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치과의사가 겪는 고통을 돌아보며

Relay Essay 제2325번째

작년 치과의료정책포럼 주제는 치과의사의 건강과 삶이었죠. 10월 말에 열린 회의에서 치과의사 건강 실태와 사망원인에 관한 주제발표가 있었습니다. 귀한 연구이고 자료였는데, 제가 주의 깊게 본 것은 우울감, 자살 사고, 질환 통계였습니다. 치과의사협회 소속 전국 회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 응답자 1600명 중 62%가 최근 2주간 우울감을 경험했으며 17%가 지난 1년간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48%가 근골격계 질환을 호소했으며, 고지혈증과 알레르기성 질환, 고혈압이 뒤를 이었습니다.

이 항목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모두가 제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소아치과 수련 과정에서 얻은 어깨 통증은 진료실에 있으면서 점차 심해져 갔습니다. 잠시 의과대학에 근무하고 유학을 다녀오면서 핸드피스를 놓았더니 더 악화되지는 않아서 다행이긴 한데요. 저는 의료인문학과 의료윤리라는 다소 생소한 전공에 뛰어들어서 좌충우돌하고 있습니다. 아직 아무런 기반도, 틀도 없는 상황에서 글을 쓰고 연구하며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가족에게 계속 폐를 끼치는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보니 우울감을 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여, 이렇게 집단화된 형태로라도 치과의사가 겪는 어려움이, 특히 신체적 고통이 정리되어 문서로 기록되고 있다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고통, 사전 정의를 따르면 몸이나 마음의 괴로움과 아픔을 의미하는 이 단어가 가리키는 것이 참 많지요. 바늘에 찔린 것도 고통이요, 아이가 병에 걸렸을 때 밤을 지새우는 부모 마음도 고통이요, 사회에서 겪는 고초 또한 고통입니다. 적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은 데다, 적절한 언어를 찾기가 어렵기에 고통은 전할 수 없다고 사람들은 이야기해 왔습니다. 내 고통을 남이 알 수 없으며 남이 겪는 고통을 내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치과의사라는 직업은 다른 많은 직업보다 고통을 오랫동안 직면해온 직업이기에, 고통에 관해 한마디쯤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치과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고통이기 때문에도 그렇지만, 치의학이 발전하는 과정이 인류가 고통을 사유하는 노정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의학이 죽음과 싸워 왔다면, 치의학은 고통과 싸워 왔으니까요. 서양의 고통은 신과 악마에게서 온 것에서 체액의 불균형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을 거쳐 신경을 통해 전달된다는 생각으로 점차 바뀌어 왔습니다. 최근에는 뇌의 다른 지각에 따라 통증 경험이 변화한다는 뇌과학 연구까지 이어지고 있지요. 치의학 또한 통증을 상대하는 방식에서 제의, 체액 조절, 화학 요법을 거쳐 현재 근관치료 형태로 발전되기까지 지난한 길을 거쳤습니다. 이제 통증 조절을 위해 단순 진통제를 넘어 항우울제 등 약물을 활용하거나 행동 요법을 적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치의학이 계속 상대해온 숙적, 고통은 어떻게 될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계속 고통을 상대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가 겪는 고통은 잊어버리거나 무시해왔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치과의사가 현장에서, 사회에서 겪는 고통은 이제 표현되어야 하고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엄기호 선생은 최신작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고통과 함께함에 대한 성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고통을 겪는 이를 지원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그 곁을 지키고 있는 사람을 지원하는 것이다. 고통의 곁에 선 이가 감당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곁에 선 이가 ‘독박’을 쓰지 않도록 해야 하며 그의 삶이 파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새해에는 고통 옆에 선 치과의사가 ‘독박’을 쓰지 않도록 더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게 하나 있지요. 함께함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에게 부여된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이제는 일상인 체어 옆 스툴이 단순히 나의 앉을 자리임을 넘어, 내 앞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을 돕는 자리며 그들의 회복을 기다려주는 자리임을, 때로 다 해결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 함께 견디는 자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함께 견딜 수 있을 것입니다. 질병이 가져오는 고통 앞에서, 환자와 의사라는 딱지를 넘어 서로 인간으로 함께.

아무쪼록 2019년 새해 건승하시길 기원하며, 선생님들이 지키고 계신 자리를 진심을 담아 응원합니다.

김준혁 치과의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