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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지와 봉고

시론

‘송아지’, ‘임신’, ‘하녀’, ‘봉고’ 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박하늘별님구름햇님보다사랑스런우리’도 이것 중 하나라고 하면 짐작이 가실지 모르겠습니다. 앞에 말씀 드린 것들은 누군가의 이름입니다. 정확하게는 개명신청을 한 이름들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이름을 지을 때 듣기에 좋은 이름보다는 뜻이 좋은 이름을 많이 지었기 때문에 발음이 어렵거나 이상한 의미가 연상되는 이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전에는 개명을 하려면 절차도 복잡하고 그나마도 신청이 기각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절차도 간소화되고 특별한 이유가 없더라도 본인이 원하면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제 주변에도 좀 더 나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 멋지고 예쁜 이름으로 개명한 분들이 몇 분 있습니다. 개명 전에는 이름을 말할 때 쑥스러워서 가명이나 예명을 쓰다가, 개명 후에는 사람들 앞에서 본인의 이름도 떳떳이 말하고 명함도 내밀고 하는 걸 보면 개명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꼭 필요한 선택이라고 생각됩니다.

요즘 개명을 할 때 가장 선호되는 이름은 남자는 민준, 여자는 서연이라고 합니다. 저도 여성스러운 이름 때문에 서면으로 대하는 관계에서 여자로 오해 받기도 하고 학창시절엔 친구들이 놀리기도 하고 해서 남자답고 멋있는 이름으로 바꾸고 싶던 적이 있습니다. 본인의 이름이 맘에 쏙 드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름을 바꾸는 것은 핸드폰 번호를 바꾸는 것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만만한 일이 아니라서 아쉬워도 참고 사는 부분도 있습니다.

최근 보존학회에서 통합치의학과의 명칭을 바꾸라고 요청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본인의 이름이 맘에 안 들어도 선뜻 바꾸기가 쉽지 않은데, 남의 이름을 바꾸라고 요구하는 것은 서로에게 참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 10년도 더 오래 전에 투표, 집담회 등 다양한 의견청취 과정을 거쳐서 정한 이름인데 다소 거창해 보이고 맘에 안 든다고 해서 바꾸라고 요구하는 것이 과연 받아들여질 수 있는 요청인지, 받아들여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문제제기를 한 것인지 조심스럽게 의구심이 듭니다. 그게 아니라면 제도 정착을 코앞에 둔 시점에 감정적 소요를 목적에 둔 단지 이슈화를 위한 문제제기라고 생각됩니다.

보존학회는 보존학회 회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 본연의 역할입니다. 통합치의학과라는 명칭이 보존 회원들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생각했다면 이러한 행동은 옳고 그름을 떠나 학회 본연의 본분을 다 한 것이라 생각하고 비난 받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보존학회가 어떻게든 이 일을 해결해 주기 만을 뒤에 숨어서 눈치 보고 있는 학회들 보다 훨씬 학회답고 협회장다운 행동이었다고 여겨집니다. 다만 보존학회에서도 이렇게까지 혼란한 상황을 예상하거나 원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믿습니다.

세상에는 시시비비를 가릴 수 없고 정의의 잣대로 판단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세상에 대부분의 일은 흑백이나 선과 악으로도 구분 짓기 어렵습니다. 정의와 정의가 부딪히게 되면 어느 한쪽도 물러설 수가 없기 때문에 그 혼란함은 악의와 악의가 부딪힐 때보다 더 심각할 수 있습니다. 오랜 기간 사용해온 이름을 버릴 수 없다는 통합치의학과의 입장과 회원 권익 보호를 위해 명칭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보존학회의 주장은 어찌 보면 나의 정의와 너의 정의의 대립입니다. 그러다 보니 서글프게도 헌법소원이라는 최종 단계의 싸움에까지 이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고민해볼 점은 통합치의학과라는 명칭이 보존학회 회원들에게 얼마만큼의 피해를 입힐까 하는 부분입니다. 이 명칭이 인정받은 후에 보존학회 회원들이 받을 타격은 미지수지만 우리가 서로 싸우는 동안 복지부에서 마음대로 통과시켜 버린 보험 저수가는 치과의사들의 피부에 와 닿는 경영적 어려움을 가져올 것입니다. 2년 연속 두자리수로 오르는 최저임금 역시 이미 치과계에 가시적인 타격을 주고 있음이 명확합니다. 치과계는 이제 별로 여유가 없습니다. 저는 대한치과의사협회가 회원간의 분쟁 해결에 힘 빼기 보다는 대외적인 난제들에 조금 더 강경하게 투쟁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협회와 회원들이 힘을 모아서 고쳐 나가야 할 난제들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만 해도 이렇게 잔뜩 쌓여 있는데 불필요한 자존심 싸움에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은 아닌 지, 잠깐 숨을 고르며 감정을 추스르고 좀 더 신중해질 시기입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강희 연세해담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