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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스키어의 최상급코스 도전기

Relay Essay 제2331번째

이번 명절은 모처럼 아무 계획도 없는 설 연휴였다. 저번 주에 친정에 다녀왔겠다, 시댁에서 미리 신정을 지낸 이유로, 또 남편이 회사 일을 마무리해야 되는 이유로 그야말로 오롯이 설 연휴 통째로 나만의 자유시간을 누리고 있던 중이었다.

‘음~그 동안 치과일로 시간도 없이 너무 피곤했으니 편안하게 게으름이나 피워야겠다. 홍홍홍’

이 때 마침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나 지금 스키장인데 스키대회 개최하신 대표님이랑 여기 지인들 만나서 며칠 같이 스키 탈 건데 너도 빨리 오면 최고의 강사한테 개인레슨 받을 수 있어~”

설산이 좋아 매년 한 번 정도 관광차 보드나 스키를 타곤 했지만 40대를 넘어서면서 부상의 두려움과 추위에 움츠려져 스키장은 어느덧 나에게 잊혀진 장소였다. ‘그래 뭐 못하던 겨울운동이나 하지 뭐’라며 평창을 향해 무작정 갔다. 집에는 1박2일 가출(?)통보를 하고서.



도착하니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시는 남녀 스키 마니아 분들이 열렬히 환영해 주셨다. 모두 지긋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 열정과 체력에 또 한번 놀랬다. 정말 운동에서 주민등록 나이는 문제가 안 되는구나 라고 생각하는 중 문제는 다른데 있었다. 친구가 내가 스키를 탄 햇수만 이야기 해서 다 같이 곤돌라를 타고 정상에 갔는데, 가보니 코스가 챔피언과 디지 최상급코스가 아닌가!

수준에 맞는 슬로프 선택이 스키어 안전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고 레벨을 굳이 향상시키고 싶은 맘도 없었지만 모두 지켜보는데 왠지 그냥 내려 온다는 게 자존심이 조금 상했고 옆에 강사가 개인레슨 해준다니 도전을 한 번 해 볼만 하다고, 아니 해야 된다고 스스로 당위성을 찾았다. ‘그래 팔만 다치지 말자. 안되면 걸어내려 가지 뭐”

스키를 타본 사람이면 맨 처음 최상급 코스와 만났을 때의 순간적 기분을 알 것이다. 인생에서 큰 난관을 만난 느낌, 무모한 도전, 용기를 위한 비효율적 소비, 심장이 쿵쾅거리는 아드레날린의 폭발 등등 다양할 것이다. 원래 고소공포증이 조금 있는 나로선 이십여 년 동안 관광스키를 타면서 아예 생각하고 싶지 않은 코스였지만 옆에 든든한 강사가 밀착 동행하는 것만으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비록 숏턴과 피봇팅은 잘되지는 않았지만 롱턴과 업다운 동작으로 별탈 없이 내려올 수 있었다. 더욱이 두어 번 그 난관을 이겨내니 안도감과 함께 하나의 큰 산을 넘었다는 벅찬 마음이 차 올랐다. 이 얼마 만에 느껴보는 성취감인가! 그래서 사람들은 도전하고 성취하면서 그 경험을 인생에 접목시키나 보다.

 지금 주위에 내 나이또래 여자분들은 하나 둘 타던 스키나 보드를 멀리하고 또 멀리하기를 권유 받는다. 위험하기도 하지만 열정 또한 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치과의사로서 내 몸의 안전보다 중요한 것은 없고 취미도 취향도 변하지만 자꾸 나이를 의식하며 합리화하는 것이 일상이 된 것 같다. 

올해 99세가 된 김형석교수는 ‘사람은 성장하는 동안 늙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미 더 나은 기술을 배우기에 난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대회에 여자 일반부에서 우승한 동년배의 여자분과 같이 식사도 하고 스키도 타보니 중요한 건 열정이지 세상에서 만든 ‘나이’라는 프레임이 아니다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또한 더 안전하게 타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배우고 연구 해야 되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치과진료도 계속 배우고 상기시킴으로 더 안전한 양질의 진료를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좋은 경험은 나의 인생을 반추하게 하고 더 나아가 성장이 멈춰 노화과정만 기다리는 내 삶이 아니라 무엇이든 즐겁게 배우고 활동하는 주체적인 삶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작년에는 유난히도 더운 여름이었다. 그래서 올 겨울은 한파가 올 거라고 여러 매체에서 예상을 했지만 예전과는 다소 상이한 겨울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함박눈이 빠진 겨울은 왠지 김빠진 맥주와 같다고나 할까? 주위에 눈꽃이 덮이지 않은 앙상한 나뭇가지를 계속 보고 있으니 내 마음에도 건조경보가 울리는 듯 했지만 이번 짧은 스키여행 이후 예전에 가졌던 삶의 열정이 하나 둘씩 피어날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든다.

김민희 미소치과의원 원장, 경기지부 홍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