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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독>조선 최초의 치과전문의 ‘가씨’를 아십니까

대장금 스승 ‘장덕’에게 기술 전수한 스승
바늘로 입속벌레 ‘치충’ 잡아 전국에 명성


“내가 젊었을 때 제주의 여인 가씨(加氏)를 보았다. 그녀는 양반의 집에 드나들면서 치충(齒    )을 잘 잡아냈다. 그녀는 훗날 제주의 계집종 장덕에게 기술을 전수했다.”

조선 초기에 이 육(李陸)이 지은 야담, 잡록집 청파극담에는 조선 최초의 치과 전문의 가씨(加氏)의 이야기가 나온다. 가씨는 대장금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제주 출신의 의녀 장덕의 스승으로, 장덕에게 치과 의술을 전수해 준 은사로 기록돼 있다.

가씨의 특기는 충치치료. 그런데 치의학에서 말하는 충치, 즉 치아우식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말 그대로 구강에 기생하는 벌레를 잡아내는 기술이 바로 이 가씨의 특기였다. 허 준의 동의보감에 따르면 ‘출아충살충법’을 설명하고 있다. 묵재일기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호리병박 잎과 귀리를 식초에 적신 뒤 그 잎으로 싸서 약불에 넣어 구운 다음 꺼내 치아를 덮어 따뜻하게 하니 다만 벌레 한 마리가 숨어 있는 것을 잡았다. 벌레가 숨은 형태는 구더기와 같았다.”

가씨는 이런 의술을 토대로 서울로 ‘스카웃’된다. 혜민서에 소속된 의료인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사람의 치통을 치료했다. 그러면서 충치 벌레 잡는 기술을 같은 제주 출신인 장덕에게 전수했다. 장덕은 드라마 대장금에서 김여진이 연기한 조선 최고의 의녀다. 이영애가 연기한 대장금의 스승으로, 그녀를 숱하게 시험하면서 악역으로 비치기도 하지만 그녀를 후계자로 키우기 위한 노련한 조련사이기도 했다. 장덕 역시 치통치료를 전문으로 하면서 코와 눈병까지 치료했다. 스승과 마찬가지로 뛰어난 의술을 바탕으로 혜민서에 채용된다.

# 가씨는 왕진 치과의사

김일우 제주문화예술재단 전 연구사에 따르면 치충은 조선시대 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만연하는 질병이었다. 청파극담에 따르면 가씨는 양반집을 드나들면서 치충을 잡았다. 말하자면 왕진하는 치과의사였던 셈인데, 이 명성이 조정까지 전해져 왕을 전담하는 치과 주치의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후대에 전해지는 명성은 가씨의 제자였던 장덕 쪽이 더 돋보인다. 특히 성종실록을 보면 그런 대목이 많이 나온다. 성종은 제주 목사 허희에게 치서하면서 “잇병을 고치는 의녀 장덕이 이미 죽고 이제 그 일을 아는 자가 없으니, 이·눈·귀 등 여러가지 아픈 곳에서 벌레를 잘 제거하는 사람이면 남녀를 물론하고 초록하여 보내라”고 하교하기도 했다. 장덕의 존재가 그만큼 컸다는 방증이다.

중종 역시 “나의 잇병은 벌레가 생겨서 그런 것이 아닌가. 지금 약으로 고치려고 한다”고 자신의 병증을 전하기도 했다. 내의원에서는 치약과 같은 효능을 지닌 여신산을 바쳐 중종을 치료했다고 전해진다.

김일우 박사는 “세종 이후 제주 여의사는 의술이 뛰어나다고 중앙정부로부터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는 치아의 벌레 제거술에 유난히 실력이 좋았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음도 드러난다. 결국 가씨는 제주 여의사의 계보를 생성케 함과 아울러 그 정점에 섰던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그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충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이 치아에 서식하면서 치아를 갉아먹는 증상이지만, 가씨나 장덕이 치료했던 치충은 구더기 형태의 벌레로, 바늘로 이를 잡아내는 방식이었다. 아마도 외부의 벌레가 입으로 들어가 입 속에서 기생하면서 통증을 유발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치통 치료와는 관계 없지만, 세종대왕은 1차 의료전달체계에 관심이 많았던 왕으로 알려져 있다. 말하자면 ‘동네의원’을 설립해 민초들이 병을 고칠 수 있게 했는데, 이 과정에서 가씨나 장덕 같은 여성 의녀들이 활약했다. 그러나 이 의녀들은 연산군 때 들어 기생으로 전락하는 등 기구한 운명을 맞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