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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부정의보다 더 좋은 것인가?

고대 그리스에서 의학과 철학

인간을 투명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요술반지를 얻게 된다면, 무엇을 할까? 플라톤의 <국가> 2권에서 글라우콘은 양을 치는 목자인 기게스가 그런 요술반지를 우연히 획득하여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exousia)를 누리게 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왕비와 간통하고 왕을 살해한 후 왕국을 차지했다고 한다. 글라우콘은, 부정의한 사람뿐 아니라 정의로운 사람도 그런 반지을 끼게 된다면 정의로움을 유지하지 못하고, 이를테면 시장에 가서 갖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갖고, 원하는 누구와도 동침을 하고, 또한 마음대로 누구든 죽이는 등 부정의한 행위들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에 근거해서 그는 아무도 자발적으로 정의롭지는 않고, 어쩔 수 없어서 정의로운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처벌을 면할 수만 있다면 부정의가 정의보다 더 좋은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면 처벌이나 결과와 상관없이 정의가 부정의보다 더 좋은 점은 없을까? 다시 말해 결과와 상관없이 정의로운 사람이 부정의한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까? 바로 이 문제가 플라톤의 <국가>의 일차적인 문제이다. 다만 그는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려면 정의(dikaiosynē)가 무엇인지를 우선 밝혀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정의에 대한 고찰을 위해 혼을 세 부분으로, 즉 이성적 부분(이성), 격정적 부분(격정), 욕구적 부분(욕구)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혼의 세 부분 사이에 이성이 지혜에 의해 지배하는데 의견일치를 보고, 각 부류가 제 할 일을 하는 것이 혼에서의 정의라고 규정한다(441d-e). 그러면 정의로운 자가 정의롭지 못한 자보다 어떤 점에서 더 행복한가? 이에 대한 두 가지 답만을 주목해보기로 한다. 하나의 답은 <국가> 4권에서, 또 하나의 답은 9권에서 찾을 수 있다.


그 한 가지 답은, 정의롭지 못한 혼은 이성이 격정이나 욕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격정이나 욕구가 이성을 지배하는 혼과 같다는 것이다. 이런 혼의 상태는 “혼의 세 부분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이들 셋으로 이루어진 혼 전체를 위해서 유익한 것에 대한 지식”(442c)이 부재한 상태를 뜻한다. 플라톤은 이런 상태의 혼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욕구나 격정은 맹목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욕구나 격정은 그것들의 대상이 좋은지 나쁜지, 어떤 성격의 것인지 모른 채 무작정 갈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혼의 부분들이 혼에 유익한 것에 대한 지식을 지닌 이성의 지배를 받고, 세 부분이 각기 제 할 일을 함으로써 조화가 이루어진 상태야 말로 행복한 상태라는 것이 플라톤의 견해이다. 여기서 그는 몸이 건강하지 못하면 온갖 음식물이나 온갖 부와 권력을 갖고 있더라도 우리의 삶이 살만한 가치가 없는데, 하물며 우리가 그것에 의존해서 살아가고 있는 바로 혼이 타락할지라도 즉 정의롭지 못할지라도 우리의 삶이 살만한 가치가 있겠느냐고 묻는다(<국가> 444e-445b). 
 
또 하나의 답은, 정의로운 자가 가장 큰 즐거움을 누린다는 것이다. 플라톤에 의하면, 혼에 세 부분이 있듯이, 즐거움에도 세 가지가, 즉 세 부분 각각에 고유한 즐거움이 있다. 이를테면 지혜를 좋아하는 부분(이성적 부분)에는 배움의 즐거움이, 명예를 좋아하는 부분(기개적 부분)에는 명예로 인한 즐거움이, 그리고 돈을 좋아하는 부분(욕구적 부분)에는 재물로 인한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 즐거움 중에 배움의 즐거움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것이 플라톤의 견해이다. 왜냐하면 세 가지 즐거움을 두루 다 경험해 본 사람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뿐인데, 그들이 배움의 즐거움을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580d-583a) 그런데 정의로운 사람은 혼에 유익한 것에 대한 지식에 의해 혼을 이끄는 이성적인 사람 혹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정의로운 사람만이 배움의 즐거움을 누리며, 이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란 것도 안다고 플라톤은 본다. 그리고 여기서 즐거움은 어떤 행위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그는 즐거움이 보수나 명예와 같이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결과물과 같은 것으로 보지 않는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기백
정암학당 학당장 역임
정암학당 이사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