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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너에게

스펙트럼

10년 뒤에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 때도 치과의사를 하고 있을까?

2004년, 봉직의로 있다가 개원을 하게 되면서 “10년 일기장”이라는 것을 샀습니다. 제일 앞 장에는 앞으로 10년의 계획을 세워보는 페이지가 있었습니다. 희망에 부풀어 대출은 언제 갚고, 집은 언제 옮기고, 출산은 언제 하고…등등을 적어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그 계획들은 2~3년도 그대로 실현하기 어려웠습니다. 뜻밖의 일들이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생겨나고, 제가 예상하지 못한 일들로 인해 인생은 제 계획과는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수련의를 마칠 때까지만 해도 인생은 정해진 길을 따라왔을 뿐이었기에 제가 세운 계획대로 인생이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은 당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 붙어있는 유치원 광고들을 보면서 가까이에 어떤 유치원이 있는가 살폈지만, 정작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무렵에 저는 그 곳에서 두 번이나 이사를 한 뒤였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아이의 유치원을 선택하였습니다.

곧 50이라는 나이가 되고, 점점 노후의 삶이 걱정이 되지만, 이제는 1년 뒤의 계획도 세우기도 어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10년 뒤에도 치과의사를 하고 있을지, 혹은 또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지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이의 일도 그렇습니다. 요즘은 중학생이 되어 진로를 선택하고 그에 맞춰 일관된 준비를 해야만 대학입학에 유리하다고 하지만, 내 인생조차 1년 뒤에 어떻게 될지 모르면서 아이가 5년 뒤, 6년 뒤 대학에 가서 무엇을 공부할지 결정한다는 것도 너무나 어렵게 느껴집니다.
 
10년 뒤, 혹은 1년 뒤의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고 해서,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해서 오늘을 대충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오프날이었던 어제는 Coco Capitan 이라는 사진작가의 전시회를 보고 왔습니다. 그녀는 빈집이 된 폐가, 글씨가 사라진 표지판을 찍으며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허망함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헌 것이 없어지지 않고는 새로움이 생기지는 않는다고 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너에게 충실하라고 합니다. 과거 싱크로나이즈드 선수였던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수영선수들의 땀과 노력을 사진에 담아내어 매일 매일을 열심히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가를 얘기합니다. 힘들었던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앞으로의 미래를 두려워하는데 시간을 쏟지 말고, 오늘에 지치지 말라고 합니다.

서른 전까지는 앞으로 좋아질 일만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앞으로의 10년이 두렵습니다. 내가 치과의사를 마치는 날까지 잘 해낼 수 있을까. 10년 뒤에는 무엇을 하게 될까? 때때로 앞으로 10년 후 내가 어떻게 살게 될 지를 걱정하며,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내 생활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불안에 떨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환자 한 명 한 명을 최선을 다해 보고 있는 나는 내일도 괜찮을 겁니다.
오늘을 열심히 살고 있는 나를 응원합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윤정 장미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