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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 의료인의 품위를 저해하는 책,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2)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서점이나 신문 광고를 보면 모 치과 경영지원 회사 대표가 쓴 임플란트 어쩌고 하는 소설 비슷한 것이 버젓이 베스트셀러 자리에 놓여 있는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허구에 일부 사실을 섞어 놓고는 한국 치과계에서 벌어진 일을 르포 형식으로 다룬 것처럼 독자를 호도하는 소설이 아직도 버젓이 팔리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화가 납니다. (익명)

이 회사가 일으킨 물의를 해결하기 위한 1인 1개소 법을 사수하려고 노력하는 와중에 어찌 보면 허를 찔린 상황입니다. 회사 대표는 광고나 신문 기사 등을 넘어 독자에게 치과 담합이니 하는 거짓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서사를 퍼뜨렸고, 지난 11월에는 라디오 인터뷰까지 해서 이에 대한 정정 인터뷰를 치협 측에서 진행하기도 했지요. 참 난감한 상황인데, 논의 전개를 위해 역사를 돌아볼까 합니다.

20세기 초 미국 치과의사인 에드거 “페인리스” 파커(Edgar “Painless” Parker)는 엄청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치과계를 뒤흔들었던 인물입니다. 캐나다 출신으로 미 동부에서 치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서커스 흥행사였던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P. T. Barnum)이 만든 홍보 전략을 치과 홍보에 전적으로 도입합니다.

파커가 행한 발치 쇼는 서커스 공연으로 시작해 한껏 분위기를 올린 뒤, 파커 본인이 무대에 등장해 환자들을 불러올려 발치를 행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졌지요. 마약 성분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하이드로케인(Hydrocaine)이라는 약제를 사용해 부분마취 비슷한 것을 시행했다고 주장하지만, 파커 본인 또한 약제보다 서커스와 음악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통한 도취 효과가 더 컸음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무통 발치 쇼는 대단한 흥행을 끌어냈고, 큰돈을 번 파커는 서부로 이주합니다.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비슷한 전략을 구사하던 파커는 자신의 치과를 확장하는 대신, 지점을 넓히기 시작합니다. 역사상 최초의 네트워크 치과, 파커 시스템(E. R. Parker System)이 세를 확장하고 이 안에서 통용되는 의료보험도 발행됩니다. 치과 재료 공동구매, 진료 표준화, 재정과 광고 공동 운영 등을 내세운 파커 시스템은 캘리포니아 지역 치과 수요를 끌어모았습니다. 서커스 단원들이 펼치는 공연과 당시 사람들이 그토록 바라던 “무통”을 내세운 파커 시스템은 시선을 끌 수밖에 없었죠.

치과의사들은 이에 반발하여 파커를 고소합니다. 그가 전문가적이지 못한 처신을 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었어요. 특히 공격대상이었던 것은 그가 “페인리스”, 즉 무통이라는 가짜 이름을 내세워 진료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환자들을 거짓 광고로 꾀어 들이는 데다가 간호사에게 진료를 시키는 등 그의 윤리성에 문제가 있다고 치과의사들은 외쳤습니다. 이에 대해 파커는 오히려 상대방을 비난합니다. 치과가 너무 비싸 환자들이 이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은 저렴하게 진료를 하므로 자신이 오히려 윤리적인 진료를 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심지어 그는 치과의사 단체를 골리앗에, 자신을 다윗에게 비긴 광고를 싣기도 했지요.

파커는 재판에서 져 가명을 사용하여 홍보할 수 없다는 판결을 받지만,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 나갑니다. 이름을 “페인리스”로 개명해 버린 것이죠. 야외 치과 광고가 금지되자 그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그를 대상으로 한 공격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가 세운 조그마한 제국은 파커 사후 “페인리스”라는 브랜드를 더는 사용하지 못하게 되며 허물어집니다. 결국 그의 이름을 겨냥했던 법의 판결이 작동했던 것이죠. 하루아침에 캘리포니아 전역에서 파커 시스템은 사라집니다.

여러 부분에서 현 상황이 떠오르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네트워크 치과, 브랜드, 광고 등 여러 면에서요.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을 실증하기라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파커 이야기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은 무엇일까요. 우선, 매체를 통해 상대를 공격하는 일이 그렇게 효과적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직접 상대를 향하는 비난은 오히려 버즈량, 즉 언급 빈도를 늘리는 역할을 할 뿐 인식 개선을 가져오지는 않는 것 같아요. 다음, 상대방이 윤리적이지 못하다고 말하는 것은 상대방의 페이스에 말려 들어가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윤리를 통해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상대방보다 더 윤리적임을 드러내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점을 파커는 잘 보여주고 있지요.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치과의사를 주축이자 대상으로 한 의료윤리 관련 논의를 확대하는 것일 겁니다.

예컨대, 최근 “평평한 지구 학설”이라는 잘못된 지식이 전파되는 데에 유튜브가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연구가 발표된 적이 있습니다. 거짓 정보와 가짜 뉴스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이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는 것인데요. 연구를 진행한 텍사스공과대학교 애슐리 랜드럼 교수(Prof. Asheley Landrum)가 이에 관해 제시하는 해결책은 잘못된 정보를 공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거짓 정보와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더 나은 정보로 거짓을 압도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당성을 지니고 있다면 그에 합당한 법을 만들고 지키는 것이 결국 문제를 해결할 겁니다. 1인 1개소 법과 전문가평가제가 현 상황에서 중요한 건 그 때문이지요. 비록 법이 시중에 풀린 책을 당장 어떻게 하지는 못할지라도, 결국 그 서사가 거짓이었음을 선언하는 것은 “법의 일격”이니까요.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