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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이 없는 나라

스펙트럼

세계 최대의 축제 중 하나인 월드컵이 지난달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수많은 스타들이 출전하여 최고의 경기들이 진행되었고, 대한민국도 16강 진출에는 실패하였지만 마지막 독일전을 승리함으로써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월드컵에서 보여진 수준높은 경기들은 단연 최고의 볼거리였지만, 경기 외적인 것들 중에도 이목을 끄는 부분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경기 시작 전 소개되는 각 국가 선수들의 이름이었다.

아이슬란드는 인구가 34만명에 불과한 작은 나라이지만 지난 유로 2016부터 이번 월드컵까지 훌륭한 경기를 보여주면서 많은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경기 시작 전부터 흥미를 끄는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출전 선수 명단이었다. 감독인 할그림손을 비롯해서 핀보가손, 구드문드손, 군나르손, 시구르드손 등등 모든 선수의 이름이 손으로 끝난다. 영어로 ‘son’ 이라는 단어가 아들이라는 뜻이니까 의미는 대충 유추할 수 있는데, 왜 그렇게 아들이라는 점을 모든 이름마다 나타내야 하는지 의문을 갖게 만든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이름 짓는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성과 개인의 이름이 결합하여 전체 이름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아이슬란드에는 성씨가 없고 대신 아버지의 이름에 남자면 ‘son’, 여자는 ‘dottir’ 를 붙여 부칭을 만든다. 그래서 성을 대신한 부칭과 개인의 이름이 결합하여 전체 이름을 만들게 된다. 간단히 예를 들기 위해 ‘A Bson’ 이라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사람이 아들의 이름을 C, 딸의 이름을 D 라고 짓기로 결정했다면, 아버지의 이름인 A를 부칭으로 물려받아 아들의 이름은 ‘C Ason’, 딸의 이름은 ‘D Adottir’가 되는 것이다. 물론 부모 중 꼭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야하는 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의 이름을 따르고 싶은 경우 어머니의 이름에 같은 원리로 ‘son’과 ‘dottir’ 를 붙여서 이름을 만들 수 있다.

원래 이러한 작명 방식은 고대 노르만족이 이름을 짓는 방법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말로 번역해 표현하자면 ‘A의 아들 B’, ‘A의 딸 D’ 와 같이 부르는 것인데, 이것이 이름을 짓는 관습으로 굳어진 것이다. 이 관습은 아이슬란드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덴마크의 월드컵 출전 명단을 보면 에릭센, 풀센, 요르겐센 등 이름이 대부분 센으로 끝난다. 또한 이번 대회 준우승에 빛나는 크로아티아의 선수들은 모드리치, 만주키치, 페리시치 등 대부분 이름이 치로 끝난다. 여기서 ‘센’ 과 ‘치’ 도 모두 자식을 뜻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각자 글자는 다르지만 성을 사용하지 않고 부모의 이름을 통해 자식의 이름을 만드는 방식이 여러 국가에서 공유되고 있다. 다만 다른 나라의 경우는 이 규칙의 예외가 어느정도 허용되는 반면, 아이슬란드는 이름을 지을 때 작명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해서 규칙이 좀 더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다.

신분과 혈통을 중시하던 역사가 있는 나라에서 성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다. 예로부터 유교문화에 길들여져 왔던 우리나라에서도 좋은 성씨를 얻기 위해 족보를 거래하고 고치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런 우리에게 성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문화는 낯설지만 신선한 느낌을 준다. 먼 조상의 성을 물려받기보다 가까운 가족의 이름을 물려받는 관습은 좀 더 가족을 중시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작명의 이유를 모를때는 우리와 다른 어느 외국의 특이한 이름처럼 생각되었지만, 이유를 알고 나니 한 마을에서 누구네 집 자식 아무개라고 편하게 부르는 듯한 모습이 연상되어 정겹게 느껴지기까지 하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