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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복지관

Relay Essay 제2339번째

38년간 근무하던 대학에서 정년을 하고 1여년 지나 치과의원을 개설하여 14년간 개원의로 일했습니다. 지금도 개원하고 있는 동기도 있으나 금년 3월, 이제는 휴식하면서 평소 하고 싶던 일이나 하고 미국에 있는 아그들(손자, 손녀)도  만날 생각이었으나, 저와 한방을 쓰고 있는 영부인 (자기를 그렇게 부름)이 느닷없이 저를 “노인복지관”에 등록하고 다음주 부터 나가라는 것 이었습니다.

유년, 소년, 청소년, 청년, 장년, 중년인데 다음은 노년이라 하지 않고 노인이라 합니다. 국어사전에 유년은 어린 연령, 어린이, 소년은 아주 어리지 않고 또 완전히 성숙 하지도 않은 사내아이, 청소년은 청년과 소년, 청년은 청춘기에 있는 젊은 사람, 장년은 30세 안팎의 혈기 왕성한 시기, 중년은 마흔살 안팍의 나이, 노년은 늙은나이, 늙은 시기라 하고 그리고 노인은 늙은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노년 보다는 노인이란 말이 더 높은 말인지 몰라도, 요즘은 어르신, 아버님, 어머님이라 합니다. 지하철 노인석에 있는 안내문을 보니 유아 - 만 6세 미만, 어린이 - 만 6세 이상 ~ 만 13세 미만, 청소년 - 만 13세 이상 ~ 만 19세 미만, 어른 만 19세 이상 그리고 노인 - 만 65세 이상 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대학에서 “노인치의학회” 창설멤버로 있을 때 “노년치의학회”로 명칭을 변경하자는 저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지금은 “노년치의학회”라 하고 있습니다.

  교수들이 정년할 때 “정년 퇴임식” 이란 문구가 듣기에 좀 거슬려 당시 젊은(?) 총장에게 사석에서 “정년식”이라 하면 어떻냐 ? 퇴임이라면 “퇴역” 이나 “퇴출”로 하시던지 라고 건의(?) 했더니 글자 한자 바꾸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고 했습니다.

그 후 저의 의견이 받아 들였는지 제가 정년하던 2003년 8월부터는 서울대에서는 “정년식”이라 합니다. (조선일보 2003. 8. 30. 제25721호 “사람들” 게재) “퇴임” 이란 글자를 삭제하는데 몇 차례 관련부서와 회의를 했다는 후문을 들었습니다.

복지관 명칭도 인(노인) 대신 년(노년) 이라 하는 것이 존대하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복지관 첫 강의에 들어가면서 제가 제일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90대로 보이는 분도 계셨고, 지팡이에 의지하거나 휠체어를 타고 오신분도 계셨습니다.

이날 반장을 선출 한다는데 모든 시선이 처음 나온 저를 향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제가 제일 어리다고 생각하신 것 같았습니다. 전에는 결석만 안하면 다음 학기 신청때 우선권을 주었다는데 신규 신청자가 너무 많아 이번 학기부터는 폐지했다고 합니다.

컴퓨터학(스마트폰, 인터넷, 컴퓨터) 모집인원은 360명, 대기자는 88명 이었다는데 다른 어문학, 생활교양학, 예술학, 스포츠 건강학, 실용음악학, 열린강좌 등은 정원 미달이었습니다.

대학에서 정년을 함께한 L교수 이야기입니다. 매일하던 습관처럼 이른 아침 집을 나왔으나 특별히 갈 곳도 없어 전철을 타고 종점인 춘천까지 갔답니다. 그곳에 내리니 봉고차들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함께 간 일행이 갈아타는 것을 보고 자기도 그분들과 동행해 가보니 춘천 막국수 집 앞 이였답니다.

빈 테이블에 혼자서 앉아 있는데 옆 테이블에 않으신 분이 “형씨 혼자 왔수? 지금 나이가 어떻게 되었소?”라고 묻더랍니다. 갑작스런 질문에 얼결에 “올해 나이 65세로 대학에서 정년한지 얼마 안되었습니다.”라고 하니, “아직 젊은 나이인데 우리 따라 다니면 안되지요. 일해요! 일을 해요. 한참 나이인데 … ” 하더랍니다. 이날의 충격으로 L교수는 아직도 치과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폐업 한다니 저의 결단을 부러워 하면서요.

군의후보생 훈련을 마치고 대위로 입관되어 전방 사단에서 전입신고를 할 때 저를 유심히 보던 헌병참모(중령)께서 어느날 자기 숙소로 저를 초대 했습니다.

여러 사람 초대한줄 알았는데 저만 불러 상당히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군의후보생 신분에서 얼마 안지나 그런지 중령을 가까이서 대하는 것이 어려웠지요.

이날 그분은 저에게 대학에만 있다가 군에 오니 어떠냐?고 했습니다. 저는 스스럼없이 의무대에서 보니 별로 하는 일 없이 서성거리는 가족 달린 중사, 상사들이 많은데 특식이나 부식이 나오면 당번 사병들이 이분들 가족에게 먼저 보내고 (바치고?) 나머지를 병사들이 먹으니 개선해 줄 수 없겠는가? 라는 건의를 드린바 있습니다.

실제로 60년대는 군의관들이 점심 식사 후 음식을 남기면 옆에 서성거리던 사병들이 달려들어 남은 음식을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이때 이 헌병참모는 “김 대위, 잘 듣게 한국전쟁때 이 사람들이 없었으면 지금 이 나라가 있었겠나?”라며 저를 나무라던 기억이 납니다.

제 친형도 중부전선 저격능선 전투때 소위로 참전 했었는데 새벽녘 전투에 출전하기전 “만일 도망가거나 후퇴하는 아군 병사가 있으면 무조건 사살한다. 너희를 후방에는 헌병들이 완전무장하고 배치되어 있으니 전투 중에 도망갈 생각은 말라”라는 대대장 지시를 부하들에게 전달 하였답니다.

이 헌병참모분이 그런 경험이 있는지는 몰라도 의무대에서 서성거리는 고참 중사나 상사 그리고 그 가족을 배려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한참 젊은 나이에 전방에서 생사를 걸고 싸웠던 사람들이야 ! 지금 군을 나가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어! 가족들은 당장 굶는다네.

  국가에서 이들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나? 전쟁이 끝난 후 태어난 지금 병사들은 좀 굶으면 어때! 휴가 가면 집에서 많이 먹을 수 있지 않나? 라던 그분의 말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저는 복지관 이곳저곳에 모여있는 저보다 나이든 어르신들이 익숙지 않은 전자기기(컴퓨터, 스마트폰 등)를 다루려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나오시고, 2500원하는 점심을 드실려고 줄서있는 모습을 보며 제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이분들 세대가 겪은 희생이 없었다면 이 나라가 지금 있었을까요? 한국전쟁때 강추위에 얼어붙은 맨땅을 맨손으로 파헤치며 새로 돋는 싹이라도 먹거리로 찾던 이야기를 들은 어느 어린이가 “아니, 냉장고를 열어 보지 그래요. 먹을 것이 가득한데 왜 열지 않아요?”라고 했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김철위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명예교수