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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속의 주인공이 소리를 지를 때처럼 비명을 지르며 사지를 여러 사람이 붙잡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치료를 진행하느라 온 병원을 떠들썩하게 흔들어놓았던 아이가 진료를 마치고 언제 그렇게 울었냐는 듯이 멀쩡히 “아여히 계셔요” 명확하지 않은 말솜씨로 인사를 한다. 또 한 번의 빙긋 미소가 지어지는 상황이다. 어머니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문득 창밖을 보니 벌써 어둡다 못해 검은 물감이 흘러내리는 듯 점점 새까맣게 건물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하나 둘씩 반딧불처럼 창문에서 나오는 불빛들이 모여서 밤의 정경을 이루고 있다. “흐흐, 어느덧 퇴근 시간이네?”

오늘도 부모님의 품을 벗어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아이들을 붙들고 새까맣게 변해버린 이를 이리 갈고 저리 붙이고, 다듬고, 씌워주고 하며 이 아이 저 아이에게로 뛰어다니다보니 벌써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나보다. 집에 가서도 아이들의 우는 모습, 해맑게 웃는 모습, 여러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준, 병원에서 상대한 아이들을 떠올리면서 그런 순수한 아이들과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는 나만큼 즐거운 나날을 보내는 치과의사도 드물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수련을 받기 시작했던 새파랗게 젊은 치과의사 시절, 나에게 배정된 첫 아이환자를 바라보며 울며 진저리를 치고 있는 모습의 저 아이를 과연 내가 사고치지 않고 무사히 치료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하고 있는 동안에 어느새 사람들이 손에 붙들려서 나의 진료의자에 억지로 눕혀지는 아이의 눈과 딱 마주쳤을 때, “그래 해보는거야!” 하며 핸드피스를 돌리기 시작한 때가 떠오른다. 정말 그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5년이 넘게 아이들과만 지내고 있다. 몇 년 아이만을 치료하며 지내면 똑 같은 상황이 지겨워지지 않을까 미리 우려도 했던 것 같은데 왜 지금도 내 앞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면 미소가 지어지고 그 아이가 귀엽고 정답게 느껴지는지 딱히 나도 모르겠고, 동료 치과의사들도 이해하기 힘들다며 신기해들 한다.

때때로 “아저씨 안 아프게 해주세요”라고 울먹이며 부탁하는 아이의 말에 “아저씨가 뭐니 선생님이라고 해야지”라고 옆의 어머님께서 당황하시며 정정해 주시지만 이미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치과의사 선생님이란 호칭보다는 ‘아저씨’라고 불리울 때 더 신이 나면서 그런 아이들에게 더 친근감을 느끼며 순수한 눈망울이 예쁘기만 하다.

호기심의 아이들은 진료실 안의 이런저런 기구들을 들어보며 물어보기도 하고 에어 시린지를 잘못 눌러서 물벼락을 맞기도 하며, 갑자기 나는 시끄러운 석션 소리에 깜짝 놀라며 울음보를 터뜨리기도 한다. 또 어떤 녀석들은 형제, 자매, 남매가 함께 와서 서로 치료를 잘 받을 수 있다고 경쟁을 하기도 하고 다른 아이가 치료받는 중에 가슴위로 올라타서 치료 과정을 지켜보려는 탐구심을 표출하기도 한다. 이 모든 일들이 아이들의 진료공간이기에 있을 수 있는 풍경이 아닐까.

하루하루가 지나가며 어떤 때는 힘에 부치는 경우를 느끼며 “체력이 떨어지면 저 아이들을 어떻게 치료해주지?”하고 걱정도 해보지만 기운으로 아이들을 다루는 것이 아닌, 너를 위해서 이렇게 한다는 마음이 전달되는 소통을 하면 백발의 할아버지가 되더라도 가능하지 않을까? 처음 치과를 오는 아이들에게 우리 치과의료진이 결코 ‘백의의 천사’가 아니라 날카로운 흉기를 양 손에 든 공포영화의 ‘살인마’로 보여진다는 것을 결코 잊지 않으려 한다!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여러 아이들을 떠올리면서 퇴근하려고 짐을 추스르고 병원 문을 나설 때 부스럭하고 발에 걸리는 아이가 깜박하고 놓고 간 장난감을 집어들면서 지금쯤 저 장난감이 없다고 부모님께 떼쓰는 아이의 모습이 상상된다. 그리고 그 장난감보다 아이들이 더 좋아하고 반가워하는 항상 아이들에게 치과가 ‘추억의 장소’가 될 수 있도록 ‘준비된 선물로서의 소아치과 선생님’으로 오래오래 있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전승준 분당예치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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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