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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생 김태흥

Relay Essay 제2315번째

만년만에 서점을 들렀다. 맨날 핸드폰, 아이패드만 쳐다보며 살아서 어디 쓰겠나. 아무리 21세기를 살고 있는 문명인이라고 하지만. 시간나는 주말에 어느 카페에 앉아 바닐라라떼 된장스러운 맛을 느끼며 책 한권 올려놓고 폼 잡는 것도 나쁘지 않지 하는 생각에 들러보았다. 썩 눈에 들어오는 폼스러운 책 표지 하나 없어 실망하던 가운데 ‘82년생 김지영’ 제목 한번 느낌있군. 나보다 4살이나 많은 저 누나는 무슨 생각이 많으셔서 저렇게 나이랑 이름 알리고 책을 쓰셨을까 궁금하여 잠깐 들어보았다가 이내 잡지코너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서 제목만 기억난다.
 
86년생 김태흥. 요즘 나도 저 누나만큼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이에 걸맞는 고민이 하나 생겼다. 그건 바로 ‘새.치.’ 하루 하루 나이 먹는 것도 서러운데 뽑아도 뽑아도 자꾸 비집고 올라오는 이 얄미운 놈들 덕분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괴뢰군 같은 것들. 거울 볼 때마다 한숨도 늘어간다. 이게 바로 33살의 모낭인가. 미용실 누나, 33살들도 새치 염색 많이 하나요? 치욕스럽지만 머리 자르러 가서 차분하게 한번 물어나 볼까. 염색은 무슨, 근본적인 치료가 불가능한데 드레싱만 반복해서 무얼하나 따위의 생각이 꼬리를 문다.

문득, 이렇게 우울해서야 되겠나. 나를 위한 인류애를 발동해본다. 그래, 생각을 고쳐먹고 거울을 보며 애써 웃어보자. 아직 장가도 안간(곧 감) 청춘이 흰 잡초 따위에 기죽어 쓰겠는가. 나에게는 아직 99%가 넘는 검은머리 군단이 내 두피를 채워주고 있지 않은가. 또한 새치 같은 끈기와 기상으로 굴하지 않고 버텨낼 줄 아는 것도 힘든 수련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는 개뿔. 감정기복이 요동을 치다가 점점 잠잠해진다.

그래 그냥 이렇게 30대가 흘러가나보다. 나한테는 이런 생각마저 바닐라라떼 똥폼 같은 사치였지. 당장 컨퍼 준비에 발표 ppt나 한 장 더 만들 생각은 안하고 무슨. 늘어나는 새치는 옆머리를 채우다가 어느새 정수리로 진격할 것이며 내 나이도 점점 30대 중반으로 치달을 것이다. 어차피 잘나지도 않은 얼굴 스트레스 받아 뭣하리오. 그 진격 속도에 엑셀을 더 밟고 싶지 않으면 맘이라도 곱게 먹고 살아가는 대로 살아야지.
    
새치. 그래 뭐 별거 있나. 33살 생각해보면 새치 말고도 고민할게 얼마나 많은데. “그게 의미가 있나”
수련하면서 가장 많이 듣고 많이 생각해보았던 질문이다. 늘어가는 새치만큼이나 내 생에 도움이 될 의미들이나 더해졌음 하는 바람이다. 아 참, 네이버 검색 두드려보니 82년생 김지영은 실제 존재하는 누님이 아닌 소설 주인공 이름이었다. 내 이름, 나이 알리고 쓰는 의미 없는 글이 창피해졌다. 이만 줄이겠다.

김태흥
부산대치과병원 구강악안면외과 전공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