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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까지 웃게 하라

추모사 | 故 Dr. H. Nieusma, Jr.(유수만) 선교사(1930-2018)

주님께서 신앙으로 무장시킨 주님의 귀한 종 유수만 선교사를 이 땅에 보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유수만 선교사는 온유와 겸손을 겸비하신 성품으로 청빈하게 사셨습니다.
 
유수만 선교사님! 당신께서는 “제가 한국을 택하여 온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자신을 택하여 한국에 보내셨다”고 말씀했습니다.
 
당신은 참 좋으신 한 가정의 가장이었고 또 훌륭한 치과의료 선교사였으며 가르치는 달란트와 운동과 음악의 달란트까지 갖춘 훌륭한 주님의 종이었습니다. 당신께서 이 땅에 오신 1961년은 우리나라 개인소득이 67불 밖에 안 되는 전후의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당신은 인도아(드와이트 린튼, Dwight Linton) 선교사님의 소개로 1963년 우리 남광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교회는 의자도 없이 마루에 앉아 예배드리는 아주 작은 교회였습니다. 우리 교회의 협동장로로 회중기도와 당회에 참석했고 교회학교에서 설교도 하였습니다. 사모님이신 유애진(루스 슬롯세마, Ruth Slotsema ) 집사님은 오르간 반주를 도맡아 헌신 봉사했습니다. 그 당시에 사용하던 오르간도 당신께서 우리교회에 마련해 주셨지요.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지켜가며 살아온 당신이었지요.

한국 사람처럼 살기를 원하신 당신은 한 때 한국 사람이 사는 집을 전세내고 이삿날에 무지개떡을 장만하여 손수 이웃 집집마다 돌리며 인사하고 친교의 문을 여셨습니다. 금요일 저녁에는 구역가정을 돌며 구역예배도 인도하신 친절한 남광교회 교인이었습니다. 당신께서는 “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 확신하노라”라는 빌립보서 1장 6절의 말씀은 당신의 삶이요 믿음 자체였습니다.
 
광주기독병원 치과에서 농촌교회에 순회 진료를 갈 때는 손수 ‘이스즈’ 차를 운전하시고 비포장 도로를 따라 호남지방의 농촌교회에서 복음전하고 치과치료를 했습니다. 점심때는 후한 농촌 인심을 고봉으로 담은 밥상에서 왼손으로 모여드는 파리를 쫓고 오른손으로 밥그릇을 깨끗이 비우던 일이 어제 일 같습니다.
 
25년간 이 땅에서 당신은 60여명의 훌륭한 제자를 배출하셨습니다. 그 제자들은 전국 곳곳에서 개원을 하고 있으며, 치과대학에서 후진양성을 하는 교수, 대한민국 대통령 치과 주치의를 한 제자도 있었습니다.
 
당신은 치과대학 개설과 치위생과 개설에도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고 여러 치과대학에서 강의도 하셨지요. 지금 당신의 제자들이 치과의료 선교회를 조직하여 열방의 미전도 지역에 많은 치과의료 선교사를 파송하여 당신의 일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목사와 전도사로 사역하고 있는 당신의 제자들도 있으니 당신은 참 좋은 주님의 종 이었습니다.
 
당신께서는 총명한 천재였습니다. 복잡한 한국말 동사의 시제와 존댓말과 낮춤말, 명령형을 쉽게 익힐 수 있는 Dial - verb - wheel를 제작하여 외국인에게 한국말 가르치는 일에도 헌신 하였습니다. 또 1984년 임플란트 수술시 유용한 Sani-sleeve라는 치과 위생용품을 만들어 특허를 획득하여 널리 보급했습니다.
 
25년간 이 땅에서 주님께로부터 받은 달란트를 남김없이 이용하여 복음 전하신 훌륭한 주님의 종 이었습니다.
 
1986년 광주를 떠나실 때는 광주 명예시민증도 받았으니 당신은 진정한 광주 시민입니다.
 
귀국 후에도 미국에 있는 여러 치과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 당신이 받은 달란트를 아낌없이 나누어 주셨습니다.
 
2000년 B형 간염으로 인한 간경화로 5년이라는 시한부 진단을 받고 간 이식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당신의 제자들이 그 비용을 마련하여 보내드렸습니다. 이 때 간 이식수술을 받지 않고도 주님의 능력의 손이 함께하여 당신의 간경화가 치유 받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주치의가 “이대로 가면 당신은 15년을 더 살 수 있을 정도로 당신의 간이 회복되어 가고 있다”는 말씀을 듣고 내 나이 70이니 15를 더하면 85세가 되니 천수를 누리는 것이라며 이사야서 38장에 나오는 히스기야 왕의 이야기를 말씀 하였습니다.
 
북한 선교에도 관심이 많아 1995년 10월 평양에 이동식 치과용 차량을 공급하였고, 1999년 9월에는 개성까지 가서 ‘개성도립아동병원’에 발전기와 치과기계를 설치하고 그 사용법도 자상하게 일러 주었습니다. 2004년 CFK(Christian Friends of Korea)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하여 인도주의적인 도움을 주신 당신입니다. 당신께서 평생 사랑했던 유애진 집사님도 취미인 뜨개질로 장갑과 목도리, 모자를 짜서 북한에 있는 불쌍한 어린이들에게 보내곤 하였습니다.

두 분은 우리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시고 기도하신 분입니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광주를 방문하였을 때는 사랑하는 아들인 바울의 부축을 받으며 오셨습니다. 우리교회에서 설교도 하시고 당신이 25년간 사셨던 양림동 성지동산에 가서 당신이 사셨던 빈 집을 아들과 함께 다락방까지 살펴보며 옛날을 회상했지요.
 
양림 동산 선교사 묘역으로 올라가는 ‘고난의 길(Via Crucis)’에 당신의 이름 ‘Mr. Dick H. Nieusma jr.’가 새겨진 돌계단에 앉아 사진촬영 할 때의 모습에서 오늘의 일들을 생각하고 계셨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당신과 유애진 집사님의 육신이 선영들이 묻힌 성지동산에 유택이 마련되면 우리의 후손들에게 영원히 기억 될 것입니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광주를 방문하신 그 때에 당신이 신고 있던 구두 밑창이 닳아 안장이 보인다면서 충장로 입구에 있는 구두수선 가게에서 밑창만 새로 갈아 신고 광주를 떠나신 것이 마지막 이었습니다. 당신은 진정으로 온유와 겸손을 겸비하고 가시는 날까지 청빈하게 살아 당신이 주님으로부터 받으신 달란트를 아낌없이 한국에 남기고 떠나셨습니다.
 
이제는 생전에 그렇게도 뵙고 싶어 했던 부모님과 평생의 동반자였던 유애진 집사님과 주님이 계시는 천국에서 평안히 계십시오.
                                                                                                           2018.   7.   28      


강기봉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