단합된 목소리를 보탠다면 연대의 틀은 더욱 단단해 질 것이다. 이것은 타인을 위하는 일이 아니라 회원 자신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