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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칭)대한심신치의학회 창립을 반기며

Relay Essay 제2306번째

“이런 창살 없는 감옥에서 내 인생을 보내지 않게 되어 다행이다.” 이 말은 30년 전쯤 치료차 왔다가 나의 진료 모습을 보고 어느 지인이 한 말인데 그는 치과대학을 지원했다 낙방하고  2지망으로 생물학과 교수가 된 분이었다. 우리는 평생 그가 말하는 ‘창살 없는 감옥’에서 살아가야 한다. 일탈을 꿈꾸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이번 여름휴가는 주말을 이용해서는 갈 수 없었던 남한강 상류 고적답사 여행이었기에 정선을 베이스캠프로 영월, 태백, 단양, 제천 등지를 돌아 볼 생각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떠난 여행은 기대와는 달리 처음부터 엇나가기 시작했다.

드라이브를 즐기던 중 아내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출발 전 경비 장치를 걸어 놓으라고 당부하여서 애써 걸어 놓았는데 그만 두 번 눌리는 바람에 걸렸다 풀렸다는 경비업체의 전화였다. 아내의 볼멘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한동안 입품을 팔아야 했다. 그것도 잠시, 휴게소에서 카드를 분실하는 사고를 또 친 것이다. 휴가 내내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데 호텔 룸 키를 가지고 내려오지 않아 새벽 다섯 시에 자는 아내를 전화로 불러내려야 했고, 주유소를 지나쳐 다음 주유소까지 마음 조이며 갔던 일 등… 나이 탓이려니 자위해 보지만, 자괴감마저 들었다. 이것은 일상을 벗어버리고 힐링하기 위해 떠난 여행이 아니라 아내 걱정거리 하나 더 늘리고 나 자신도 자신감을 잃어가는 여행이 되고 말았다. 거기에는 무더운 날씨와 나이를 무시하고 잡은 무리한 일정도 한 몫 했다.

살인적인 더위로 일정을 조금 당겨 호텔로 돌아와서 머리도 식힐 겸 카지노에 들러 보기로 했다. 외국여행 중 한두 번 들러 본 카지노와는 너무나 다른 분위기에 놀라고 말았다. 호텔 들어오는 입구에 커다랗게 쓰여 있던 “마음까지 힐링하고 가세요”라는 슬로건이 맞는 것인지 의아해진다.

저녁 시간임에도 그 많은 슬럿 머신에 빈자리가 없었고, 담요를 뒤집어쓰고, 풀린 눈은 기계에 고정된 채 손가락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은 마치 좀비와도 같았다. 흡연실에서 빨아대고 있는 볼우물 깊이는 여느 흡연자들의 여유 있는 모습과도 사뭇 달랐다.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위해 폐장시간에 맞춰 동트기 전에 나가 보니, 삼삼오오 무리지어 빠져 나오는 그들은 예전에 이곳에 있었던 어두운 갱도 속으로 새벽마다 끌려들어가던 광부들처럼, 짧은 새벽을 보내려 뿔뿔이 어둠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는 내가 휴가를 망친 것이나 정부 입안자나, 국민 모두가 힐링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결과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제대로 휴식을 즐기는 법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한 것이다. 노는 것도 놀아본 놈이 잘 노는 것처럼, 힐링도 제대로 교육 받고, 알면서 힐링한다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요즘 치과계는 환자, 직원, 세금, 경영문제 등, 우리를 어둠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곳에 갇혀버린 심신을 빛으로 인도해 줄 방도를 찾아야 할 것이다.

마침 경희대학교 홍정표 교수를 준비 위원장으로 하는 (가칭)대한심신치의학회가 9월 창립을 준비 중이라 한다. 학회는 심신장애를 가지고 있는 환자를 치료함은 물론 치과의사를 비롯한 치과 종사자들 스스로가 건강한 상태에서 치과를 방문한 환자들을 도와줄 수 있도록 하기위한 목적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의 머릿속을 맑게 해 줄 학회의 발전을 기대해 보며 거기에는 우리의 지속적인 관심과 성원이 필요할 것이다.


 
기태석 전 대전지부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