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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산에 개를 묶을까요 닭을 묶을까요?

시론

추석 명절 잘 보내셨나요? 여자 치과의사분들 만큼이나 저 같은 남자 치과의사들도 명절이 다가오면 이유 없이 불안하고 소화도 잘 안되고 편두통이 생기는 스트레스 증상이 생기는 분들이 주위에 많습니다.

명절에 남자는 편하게 누워서 송편이나 먹고 깎아주는 과일이나 먹는 다는 게 대체 어느 나라 얘기인지 모르겠습니다. 요즈음 세대의 남편들은 부모님과 아내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눈칫밥 먹느라 체하기 일쑤인데요. 괜히 눈치가 보여서 도와줄 거 없나 부엌을 기웃거리다가 앉아있는 게 도와주는 거라며 한소리 듣기도 하고요, 가만히 앉아 있으면 혼자 속 편하다고 잔소리 듣기 십상입니다. 시댁에 오래 있자니 아내 눈치가 보이고 차례만 지내고 얼른 일어나자니 부모님 눈치가 보이고, 이래저래 이번 명절에 흰머리 늘어난 남자 치의분들 많으시죠? 다들 속으로는 차라리 명절이 없었으면 하셨을 겁니다.

예전에 한 마을에 제례를 지내는데 어느 집의 개가 시끄럽게 짖어 댔다고 합니다. 마을의 성인은 그 시끄러운 개를 제례를 지내는 동안 뒷산에 묶어놓도록 했습니다. 그 뒤로 그 마을에서는 제례를 지낼 때마다 그 시끄러운 개를 뒷산에 묶어놓곤 하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성인도 죽고 그 개도 죽었습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제례를 지낼 때마다 뒷산에 개를 묶어놓았습니다. 이유는 아무도 몰랐지만 지금껏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계속 그렇게 했습니다. 더 많은 세월이 흐르자 뒷산에 개 대신 닭을 묶는 게 옳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뒤로 제례를 지낼 때마다 개를 묶는 것이 옳은지 닭을 묶는 것이 옳은지 편을 갈라 싸우게 되었습니다. 우스운 얘기이지만 명절을 보내는 지금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처럼 추석은 농경시대에 곡식과 먹을 것이 가장 풍족한 시기였습니다. 한가위, 중추절, 가배 라는 추석의 다른 이름들은 ‘가운데’, ‘ 풍족한 때’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추석의 의미는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기에 이 날 만큼은 가족 친지들이 모두 모여서 신나게 먹고 즐기며 조상에게 감사하고 가족의 우애를 다지자는 뜻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먹을 것이 부족한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추석에 한상 가득 차려서 먹는 것이 누구에게도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합니다. 대신 누군가에게는 부담이 되고 화병의 원인이 되며 가정불화의 이유가 됩니다.  이런 명절이면 가정불화와 가족간의 싸움으로 경찰관들이 쉴 틈이 없다고 하니 참 안타깝습니다. 이번 명절에도 폭력으로 인한 신고 접수가 평소보다 1.5배나 늘고 가정폭력 피난처인 쉼터가 빈자리가 없었다고 하니 무섭기까지 합니다. 추석과 관련된 기사에는 여지없이 남녀가 편을 갈라 서로에 대한 혐오의 날을 세웁니다. 이쯤 되면 명절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떻게 명절을 보내는 것이 현명한지 그 본질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행인지 저희 집은 몇 년 전부터 명절 차례를 없앴습니다. 고지식한 아버지의 그런 결정에 많이 놀랬지만 덕분에 이번 명절에 여름 휴가를 대신하는 가족 여행을 다녀왔고 행복해하는 아이들과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부모님께 마음속으로 백 번, 천 번 감사를 드렸습니다. 어떻게 명절을 보내는 것이 옳은지는 정답을 내리기 힘들지만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고정관념을 벗어나서 가족의 화목을 증진 시킬 수 있는 쪽이 그래도 더 맞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명절 고부갈등에 못지 않은 것이 신구치과의사 선후배들간의 갈등입니다. 저희는 서울에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지역 모임이 유지되고 있는 동네입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곧 명맥이 끊기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제 밑으로 몇몇 원장님들이 더 개원을 했지만 지역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연세 있는 원장님들은 애정이 없고 개인주의적인 젊은 치과의사들을 뭐라 하십니다. 반대로 젊은 치과의사들은 잔소리만 하고 개원에 구속만 되는 지역 선배님들을 불편해 합니다. 저 역시 개원할 때 인사를 다니긴 했지만 반갑다 잘 왔다는 격려인사보다는 ‘힘든 동네에 뭐 하러 왔냐, 덤핑이나 광고로 동네 분위기 흐리지 말고 얌전히 있어라’라는 잔소리를 더 많이 들었습니다. 공중보건의 때에 막내라고 무조건 귀여워해주시던 선배님들 같은 모습을 기대하고 있던 터라 후배를 경계하는 선배 원장님들의 모습에 적잖은 당황과 실망을 했습니다. 물론 그런 분들이 있던 반면 정겹게 챙겨주시는 원장님들 덕분에 지금은 나름 지역 모임에 열심히 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협회, 구회, 반회의 존재에 대해 적극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회비가 아깝다며 협회에 가입조차 안 한 친구들은 협회가 우리에게 뭘 해줬냐며 묻지만, 저는 그런 친구들에게 협회가 뭘 해주는 게 아니라 그나마 협회가 있어서 이만큼이라도 버티는 거라고 감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협회가 튼실하려면 그 기반이 되는 각 지역 모임이 활성화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젊은 치의들이 계속 수혈이 되어야 하는데, 안 그래도 개인주의적인 요즈음의 젊은이들에게 모임의 운영을 몰아버리는 풍토가 가입을 부담스럽게 하고 지역 모임을 점점 사라지게 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쯤 되면 지역 치과의사들의 화합이라는 지역 모임의 존재 본질에 대해 어떤 형태가 적합한지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분기별로 모이는 회식이나 야유회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젊은 치과의사들을 모임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다같이 고민을 해봐야 합니다.

저는 지난 주에 직원들에게 회식을 제안하고 날짜를 잡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음료수를 가지러 휴게실에 들어갔다가 민망한 장면을 보고 말았습니다. 각자 사정이 있어 날짜를 잡기 힘들고 술 먹기 싫다는 사람도 몇 있어 실장님이 직원들을 모아놓고 개인주의를 버리라고 다그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친해지고 즐겁자고 한 저의 회식제안이 치과에 분란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 것을 알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운함도 있지만 급박하게 날짜를 잡아달라고 한 제 탓도 있고 해서 담 달에 느긋하게 영화나 보자고 하였습니다. 누군가에게 잘 해준다는 건 참 여러모로 어렵습니다. 눈치 없는 시어머니가 된 것 같아 뒤숭숭한 하루입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강희 연세해담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