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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쟁이 친구가 있다. 그냥 가끔씩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입만 열었다하면 절반 이상의 말이 다 거짓이다. 오랜 친구로 지내왔기에,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는 꽤나 충격이 컸다.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쉽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에도 가끔 그녀를 만난다. 커피숍에서 다리를 꼬고 앉은 그녀는 생기 넘치는 표정으로 재미있고 유쾌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쏟아낸다. 다 거짓말이다. 주변의 다른 친구들은 그녀와의 관계를 정리(?)하라고 난리다. 하지만 그녀가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에는 항상 즐겁게 들었던 이야기이다. 생각해보면 크게 달라진 것도 없다. 그녀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지 않으면서 그녀의 거짓말을 멈추게 할 방법은 없을까? 변명이지만 내 마음 속에서 우리 관계는 일단 보류 상태다. 너와 함께 있으면 나도 거짓말쟁이가 되는 기분이야…쉴 새 없이 움직이는 그녀의 입술을 보며 나는 속으로 되뇌곤 했다.

그 친구는 누가 봐도 착한 사람이다. 여기서 착하다는 것은 이타적인 행동을 많이 한다는 뜻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벌 청소를 해야 하는 친구를 위해 방과 후에 함께 남아주거나, 준비물을 가져 오지 않은 친구에게 자신의 준비물을 절반이나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그래서였을까, 그녀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이 많았다. 친구들끼리 모여 밥을 먹으러 갈 때도 그녀는 항상 친구들의 의견을 먼저 묻곤 했다. 그녀는 어떤 음식이든 절대 싫어하는 법이 없었다. 한 인기 가수의 팬이었던 다른 친구가 함께 갈 사람이 없어서 콘서트에 못 간다고 하소연하자, 자기가 사실 그 가수의 팬이라며 거금을 들여 함께 콘서트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녀의 방에는 온갖 가수들의 앨범과 브로마이드 등으로 넘쳐났다. 그 외에도 소설책이며 만화책이며… 당시 만해도 정말 관심사가 다양한 친구구나, 라고 생각하며 아는 것 많고 인기 많은 그녀를 조금은 부러워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사실 지금도,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모른다. 함께 즐겨 먹었던 샤브샤브도, 초밥도, 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었을 뿐 그녀가 좋아한 음식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녀와 함께 찾아다녔던 공연장, 야구장, 미술관… 그 모든 장소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어쩌면 지금까지 자신의 취향을 백지 상태로 비워두고 그때그때 타인의 색깔을 따름으로써 자신을 지켜왔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는 거짓말로 그 백지를 채우려고 함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해 어린 시절 타인의 색깔을 알게 되기 전까지 자신을 감추고 타인에게 맞추어 주던 그녀가 이제는 타인이 좋아할 법한 색깔을 온 몸에 두르고 어필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해 본다. 나와 초밥을 먹고 야구장을 다닌 것처럼, 그녀가 지어낸 수많은 재미있는 이야기도 실제로는 나의 취향이었던 것은 아닐까. 사실 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웃기는 이야기, 슬픈 이야기, 감동적인 이야기,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 사업 성공담 등등. 하긴 재미있는 이야기를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까, 담백하고 진솔한 이야기 보다는 기승전결이 과장된 이야기와 입체적인 캐릭터에 귀가 솔깃해지는 법이다. 건조한 삶을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그녀의 욕구가 매력적이고 허황된 거짓말로 귀결된 것은 아닐까.   

어떤 이유가 되었건, 그녀의 거짓말의 이면에는 타인에 대한 강박적인 시선이 존재한다. 아마 그녀 자신도 자신에 대해서 많이 알지는 못할 것 같다. 오직 타인과의 관계에 의해서만 자신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리라. 늦은 감이 있지만 그녀가 지금이라도 자기 자신을 꾸밈없이 인식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깨우쳤으면 좋겠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유란 모두애(愛)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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